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BEST SF작가 10인, 박민규(3)
평행우주만이 희망이다?
한국SF를 찾아서 <근처; 2008년>1)와 <크로만, 운; 2007년>2)은 둘 다 평행우주를 소재로 하여 인간의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근처>는 휴 에버렛 3세의 다세계 해석을 암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중년남자의 절망과 허무에 맞물려 놓는다.
조실부모한 시골 깡촌 출신이지만 큰 아버지의 배려 덕에 대학까지 나와 서울의 큰 회사에 다니는 중년의 주인공.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혼기까지 놓쳐버린 그에게 어느 날 정기건강검진 결과가 청천벽력처럼 날아든다. 암 진단이 떨어졌고 삶이 6개월 남았다는 통고가 뒤따른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는 구차한 투병생활 대신 고향에 내려와 불알친구들을 만나며 생을 마감하는 쪽을 선택한다.
덕분에 어릴 적 관심을 두었던 같은 반 여자애 순임과의 가슴 설레는 재회를 잠시 맛보지만, 그녀가 보여준 호의가 실은 이해타산에서 나온 가식임을 알고도 주인공은 더 이상 실망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상 더 집착할 것도 다툴 것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던 주인공은 불알친구 중 하나인 도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실낱 같은 희망을 꿈꾼다. 과거에 다섯 꼬마는 초등학교 뒷산에 양철 껍질의 타임캡슐을 묻은 바 있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소중한 물품이 담긴 봉투가 들어 있었다. 주인공이 그곳을 파보니 타임캡슐이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어 집으로 가져오게 된다.
자신의 봉투 속에는 선물 받은 나침반이 들어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니 당시 <플루타크 영웅전>과 나침반 중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했던 듯하다. 그러나 황망하게도 얼마 후 술자리에서 그는 도형한테 엉뚱한 소리를 듣는다. 도형은 친구들 중 타임캡슐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아 자기가 오래 전에 파내 집으로 가져갔으며 주인공의 봉투 안에는 <플루타크 영웅전>이 들어 있었다고 전한다.
둘 다 진실이라면 시간의 어느 분기점에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봉투 안에 <플루타크 영웅전>을 넣은 또 다른 우주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주인공은 반평생 뼈 빠지게 일했지만 현업에서 손을 놓는 순간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진 현실, 그나마 자기 자신을 위해 살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현실 앞에 절망하는 한편으로 또 다른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모르는 자신의 분신을 상상해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크로만, 운>은 평행우주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풀어나간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류가 두 계급으로 분리된 먼 미래, 선택받은 소수인 ‘네드’ 인류는 첨단문명의 잔존 유적(세인트 홀) 안에서 과학의 보고(寶庫)를 지배하며 하층계급인 ‘융’ 인류는 그 바깥에서 짐승 이하의 삶을 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여 있다.
주인공 소년 ‘크로만’과 소녀 ‘운’은 부모 없이 태어나는 융 사회의 전형적인 비주류로 얻어맞고 빼앗기고 강간 당하는 고난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한다. 어쩌다 한 번씩 네드의 뒤치닥거리를 해주며 제법 돈을 만지게 된 크로만에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큰돈을 모아 네드의 실험실에 있는 우주의 씨앗을 구입해 자기만의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와는 달리 비참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진정한 관심사는 크로만과 운의 운명이 아니다. 역사가 서로 물고 물리듯 평행우주들 역시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가는 갑자기 또 다른 평행우주로 건너 뛰어 가족을 잃고 경마 도박으로 인생을 탕진하는 한 중년 사내의 고단한 삶을 비춘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해놓은 유일한 보람이라고는 스몰뱅 주식회사에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일이다. 스몰뱅은 의뢰인의 희망대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주는 회사다. 비록 새로 생겨난 우주에 사내가 몸소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내심 후줄근한 자신과는 달리 행복한 누군가의 우주가 창조되었으리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위안거리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독자들은 알게 된다. 이 중년 사내의 의뢰로 창조된 우주가 다름 아닌 크로만과 운의 세계임을. 마치 수건돌리기 게임 같지 않은가.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보다 나은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어느 우주에서나 현실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영미권 과학소설 작가들이 평행우주들을 주인공의 잇속대로 넘나드는 편리한 배경쯤으로 써먹는 와중에 박민규는 그러한 액션 어드벤처에 뛰어들 여력이 되지 못하는 주변부 인생들의 소외를 그린다.
권력은 식인행위나 진배없다? <굿모닝, 존웨인>
조실부모한 시골 깡촌 출신이지만 큰 아버지의 배려 덕에 대학까지 나와 서울의 큰 회사에 다니는 중년의 주인공.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혼기까지 놓쳐버린 그에게 어느 날 정기건강검진 결과가 청천벽력처럼 날아든다. 암 진단이 떨어졌고 삶이 6개월 남았다는 통고가 뒤따른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는 구차한 투병생활 대신 고향에 내려와 불알친구들을 만나며 생을 마감하는 쪽을 선택한다.
덕분에 어릴 적 관심을 두었던 같은 반 여자애 순임과의 가슴 설레는 재회를 잠시 맛보지만, 그녀가 보여준 호의가 실은 이해타산에서 나온 가식임을 알고도 주인공은 더 이상 실망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상 더 집착할 것도 다툴 것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던 주인공은 불알친구 중 하나인 도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실낱 같은 희망을 꿈꾼다. 과거에 다섯 꼬마는 초등학교 뒷산에 양철 껍질의 타임캡슐을 묻은 바 있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소중한 물품이 담긴 봉투가 들어 있었다. 주인공이 그곳을 파보니 타임캡슐이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어 집으로 가져오게 된다.
자신의 봉투 속에는 선물 받은 나침반이 들어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니 당시 <플루타크 영웅전>과 나침반 중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했던 듯하다. 그러나 황망하게도 얼마 후 술자리에서 그는 도형한테 엉뚱한 소리를 듣는다. 도형은 친구들 중 타임캡슐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아 자기가 오래 전에 파내 집으로 가져갔으며 주인공의 봉투 안에는 <플루타크 영웅전>이 들어 있었다고 전한다.
둘 다 진실이라면 시간의 어느 분기점에서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봉투 안에 <플루타크 영웅전>을 넣은 또 다른 우주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주인공은 반평생 뼈 빠지게 일했지만 현업에서 손을 놓는 순간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진 현실, 그나마 자기 자신을 위해 살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현실 앞에 절망하는 한편으로 또 다른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모르는 자신의 분신을 상상해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크로만, 운>은 평행우주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풀어나간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류가 두 계급으로 분리된 먼 미래, 선택받은 소수인 ‘네드’ 인류는 첨단문명의 잔존 유적(세인트 홀) 안에서 과학의 보고(寶庫)를 지배하며 하층계급인 ‘융’ 인류는 그 바깥에서 짐승 이하의 삶을 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여 있다.
주인공 소년 ‘크로만’과 소녀 ‘운’은 부모 없이 태어나는 융 사회의 전형적인 비주류로 얻어맞고 빼앗기고 강간 당하는 고난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한다. 어쩌다 한 번씩 네드의 뒤치닥거리를 해주며 제법 돈을 만지게 된 크로만에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큰돈을 모아 네드의 실험실에 있는 우주의 씨앗을 구입해 자기만의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와는 달리 비참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진정한 관심사는 크로만과 운의 운명이 아니다. 역사가 서로 물고 물리듯 평행우주들 역시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가는 갑자기 또 다른 평행우주로 건너 뛰어 가족을 잃고 경마 도박으로 인생을 탕진하는 한 중년 사내의 고단한 삶을 비춘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해놓은 유일한 보람이라고는 스몰뱅 주식회사에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일이다. 스몰뱅은 의뢰인의 희망대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주는 회사다. 비록 새로 생겨난 우주에 사내가 몸소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내심 후줄근한 자신과는 달리 행복한 누군가의 우주가 창조되었으리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위안거리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독자들은 알게 된다. 이 중년 사내의 의뢰로 창조된 우주가 다름 아닌 크로만과 운의 세계임을. 마치 수건돌리기 게임 같지 않은가.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보다 나은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어느 우주에서나 현실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영미권 과학소설 작가들이 평행우주들을 주인공의 잇속대로 넘나드는 편리한 배경쯤으로 써먹는 와중에 박민규는 그러한 액션 어드벤처에 뛰어들 여력이 되지 못하는 주변부 인생들의 소외를 그린다.
권력은 식인행위나 진배없다? <굿모닝, 존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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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동인간은 SF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의 알코어사는 현재 여러 이유로 냉동인간이 된 사람들을 유지관리하는 비즈니스로 실제 돈을 벌고 있다. (자료원: Alcor사 간행 소식지 [Cryonics] 2012. 3~4월호 11쪽) ⓒAlcor |
과학소설의 하위 장르로 볼 때 대재앙 이후의 이야기 또는 냉동인간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굿모닝, 존웨인; 2008년>3)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이 항상 인류사회를 행복하게 해주지만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충격적인 막판 반전에서 권력은 피지배계급을 잡아먹고 산다는 섬뜩한 깨달음까지 상기시켜준다.
월터 M. 밀러 2세(Walter M. Miller jr.)의 <라이보위츠를 위한 송가 A Canticle For Leibowitz; 1965년>에서 핵전면전 이후 카톨릭교회가 문명의 마지막 보루로 천년을 버티듯이, <굿모닝, 존웨인>에서는 정체불명의 대량살육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삽시간에 말살되자 극소수 생존자들의 거처는 천년을 지탱해온 냉동인간 보관소뿐이다. 그러니 이곳 직원들이 섭취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식량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한때는 세상을 쥐락펴락 하며 국민의 피고름을 짜내던 한국의 독재자와 아내 그리고 그의 측근이 천년이 지난 바로 이 시점에 냉동상태에서 해동된 까닭은 독재자의 질병을 말끔히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드디어 개발됐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독재자 일행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 정권을 재창출할 꿈에 부푼다.)
냉동인간 보관소 직원들이 독재자 일행을 잡아먹는 행위는 후자들이 국민의 고혈을 쥐어짜며 자신들의 보신에만 골몰했던 행위와 오십보백보다.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무자비한 착취가 결과적으로는 식인 행위나 매한가지라고 야유한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대단원의 충격적인 결말을 선보이기 전까지 소설 속의 세계상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설명이 문자 그대로 너무 설명적이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설명 대신 보다 극화가 됐더라면 막판의 충격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 주요 작품
<지구영웅전설>, 문학동네, 200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신문사, 2003년
<카스테라>(단편집), 문학동네, 2005년
<핑퐁>, 창비, 2006년
<더블>(단편집), 창비, 2010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1) 이 단편은 [문학사상] 2008년 8월호에 처음 실렸다. 2) 이 단편은 [문학과 사회] 2007년 가을호에 처음 실렸다. 3) 이 단편은 웹진 [크로스로드] 2007년 6월호에 처음 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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