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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더 힘드실 거예요."
끙끙거리며 인공 암벽에 매달린 기자에게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24ㆍ올댓스포츠)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다음 날이라고? 지금 당장 팔을
들어올릴 힘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김자인 선수 인터뷰는 이렇게 인공 암벽에서부터 시작됐다. 오르기 시작한 지 2~3분
정도 됐을까. 제법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손아귀 힘은 계속 떨어져가는데 그녀는 한참 위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려와서 올라간 높이를 눈대중으로 확인하니 1m도 되지 않는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안간힘을 썼지만 초등학생이
제자리멀리뛰기로 가는 거리도 못 간 셈이다.
실제 대회에서 선수들은 종목에 따라 5~15m에 달하는 인공 암벽에 오른다. 김자인 역시 이날 인터뷰 도중 도저히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인공 암벽을 가뿐히 오르면서 자신이 왜 세계 최고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는 "처음에는 암벽에서 떨어지곤 했지만 이제는 코스 공략을
위해 작전을 짜고 암벽에 매달린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자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 각종 국제 스포츠 클라이밍대회에서 1위를 석권하며 `클라이밍 여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시에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종목 역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김자인 역시 요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외출을 할 때 먼저
인사하시는 분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에 팬페이지도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 톱클래스에 오른 선수들을 볼 때 일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십중팔구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언론을
통해 친숙한 모습만 보여줘도 막상 접하면 친근하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자인은 달랐다.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는 모습은 `여제`가
아닌 `수다스러운 대학생`(그녀는 지난달 24일 대학을 졸업했다)에 더 가까웠다.
항상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훈련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훈련을 반복한다. 김자인
본인이 "욕심이 많고 완벽한 것을 좋아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할 정도다. 외모만 보면 153㎝에 불과한 가냘픈 체구에 귀여운
얼굴이지만 또래 여성들과 달리 거칠어진 손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을 해왔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공
암벽과 씨름을 한 그녀의 손은 벗겨진 지문과 굳은살로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김자인은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 지문이 잘 안 찍혀
고생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스마일` 김자인과 `독종` 김자인의 조화를 이뤄주는 매개체는 바로 가족.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훈련에만 `올인`할 수 있도록
뒤에서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오늘날 김자인이 나올 수 있었다. 김자인 가족은 클라이밍 집안이다. 2남1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난
김자인. 큰오빠 김자하 씨는 김자인 코치를 맡으며 각종 대회에서 김자인의 코스 공략을 돕는다. 클라이밍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둘째 오빠 김자비
씨는 김자인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즐거움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둘도 없는 지원자다.
부모님은 김자인이 어렸을 때 그를 인공 암벽이나 전국 유명한 산에 데리고 다니며 그의 `클라이밍 DNA`를 일깨워줬다. 김자인이 프로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는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반대했지만 지금은 어느 대회를 나가건 "부담 갖지 말고 대회를
재미있게 즐겨라"고 말할 정도로 막내딸을 믿고 아낀다.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은 지난해 김자인이 산악연맹과 갈등을 빚었을 때도 큰 힘이 됐다.
클라이밍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에 출전하라는 연맹 측 방침과 자신이 원하는 월드컵에 출전하겠다는 김자인 측 주장이 충돌한 것. 연맹 측 방침에
반발한 김자인은 전국체전과 월드컵 모두 불참했다. 연맹과 빚은 갈등으로 힘든 시기에도 김자인 가족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그를 격려해줬다.
올해 역시 전국대회와 국제대회 일정이 겹친다. 김자인은 망설임 없이 "작년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답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면 동료
선수들이나 후배들이 같은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만 보여 `너무 여유로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김자인에게서 세계 톱클래스다운 당찬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 She is…
△1988년 9월 11일 출생 △153㎝ 42㎏ △고양 현산초-일산동중-일산동고-고려대 △2010 국제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 대회 5회 연속
우승 △2011 월드컵 밀라노 대회 볼더링 부문 우승 △2011 월드컵 프랑스 중국 벨기에 슬로베니아 바르셀로나 대회 리드 부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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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8일 월요일
암벽의 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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