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석학인문강좌가 4일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정대현 이화여자대학 명예교수(언어철학)의 <이것을 저렇게도- 다원주의 실재론> 5주째를 맞이한 마지막 강연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지는 종합토론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강연에는 강진호 서울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김선희 저술가, 선우환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인경 수원대학 강사 등 4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다음 주부터는 이태호 명지대학 교수(한국미술사)가 <감성과 오성 사이-한국 미술사의 라이벌>을 주제로 강의한다.
이번 강연에는 강진호 서울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김선희 저술가, 선우환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인경 수원대학 강사 등 4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다음 주부터는 이태호 명지대학 교수(한국미술사)가 <감성과 오성 사이-한국 미술사의 라이벌>을 주제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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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대현 이화여자대학 명예교수 ⓒScience Times |
정대현 교수는 종합토론에 들어가기 앞서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4주 동안의 강연은 ‘이것을 저렇게도 말할 수 있다’라는 주제를 제시하고자 한 이야기였다”고 설명하면서 “체계들은 다원적이지만 실재에 관한 것이라는 논제를 걸고 이 논제의 정당성을 보이고자 한 논의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오늘 종합 토론에서는 이러한 논제에 대한 풍부한 토론을 기대한다”며 토론을 위해 그 동안의 강연 내용에 대해 요약적인 시각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인간의 언어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 상상력에 의한 인문성이 다양하게 나타나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지만, 또한 언어활동이 다양성의 범위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담론과 이론의 다양한 체계들은 쉽게 분리주의적으로 내달아 반인문적 사물화에 빠질 수 있지만, 체계의 진정성은 소통적 담론과 이론의 연결을 통해 인문적 확장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재론을 옹호하는 논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른바 ‘공지칭성(共指稱性)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인과적 관계’ 개념을 통해 공지칭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제를 구체화해 볼 필요가 있다. 편의를 위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상황을 단순화 해보자. 두 물리학자는 특정한 물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현상을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 물리현상의 <이것>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론을 구성했다. <이것>을 뉴턴은 자신의 이론에서 '빛'이라 부르고,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이론에서 '빛'이라 부른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두 사람이 각기 부르는 <이것>이 동일한 것인가는 알 수 없다.
두 이론에서 '빛'이라는 동일한 기호로 불리지만 이 기호들은 각각의 이론 안에서 부여되는 의미,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한다고 해석된 의미에 따라 빛n 과 빛e 라는 다른 대상을 나타낸다. 다른 대상을 나타내는 그 기호들을 편의를 위해 '빛n' 과 '빛e'라고 표기하겠다.
필자는 '빛n' 과 '빛e'가 각각의 이론에서 다른 대상을 나타내지만 동일한 것을 공지칭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지지하기 위해 인과 관계를 도입했다. 빛n 과 빛e 라는 다른 대상들이 두 물리학자가 <이것>이라 불렀던 것에 인과적 연쇄로 이어지는 경우 두 물리학자가 <이것>으로 불렀던 것은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각 이론에서의 '빛n'과 '빛e'라는 기호는 공지칭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해악을 끼쳐왔다. 한낱 시대적이고 지역적인 편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당대의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커다란 억압과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절대주의를 거부하기 위해 상대주의적 진리 개념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가?
절대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필자의 목표라면 상대주의적 진리 개념이 없이도 목표 성취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주의를 “세계에 대한 참 문장의 체계는 하나다”라는 명제로 규정한다. 참 체계가 하나라는 주장은 참 체계는 '유일하다', '절대적이다'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절대주의는 “이 설명의 체계가 참이라면 이 체계 이외의 체계는 참이 아니다”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설명의 체계가 참이라면 이 체계는 절대적이다”라는 명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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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트겐슈타인은 서양철학사를 통틀어 언어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회의하고 분석한 학자다. ⓒ위키피디아 |
다원주의는 하나의 과제에 대해 “설명의 체계가 여럿이다”로 흔히 이해되지만, 더 적극적으로는 참 설명의 체계가 다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다원주의 체계에서는 타인에 대한 개방성은 관용 같은 윤리적 덕목으로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논리적 이해에 입각한 개념의 사안이 된다.
지난 20세기를 과연 보편적 진리에 대한 해체의 시대로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20세기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쿤의 패러다임 이론,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실재적 진리를 거부하고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를 20세기 철학의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철학자들이 필자의 관점에 동의는 하겠지만 대다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속성을 20세기 후반의 특징으로 보고 싶기는 하다. 해체주의의 논리는 20세기 사회에서 지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개념 X가 절대주의(억압)적이라면, 그 개념의 논리를 다원화하라”가 해체주의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신, 통치자, 역사, 진리, 문학, 저자, 권위 등의 개념이 19세기의 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해체되어 왔고, 앞으로도 억압적인 개념은 계속 해체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문성을 정의함에 있어 “의미론적 상승”의 개념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이 명시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있다. ‘의미론적 상승’ 개념에 대한 명료한 정의는 무엇인가?
필자가 “의미론적 상승”을 언급한 것은 콰인(Quine)에게 배운 것을 인문적 문맥에 적용한 것이다. 입니다. 콰인은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단어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하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물리학의 빛, 속도, 중력, 입자 같은 대상들뿐만 아니라 점, 직선, 마일, 수, 속성, 명제, 진리, 사실 같은 대상들의 이야기도 언어의 이야기로 전환될 때 더 명료화되고 그 논리의 추구가 용이해 진다고 생각했다.
인문적 문맥에서 “의미론적 상승” 개념은 유용하다. 인문성을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보다 깊은 자유의 능력 또는 실현이라 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삶의 조건은 반(反)인문성의 침입이나 지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인문성이란 인간을 향한 폭력, 억압, 대상화, 차별 등의 사물화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 환경의 파편성, 비연결성으로 인한 인간 존재의 왜소화에서도 드러난다. 사물화는 비인간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인간이 물건처럼 영혼도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반인문성의 문맥으로부터 의미론적 상승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사물화” 조건으로부터 보다 나은 “언어화” 질서로의 꿈을 꾼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론적 상승은 인간 연대성을 공고히 하며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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