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토요일

아레시보 메시지와 망가레바 원주민

아레시보 메시지와 망가레바 원주민


소수 원주민도 이진법 사용 밝혀져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60년 만에 돌아온 청마(靑馬)의 해다. 이처럼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는 10간과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라는 12지로 된 60갑자는 일종의 60진법이다. 1분 60초, 1시간 60분으로 된 시간도 60진법을 사용하며, 원의 중심각이 360°인 것도 60진법이라 할 수 있다.

60진법은 고대 수메르인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인류가 어떻게 60진법을 알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는 십진법을 쓰는 문화와 12진법을 쓰는 문화가 결합되어 생겨났을 거라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

▲ 라이프니츠는 컴퓨터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진법의 개발자로도 알려져 있다. ⓒ위키미디어 퍼블릭도메인
많은 문화권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십진법은 10개의 손가락을 사용해 수를 세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시계에 사용되는 로마숫자 Ⅴ(5), Ⅹ(10)의 경우 5진법에 따른 것인데, 이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다섯 개라는 데서 착안된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불어나 영어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20진법은 손가락과 발가락의 수를 모두 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1974년 11월 16일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아레시보 전파관측소는 지구로부터 약 2만5천 광년 떨어져 있는 구상성단 M13을 향해 ‘아레시보 메시지’라는 마이크로파를 발사했다.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수소, 산소, 탄소, 질소, 인 등 5개 원소의 원자번호 및 인간이 사용하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 태양계 행성 위치 등의 내용을 담은 그 메시지는 1679개의 0과 1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요즘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이진법으로 표현된 메시지였다.

아레시보 메시지에 이진법이 채택된 까닭은 그 메시지를 받을 외계인들이 우리처럼 손가락이 10개일 것이라는, 즉 10진법을 사용하리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손의 손가락 수가 모두 6개인 외계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6진법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0과 1, 즉 옮고 그름 혹은 on-off를 기본으로 하는 이진법의 경우 지구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 해도 이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독일 하노버 시에 있는 하노버대는 지난 2007년 개교 175주년을 맞아 대학 이름을 라이프니츠대로 바꾸었다. 18세기 초 세계적인 철학자 및 법학자이면서 수학자이기도 한 라이프니츠가 후반기 40년 생애를 하노버에서 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하노버 시청의 회의실 이름은 ‘라이프니츠 룸’이며, 시 중심 공원에는 ‘이분법’을 형상화한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라이프니츠대는 개명할 때 대학 심벌도 이진법을 표기한 라이프니츠의 친필 글씨를 따서 사용했다.

디지털 혁명을 낳은 이진법
미적분을 최초로 세상에 공표한 라이프니츠는 컴퓨터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진법의 개발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0과 1이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개의 기호를 체계적으로 반복할 경우 십진법의 모든 수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하기 및 곱하기 등의 연산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진법에서 덧셈과 곱셈 등의 단순계산을 할 경우 ‘3+5=8’이나 ‘7×8=56’과 같은 규칙을 암기할 필요 없이 0과 1만을 더하면 된다. 또한 이진법은 0과 1의 조합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 음성, 이미지 등의 모든 정보를 전기신호의 on과 off로 매치할 수 있으므로 아날로그 구조의 인간 인식과 사고, 기술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변화시킨 디지털 혁명을 낳게 했다.

하지만 사실 이진법은 라이프니츠가 이론화시키기 훨씬 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는 주역이 바로 그것이다. 기원이 BC 9세기경의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역의 기본단위인 효(爻)는 이진법의 기본단위인 0과 1에 해당하는 음(--)과 양(―)으로 구성된다. 양(―)의 가운데에 빈 공간 모양의 구멍을 뚫은 형상인 음(--)은 0을 나타낸다.

주역에는 6개의 효가 있는데 각 효에는 양과 음의 2가지가 올 수 있으므로 6개의 효를 조합하는 방법은 2의 6승인 64괘(卦)가 된다.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친구로부터 주역의 도해를 전해 받은 라이프니츠는 주역 64괘가 이진법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동양 수학의 우수성을 극찬했다. 그밖에 마야와 같은 고대문명에서도 이진법과 십진법을 교묘하게 결합해 시간과 천문현상 등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의 안드레아 벤더 교수팀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망가레바 군도의 작은 섬에 사는 원주민들도 라이프니츠보다 300년 앞선 약 600년 전부터 이미 이진법 시스템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라이프니츠보다 300년 전에 이미 이진법 사용
연구진이 19~20세기 초에 발간된 유럽인들의 저서를 이용해 망가레바 원주민의 수 체계를 재구성한 결과, 그들은 십진법과 이진법을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즉, 그들은 1~10에 해당하는 숫자와 ‘2^n × 10’에 해당하는 숫자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타카우(K)는 10, 파우아(P)는 20, 타타우아(T)는 40, 바루(V)는 80을 가리키는데, 따라서 70은 TPK, 57은 TK7로 표시된다.

연구진은 이 같은 시스템이 이진법의 복잡한 계산을 단순화시키는 셈법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을 사용할 경우 ‘2 × K = P’, ‘2 × P = T’와 같은 몇 가지 핵심 규칙만 알면 복잡하게 구구단이나 덧셈 규칙을 암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처럼 기발한 시스템을 고안한 망가레바 군도의 원주민이 현재 고작 600명에 불과한 소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서기 500~800년에 화산섬이 그곳에 처음 도착해 서기 1450년 이전에 이진법 시스템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섬의 원주민들이 어떻게 이 같은 놀라운 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걸까.

이진법 시스템 개발 당시 망가레바 군도에는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거주하며 주로 해산물 및 근채류를 주식으로 삼으로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량의 상거래와 족장들에게 바치는 공물을 측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진법 시스템은 그 자체의 이점 때문에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자생적으로 발달한 인지적 동기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고 추론했다.

망가레바 군도에서 발견된 이진법 시스템을 감안할 때 약 2만5천년 후 아레시보 메시지가 도착할 구상성단 M13에 만약 외계인들이 존재한다면 그들도 그 내용을 거뜬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4.01.03 ⓒ ScienceTime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