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1일 화요일

'공상' 물리학자에게 엄청난 상금이

'공상' 물리학자에게 엄청난 상금이

러시아 IT투자가, 세계 최대 과학상 제정


지난 8월 3일 노벨상 상금을 능가하는 기초물리학상(Fundamental Physics Prize) 첫 수상자가 선정됐다. 세계 각지의 물리학자 9명은 러시아 출신의 한 거부의 전화를 받은 뒤 삶이 바뀌었다. 물론 명예도 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엄청난 상금 때문이다.
▲ 최근 노벨상을 능가하는 기초물리학상을 제정한 IT투자자 유리 밀너. ⓒDST Global
이들 물리학자들 대다수는 자신들에게 상금을 수여한 러시아 거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수상자 모두에게 각각 300만 달러씩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돈은 지난 7월 31일 제정된 기초물리학상 상금 가운데 일부다.

한 사람당 300만 달러, 노벨상의 3배
노벨상보다 훨씬 많은 상금으로, 총 2천700만 달러가 걸려 있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상이다. 노벨상은 120만 달러다. 그리고 수상자가 여러 명인 경우,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상금이 얼마나 컸던지, 수상자 중 1명인 앨런 거스(Alan Guth) 미국 MIT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 수상 소식과 함께 상금이 300만 달러란 말을 듣고 수상자 9명에게 총 300만 달러가 수여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큰손'으로 알려진 벤처 투자자 유리 밀러(Yuri Milner)는 2009년 페이스북의 최대 개인 투자자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지난 3년간 페이스북을 비롯해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운영하는 투자펀드는 120억 달러 규모다.

투자회사 DST Global 설립자인 밀너가 기초 이론물리학 분야에 엄청난 상금의 상을 만든 이유는 그 자신이 모스크바 대학을 나와 옛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소에서 일한 물리학자 출신이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소련 붕괴 무렵인 1990년 미국으로 이주해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스쿨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밀너가 이러한 SNS 관련 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며 그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미친 짓이 오늘날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었고, 상금 액수가 노벨상의 세배에 가까운 과학계 최대 규모의 상의 제정을 가능하게 했다.

‘괴짜’ 거부가 제정한 ‘괴짜’ 과학상?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그는 또한 미국에서 가장 비싼 개인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팰로 앨토에 있는 1억 달러짜리 저택이다.

회의에서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갈 때는 지루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글로벌 브레인, 다시 말해서 기계와 인간을 연결해 하나의 지능을 창조해 가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생기가 넘쳐 흐른다. 날카로운 이성을 필요로 하는 투자자치고는 ‘괴짜’다. 사실 그가 선정한 수상자들도 얄궂게 표현해서 괴짜 물리학자들이다.

예를 들어 수상자 거스 교수는 빅뱅이론을 보완하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주장한 학자다. 소위 우주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아직 입증된 것이 아니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서 주류(主流)가 되고 있는 이론도 아니다. 오히려 학자들로부터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이론이다.
▲ 거스 교수의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이론으로 논쟁의 대상이다. ⓒ위키피디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과학자들도 많아
수상자 중에는 는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의 이론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 교수도 포함돼 있다. 그는 “정말 뜻밖이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끈이론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해 이번에 이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위튼 교수는 현대물리학의 최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다. 그러나 그의 끈 이론은 아직 입증된 것이 아니다. 그는 또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뱉기도 한다”는 주장을 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기존의 일반 이론을 뒤엎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계 인사들은 이번에 새로 생긴 기초물리학상에 대해 별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콜롬비아대의 한 수학자는 “끈이론 등은 기본적으로 검증을 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증할 수 없는 이론에 몰두하거나 방금 잘못된 이론으로 판명된 이론에 몰두해도 3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네이처도 한 물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검증할 수 없거나,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연구를 한 사람들이 거액을 받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이론을 주장한 과학자에게 상이 수여됐다는 것이다.

사하로프에게 영감을 얻어
밀너도 원래 이론 물리학을 전공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반체제 인사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가 몸담았던 바로 그 학과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밀너는 “10년 후 과학은 얼만큼 발전할까?”라는 사하로프의 끊임 없는 질문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과연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강박적일 정도로 매달렸다. 일례로 모스크바에 따로 마련된 그의 전용 주택에는 사방에 모니터와 스크린이 설치돼 마치 우주선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톱 모델 출신의 미술가인 그의 부인도 미래에서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까지도 머리를 빡빡 깎은 스타일을 유지했다. 영화 ‘스타 트렉’의 외계인 미녀와 같은 모습이다.

물리학자였던 그는 박사과정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 꿈이 노벨 수상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박사과정을 포기했다. 자신이 노벨상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돈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한창 추진 되던 당시, 그는 모스크바 암거래 시장에서 서양에서 들여온 고물 컴퓨터를 팔며 사업 수완을 익혔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수업을 받으며 미국의 업계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
그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을 때 그 곳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사업이 한창 인기였다. 그러나 그는 눈을 인터넷에 돌렸다.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그는 당시에는 수익성이 전혀 없는 인터넷 사업에 투자했다.

2009년 모든 인맥을 동원해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 IT기업 투자의 신호탄이 된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찔끔 투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을 골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스타일이다.

기초물리학상은 노벨상과 다르다. 실험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어도 기초물리학을 발전시킨 획기적인 이론을 제창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론의 입증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학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상을 제정한 주인공 밀너의 철학이다.

기초물리학상은 새로운 이론을 주장한 학자들의 몫이다. 특히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이나 끈이론 등을 연구하는 비현실적인 공상가들을 후원하는 상이다. 지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올해는 밀너가 직접 첫 수상자들을 뽑았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전년 수상자들이 그 해 수상자를 뽑는 식으로 운영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실에 근거하는 것은 과학의 생명이다. 그래서 과학은 보편 타당성에 근거해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밀너가 제정한 기초물리학상은 ‘엉뚱한’ 과학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바로 이러한 엉뚱한 사고와 이론 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노벨상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8.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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