기술과 예술이 만나 작품이 되다
키네티코스 展, 카이스트서 개최
카이스트 KI빌딩 1층에 자리한 문화 예술나눔공간, ‘스페이스K’에서 '키네티코스 展'이 진행 중이다. 주제가 매우 이채롭다. ‘동적에너지를 미적에너지로 환원’이라는 주제로 7명의 작가가 기계동력을 모티브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시지만, 작품의 독창성과 신선한 이질감이 풍기는 것이 뭔가 독특하다. 처음 관람객을 맞아주는 것은 천정 위에서 기계동력으로 돌아가는 리본들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기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리본들. 손연재 선수의 몸놀림을 모방하듯, 기계가 연출하는 리본의 활동성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발랄한 리본의 환영을 넘으면 본격적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알이 튀어나온, 빨간코의 흉측한 광대가 인상적이다.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 '더 게임'에서 봤던 광대인형처럼, 전시장에 놓여있는 이 광대 역시 남아있는 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관람객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기계동력을 주제로 한 작품 전시회 그런데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그가 보는 것이 스크린을 통해 벽체에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관람객은 하나의 눈과 마주했을 뿐이지만 온 세상에 자신을 공개한 셈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 존 케슬러(John Kessler)가 제작한 것으
통념적 아름다움을 내걸지 않고, 오히려 흉측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우뚝 ‘꽂혀’있는 두상과 그의 시선. 어딘지 모르게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그의 표정은 이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은 듯해 묘한 경계심과 신선한 이질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존 케슬러의 두상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두상(박종영 작가의 작품)이다. 케슬러의 두상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표정이라면, 그를 마주하고 있는 두상은 극도의 잔잔함을 머금고 있는 표정이다. 박종영 작가의 작품은 볼수록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두상의 눈을 억지로 뜨게 만들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완고한 고집은 관람객의 목표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바로 그의 귀. "당신, 자극없인 반응하지 않습니까?" 목재와 스테인리스 와이어 등을 재료로 사용한 이 작품의 왼쪽 귀에 바람을 불면, 반대쪽 귀가 반응을 한다. 세상을 보기 싫어 눈은 감았으나 귀까진 막을 수 없던 한 스님의 모습을 본뜬 것처럼. 작품에 대해 박 작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목각인형을 통해 사회의 통제에 속박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관람객의 자극 없이는 반응할 수 없는 인형이지만, 이를 본 관람객은 곧 자아를 상실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는 작가의 확신이 담겨있다. 처음엔 세상사를 보기 싫은 스님인줄 알았으나, 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세상을 초월한 갑남을녀의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이 두상의 주인공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 수 없다. 여성적이라고 하기엔 남성적이며 중성적이라고 하기엔 부단히 양성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상대방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코드를 머릿속에 입력하는가. 머리가 길면 여자고 짧으면 남자라는 식으로. 입술이 투박하게 두터우면 남자고 오물조물 두툼하면 여자라는 방식으로. 하지만 이 인물은 투박하면서도 도톰한 입술을, 날카로우면서도 대찬 콧대를 지니고 있어 자신의 성별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 그에 반해, 가슴까지 훤히 드러내 자신의 성(性)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박종영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늘씬한 8등신을 자랑하며 등에는 날개까지 달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작가의 의도대로 자극 없인 반응할 수 없는 존재로 지어지고 말았다. 관람객이 버튼을 누르면 그제야 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쉰다. 작가는 왜 이들을 목재를 사용해 피조(被造)한 것일까. 금속은 너무 차갑고, 더미에 사용되는 재료는 너무 비싸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재료 선정의 탁월함에는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목재가 주는 부드러움은 우리로 하여금 사이보그에 갖는 경계심을 늦추기에 적합하다. 부드럽게 사포질된 그들의 ‘스킨’과 색깔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높은 친밀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가서게 한다. 이어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실도 크게 한다. 자아가 없었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생각하는 남자"
서영덕 작가의 작품은 거대한 철인 두상을 가진 남성의 진지함에 압도되는 경험을 준다. 가로 1.8m, 세로 1.9m의 거대한 두상의 이 남자는 아마도 깊고도 깊은 생각에 젖어 있는 게 확실하다. 조밀하게 연결된 그의 뇌 속 뉴런이 밖에서도 고스란히 보이기 때문이다. 금속체인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수많은 체인들을 엮고 엮어서 탄생했다. 체인의 연결로 성립된 머리인 만큼, 속은 텅 비었으며 남자의 머릿속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아이러니다. 거대한, 검은 두상의 남자는 묵상을 하고 있으나 그의 머릿속은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라니. 거대함과 묵직함, 가벼움과 헛헛함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작품이다. 금속체인으로 결박된 그의 머리는 무언가에 표박된 현대인의 현실이다. 경건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숙연하게 하지만, 사실 그는 경건한 게 아닌 상념에 젖어 있는 것이다. ‘나를 표박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짓누르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말이다. 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끝나버린 그의 두상은 마치 땅속에 몸을 묻고 있는 듯한 현실을 상상하게 한다. 혹은 물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수행중인 옛 영화의 주인공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의 묵상은 과연 무엇이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번 전시는 그간 우리가 접한 여느 예술작품과는 다소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느낌을 안겨준다. 전시는 오는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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