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공간도 휘어지게 한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3)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어린 시절 기억은 나이 들면 대부분 희미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또렷하게 떠오르는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그런 기억이 하나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도심 주택가에 제비도 날아다니고 벌레도 많았다. 가끔 아이들이 왕거미라고 부르는 커다란 시커먼 거미가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느 날 이 거미를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곤충채집통에 거미를 키우다 가끔 꺼내 장난을 치곤했다. 통 뚜껑을 열고 막대기를 넣으면 거미가 타고 올라온다. 거미가 막대기 절반을 넘을 때 쯤 왼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오른손을 뗀다. 막대기 오른쪽 끝에 다다른 거미는 방향을 바꿔 이번엔 왼쪽으로 달린다. 역시 절반쯤 지나면 이번에는 막대기 오른쪽을 잡고 왼손을 뗀다.
이런 식으로 한참 놀다가 순간 방심했는지 거미가 막대 절반을 넘었는데도 막대를 잡는 손을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막대를 잡고 있는 오른손을 향해 다가오는 거미에 놀라 그만 손을 뗐고 막대기는 거미와 함께 떨어졌다. 덩치가 꽤 큰 거미였음에도 불운하게 막대 밑에 깔렸고 그 충격으로 몸이 터졌다.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놀란 필자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한참 지나 거미가 어떻게 됐나 보러 온 필자는 끔찍한 광경에 경악했다. 어디서 왔는지 개미 수십 마리가 거미 몸을 덮고 있었다. 그때 조금만 침착했으면 충분히 손을 바꿀 시간이 있었는데 하는 자책이 오랫동안 필자를 괴롭혔다.
곤충채집통에 거미를 키우다 가끔 꺼내 장난을 치곤했다. 통 뚜껑을 열고 막대기를 넣으면 거미가 타고 올라온다. 거미가 막대기 절반을 넘을 때 쯤 왼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오른손을 뗀다. 막대기 오른쪽 끝에 다다른 거미는 방향을 바꿔 이번엔 왼쪽으로 달린다. 역시 절반쯤 지나면 이번에는 막대기 오른쪽을 잡고 왼손을 뗀다.
이런 식으로 한참 놀다가 순간 방심했는지 거미가 막대 절반을 넘었는데도 막대를 잡는 손을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막대를 잡고 있는 오른손을 향해 다가오는 거미에 놀라 그만 손을 뗐고 막대기는 거미와 함께 떨어졌다. 덩치가 꽤 큰 거미였음에도 불운하게 막대 밑에 깔렸고 그 충격으로 몸이 터졌다.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놀란 필자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한참 지나 거미가 어떻게 됐나 보러 온 필자는 끔찍한 광경에 경악했다. 어디서 왔는지 개미 수십 마리가 거미 몸을 덮고 있었다. 그때 조금만 침착했으면 충분히 손을 바꿀 시간이 있었는데 하는 자책이 오랫동안 필자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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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기 |
두려운 대상 접근 속도 빠르게 느껴져
최근 생물학학술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두려움이 공간 지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영국 런던대와 미국 에모리대의 연구진들은 같은 거리에서 같은 속도로 다가오는 대상도 거기에 어떤 감정이 실리냐에 따라 그 속도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나비나 토끼가 다가올 때 보다 뱀이나 거미가 다가올 때 사람들은 이 대상이 자기 몸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을 더 짧게 추측한다는 말이다. 나비나 토끼를 보고 4초 뒤라고 답한 반면 똑같은 거리에서 똑같은 속도로 다가오는 뱀이나 거미를 보고는 3초 뒤라고 답한 것이다. 대상이 두려울수록 떨어진 거리를 짧게 느낀 셈이다. 그리고 뱀이나 거미를 두려워하는 정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그 차이가 더 심했다. 즉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공간, 즉 거리에 대한 지각을 왜곡시킨다는 말이다.
피험자들이 모니터를 바라보면 어느 순간 대상이 나타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다 1초 만에 사라진다. 피험자는 대상이 자기 몸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버튼을 누른다. 대상의 크기 변화로 다가오는 속도와 거리를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 뇌가 광학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해(무의식에서) 대상의 실체와 상관없이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대상이 주는 정서에 따라 광학 정보가 왜곡됐던 것. 필자가 어린 시절 거미를 죽게 만든 사건도 막대 끝을 잡은 손을 향해 다가오는 거미에 대한 두려움이 공간 지각을 왜곡시킨 결과일까.
고소공포증과 폐소공포증
공간과 관련된 두려움이 공간에 대한 지각 왜곡과 관련돼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2008년 미국 버지니아대와 윌리엄&매리대 연구진들은 고소공포증, 즉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이를 더 높게 왜곡해 지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8미터 높이의 발코니에서 현재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당시 겁을 더 느낀 사람일수록 높이도 더 높게 지각했던 것.
결국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머릿속 상상으로 즉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만드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의 높이를 실제보다 더 높게 지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건 정서의 영향이 아니라 단순히 공간 지각 회로의 에러로 그냥 거리를 잘못 측량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이 실험 방법을 보면 피험자는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본 뒤 옆에 있는 연구자가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때 멈추라고 해서 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즉 고소공포증인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는 수직거리에 대해서만 공간 지각이 왜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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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직거리 지각을 조사하는 방법. 피험자에게 8미터 높이의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거리를 추측하게 한 뒤(왼쪽) 같은 거리만큼 연구자들이 멀어졌을 때 멈추게 해 거리를 잰다(오른쪽).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발코니 높이를 더 높게 지각했다. ⓒEmotion |
2011년 학술지 ‘인지(Cognition)’에는 또 다른 공간 공포인 폐소(밀실)공포증과 공간 지각 왜곡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이번에 거미와 뱀 실험을 했던 연구진들의 연구결과로, 폐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주변공간을 더 크게 설정한다는 내용이다. 주변공간(peripersonal space)은 개체가 자신의 사적 공간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설정한 범위다. 주변공간 안으로 낯선 대상이 들어오면 대상의 성격에 따라 두려움이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폐소공포증은 엘리베이터나 터널, 만원지하철 같이 좁거나 사람이 밀집한 곳에서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상태다. 따라서 개체가 설정한 주변공간이 클수록 자신이 처해있는 공간을 더 좁게 지각할 수 있다. 한편 갇힌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천적에 사로잡혔을 때 느끼는 두려움의 흔적이라고 해석된다. 실제로 병적인 폐소공포증의 증상은 도망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야생동물이 보이는 행동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왜 공간 지각을 왜곡시킬까. 연구자들은 감각 정보를 해석한 결과인 지각에 정서가 영향을 미치는 건 진화상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즉 두려운 대상이 다가오거나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상황을 좀 더 과장되게 인식함으로써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뱀을 보고 놀라 자리를 피한 뒤 살펴보고 ‘피할 정도 거리는 아니었나…’라고 머리를 긁적거리는 게 낫지 합리적인(즉 광학적인 정보로 계산한) 거리에 이르러서야 움직이면 혹시라도 발이라도 헛디뎌 넘어질 경우 바로 뱀에게 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론적 해석이 고소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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