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4일 수요일

과학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과학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굉장히 딱딱하게 느껴진다. 어려운 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원리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나와는 먼 이야기' 혹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과학기술과 관련이 있다. 버스에 설치된 카드단말기에 버스카드를 찍는 간단한 일부터, 스마트폰 사용까지. 이 모든 것들이 과학기술과 연관돼 있다.
▲ '최후의 질문' 등 많은 SF 소설을 남긴 아이작 아시모프 ⓒScience Times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기술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과학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소설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과거에 읽었던 과학을 소재로 하는 소설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간이 지난 현재에 와서 실현되고 있는 경우도 다수 있으며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의 원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에너지, 과연 그 끝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이라는 작품은 최근들어 많이 회자되고 있는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최후의 질문은 질서 없이 계속해서 증가되는 이 우주 속에서, 만약 '끝'이 있다면 이 우주는 어떠한 방식으로 운용될지에 대한 작가의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사실 우주라는 것은 현대 과학 기술 상에서는 그 끝이 없고,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작가는 '만약' 그 끝이 있다면 우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해서 이 작품을 썼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화학과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이다. 또한 보스턴 대학에서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한 적도 있다. 그는 이러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최후의 질문'을 쓰게 된 것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은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Science Times

또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인간에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던 철덩어리를 로봇이라 칭하며 지금처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다.

'최후의 질문'은 어떤 내용인가?

'최후의 질문'은 2061년 5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반 백년 후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알렉산더 아델과 멀티백 조직원들인 버트램 루포브이다. 거대한 컴퓨터가 그 시대의 모든 에너지를 조절하게 되는데, 멀티백 거대한 컴퓨터의 이름이다. 작품 상에서 멀티백의 도움을 받아 우주를 개척할 정도로, 멀티백은 인간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등장한다.

문제는 멀티백을 움직일 만한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나타난다. 멀티백을 움직이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2060년이 되면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이다. 멀티백은 이 문제를 태양광선을 이용해 풀어낸다. 하지만 태양 역시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는 '별' 이기 때문에, 버트램 루포브들은 은하계로 관심을 돌린다.

그러나 그 역시도 쉽지 않다. 별과 은하계는 점점 희미한 먼지가 돼 가고, 우주는 10조년에 걸친 과정을 지나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우주에 '최후의 질문'을 던진다. 혼란이 극복돼 원래의 우주로 돌아갈 수는 없는지, 그것은 진정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맨 처음 우주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작업이 진행되고 곧 한마디 말을 한다. "빛이 있으라!" 이 대답 후에 우주에 빛이 생겼고, 다시 우주가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 그리고 에너지의 시작과 끝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 작품에서 엔트로피 법칙이라 일컫는 열역학 제 2법칙을 사용했다. 이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엔트로피라 일컫는 무질서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지, 절대로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질서와 가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가치가 없는 상태로 변할 수는 있지만, 반대의 상황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 에너지는 계속해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질서를 버리고 무질서를 선택하려고 한다. ⓒScience Times

만약 물이 담긴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고 가정해보자. 잉크의 색소분자들은 물 속의 분자들 사이를 통해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때, 잉크의 색소들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잉크를 떨어뜨려서 확산시킨 물컵을 가만히 두고 봤을 때, 잉크 색소가 한데 모여 방울로 뭉치고 컵 안의 물과 분리돼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이것은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에서 보듯 모든 자연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이뤄지게 된다.

인간은 무질서한 우주로 나아가게 된다. 에너지는 계속해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질서를 버리고 무질서를 선택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의 생을 영위하게 위해 이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게 되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작 아시모프는 '최후의 질문'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뤘다.

I'll there be light. Let me behold the light that reflects.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라는 구절은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최후의 질문'을 본 사람이라면 이 구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점점 발전하고 진화해 결국 인간과 하나가 되고, 오랜 시간과 생각을 지나 '스스로' 신이 돼 세상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진보하던 기술과 인간은 결국 '신'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될지, 아니면 그 반대의 상황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슬기 객원기자 | justice0527@hanmail.net

저작권자 2012.07.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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