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일 일요일

돼지가 돼지처럼 먹는 이유

돼지가 돼지처럼 먹는 이유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6)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돼지처럼 사람에게 봉사하면서도 업신여김을 당하는 동물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은 물론 변소에서 변을 받아먹기도 한다(요즘은 이런 경우가 없지만). 좁은 우리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고 “돼지처럼 게으르다”고 말하는가 하면 ‘돼지처럼 먹어댄다’ ‘돼지처럼 탐욕스럽다’ ‘돼지처럼 뚱뚱하다’ 아무튼 좋은 얘기가 없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유기의 ‘저팔계’는 사람 몸에 돼지머리가 달린 변이체로 식탐이 엄청나고 여자를 밝히는데다 게으르고 심술궂다. 물론 삼장법사를 만나 개과천선을 하지만. 돼지를 비하하는 건 동양문학만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혁명가가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독재자로 변해 가는지를 지도자인 돼지 나폴레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앞으로도 돼지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돼지는 소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고기 공급원일 뿐 아니라(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데 사료가 3분의 1 수준밖에 안 든다) 미래에는 망가진 사람의 장기를 돼지 장기로 대신할 가능성도 크다. 사람과 돼지의 몸집이 비슷해 장기 크기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둔한 미각 예민한 후각
▲ 돼지게놈프로젝트에서 표준 게놈으로 쓰인 DNA를 제공한 암퇘지 타바스코의 박제. 이번 연구를 이끈 미국 일리노이대 로렌스 스쿡 교수 연구실 벽에 매달려 있다. ⓒ로렌스 스쿡
과학학술지 ‘네이처’ 11월 15일자에는 돼지 게놈을 해독한 논문이 실렸다. 소와 닭, 개 등 다른 가축에 비해 늦게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다국적 연구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기관의 과학자가 다수 참가했다. 최근 연구답게 ‘타바스코’라는 집돼지의 게놈을 정밀하게 해독해 ‘표준 게놈’을 만든 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멧돼지와 집돼지의 게놈을 비교 분석해 돼지의 가축화 과정 등을 추적했다.

돼지의 게놈 크기는 염기쌍 28억로 30억 개인 사람보다 약간 작다. 유전자수는 21000여개로 사람과 비슷하다.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 사람과 돼지는 9700만~7900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학명이 서스 스크로파(Sus scrofa)인 오늘날 돼지는 530만~350만 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난 뒤 유라시아에 퍼졌고 약 1만여년 전부터 여러 곳에서 가축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돼지게놈프로젝트는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그 연구결과는 앞으로 여러 학술지에 많은 논문으로 소개될 것이고 이번 ‘네이처’ 논문은 그 개요를 보여주고 있다. 논문을 읽다보면 돼지 게놈의 특징이 돼지의 생태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역시 유전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나보다.

먼저 돼지의 왕성한 식욕은 미각 유전자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돼지는 사람처럼 잡식동물인데 그럼에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사람에 비해 미각의 섬세함이 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돼지는 짠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약간 고장나 있었고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 개수도 17개로 25개인 사람에 비해 적었다. 결국 돼지는 사람은 너무 짜거나 써서 입맛이 당기지 않는 음식도 ‘맛있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사람 똥도 먹는 돼지의 강한 비위는 미각의 둔감함에서 비롯된 셈이다.

다소 퇴화한 미각과는 달리 돼지의 후각은 개보다도 뛰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놈 분석 결과 확인된 후각 수용체 유전자 개수는 무려 1301개이고 이 가운데 86%가 제대로 발현돼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금까지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분석한 동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사람은 1000여개 유전자 가운데 400여 개만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 서양 요리에서 귀한 식재료인 송로버섯은 땅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돼지나 개의 후각을 이용해 채취하는데 돼지가 더 잘 찾는다고 한다. 돼지는 송로버섯 향기를 무척 좋아하는 반면 개는 관심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사실 유럽의 농부들은 오래 전부터 돼지의 민감한 후각을 이용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송이버섯이 인기가 높듯이 서양의 미식가들은 송로버섯을 최고로 친다. 송로버섯은 특이하게도 땅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후각이 별로인 사람으로서는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때 암퇘지를 끌고 가서 풀어놓고 가만히 지켜보면 이 녀석이 킁킁거리다 코로 땅을 파기 시작하는데 이때 돼지를 밀치고 송로를 채취하는 것이다. 돼지는 멀리서도 땅속의 송로버섯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개를 데리고 송로를 채취하기도 하는데 성적은 돼지만 못하다고 한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 돼지는 송로버섯 냄새를 워낙 좋아하지만 개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즉 개에게 송로는 찾는 건 일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후각에서 돼지는 개와 필적하는 동물이다.

장기이식 연구에 큰 도움 줄 듯
한편 생의학 모델 동물로서 돼지의 유용성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흥미롭다. 사람에서 당뇨병이나 파킨슨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게 만드는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곳과 같은 자리가 돼지 게놈에서 112곳이 발견됐다. 따라서 이곳에 변이를 일으킨 돼지를 만들면 인간 질병 모델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게놈을 분석한 돼지 48마리 가운데 발견된 변이 유전자 6개는 질병이 있는 사람에서 발견된 변이와 똑 같았다. 또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망가진 유전자 142개 가운데 11개가 질병이 있는 사람에서도 관찰된 것이었다.

물론 쥐도 사람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고 이를 이용해 질병 모델로 쓰고 있다. 하지만 쥐와 사람은 덩치 차이가 워낙 많이 나고 사람은 주행성, 쥐는 야행성처럼 생활패턴도 판이하다. 따라서 똑 같은 유전자가 고장나도 나타나는 증상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똑 같은 유전자 조작으로 인크레틴이라는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만들 경우 쥐는 심각한 당뇨병 증상을 보이는 반면 돼지는 사람처럼 초기 당뇨 증상을 보인다.

한편 돼지와 사람 사이의 이종간 장기이식과 관련해서 중요한 유전자들도 분석됐다. 돼지내생레트로바이러스(PERV), 즉 돼지 게놈에 박혀있는 바이러스 유전자의 경우 사람 몸에 이식된 돼지 장기에서 이 바이러스가 활성화돼 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분석 결과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돼지는 내생레트로바이러스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강석기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돼지는 다른 어떤 가축보다도 사람과 비슷한 동물이다. 둘 다 잡식성에다 장기 크기도 비슷하다. 또 돼지는 무척 영리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기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반면 개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멧돼지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매우 민첩한 동물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육되거나 야생에 사는 돼지는 약 10억 마리로 그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 있다. 중국 사람들이 워낙 돼지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1000만 마리 가까이 산다. 중형 포유동물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물론 대부분은 1년도 못 돼 사람에게 잡아 먹일 운명이고 그게 존재이유이긴 하지만.

최근 중국의 한 농부가 인터넷에 “중국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건 자살행위”라는 글을 써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돼지를 속성으로 키워 빨리 출하하려고 호르몬, 수면제, 중금속이 섞인 사료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과장된 얘기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안함은 여전하다. 돼지가 아무 거나 잘 먹는다고 이런 짓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2.1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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