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보다 몸을 믿어야 할 때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7)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지닌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인데, 언어 자체뿐 아니라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이 가미되어야만 의사소통이 훨씬 더 수월해진다.- 찰스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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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스 다윈은 1872년 바디랭귀지 분야의 출발점이 된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그림은 찰스 다윈이 죽기 1년 전인 1881년 찍은 그의 마지막 사진을 보고 그렸다. |
몸짓언어라는 번역어보다 영어를 그대로 발음한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는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다. 언어보다는 얼굴표정이나 몸짓 속에 진심이 담겨있고 이를 해석할 수 있다면 대인관계에서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은 책들이 여럿 나와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도 몸짓언어 전문가인 앨런 피즈와 바바라 피즈의 책 『당신은 이미 읽혔다』가 번역출간됐다.
이 책 1장에서 저자들은 “20세기 이전까지 보디랭귀지의 학문적 발전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연구는 1872년 출간된 찰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였다. 이 책을 시작으로 얼굴표정과 보디랭귀지에 관한 수많은 현대적 연구가 뒤를 이었으며, 전 세계의 학자들에 의해 다윈의 이론과 연구가 상당 부분 입증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찰스 다윈 하면 보통 그가 50세 때인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을 자동적으로 떠올리지만 사실 다윈은 이 책 말고도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책들을 저술했다. 다윈이 62세 때인 1871년 펴낸 『인간의 유래』에는 그 유명한 ‘성선택’ 이론이 실려 있고, 그 이듬해에 출간한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는 오늘날 동물행동학과 진화심리학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 출간 140주년이 되는 올해 만일 다윈이 살아있었다면 무척 흥미로워했을 논문이 최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11월 30일자)에 실렸다. 긍정적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극단적일 때는 얼굴표정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고 몸동작이 있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뉴욕대 연구자들은 논문의 첫 문장에서 극단적인 경우의 사례를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복권의 숫자를 확인하던 제니퍼는 1등에 당첨돼 1000만 달러(약 108억 원)를 획득했다는 걸 알았다. 마이클이 자동차 열쇠를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세 살짜리 아들이 차도로 내려갔고 그만 지나가는 차에 치었다.”
이 순간 제니퍼와 마이클은 서로 반대되는 감정의 극단을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얼굴 표정도 극단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어렵지 않게 이들의 감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 이들의 모습을 찍은 뒤 얼굴표정만을 본다면 극도로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다는 것.
연구자들은 테니스 선수들이 경기 중에 보이는 얼굴표정과 몸동작을 찍은 사진을 조합해 이를 토대로 선수의 감정 상태를 평가하게 했다. 즉 서브 에이스나 스매싱으로 공격 포인트를 올렸을 때와 서브를 못 받았을 때나 공격에 실패하고 난 직후 사진 가운데 극단적인 감정 표현이 드러난 것을 골라 사용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보는 사진은 네 가지다. 즉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몸짓, 점수를 땄을 때 얼굴표정과 몸짓,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땄을 때 몸짓(조작된 사진), 점수를 땄을 때 얼굴표정과 잃었을 때 몸짓(조작된 사진)이다. 사진 조작은 교묘했기 때문에 피험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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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극단적인 감정 상태는 얼굴표정보다는 몸짓을 통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아래 네 가지 유형의 사진을 보고 점수를 땄는지 잃었는지 판단한다.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몸짓(1), 점수를 땄을 때 얼굴표정과 몸짓(2),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땄을 때 몸짓(조작된 사진, 3), 점수를 땄을 때 얼굴표정과 잃었을 때 몸짓(조작된 사진, 4) ⓒ사이언 |
네 가지 유형의 사진을 보고 상황을 추측하게 하자 처음 두 유형은 당연히 실제대로 판단했지만 뒤의 조작된 사진은 얼굴표정보다는 몸짓이 판단기준임이 밝혀졌다. 즉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땄을 때 몸짓을 보고는 점수를 땄을 때 모습이라고 판단했고, 점수를 땄을 때 얼굴표정과 잃었을 때 몸짓에는 점수를 잃었을 때라고 평가한 것.
흥미로운 사실은 피험자들의 절반 이상이 정작 자신의 판단기준이 몸짓이 아니라 얼굴표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즉 53.3%가 얼굴표정으로 판단했고 46.6%가 몸짓에서 실마리를 얻었다고 답했다. 즉 점수를 잃었을 때 얼굴표정과 땄을 때 몸짓을 보고는 점수를 땄을 때 모습이라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얼굴표정을 든 사람이 절반 이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기쁨이나 쾌락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슬픔이나 고통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적당한 수준일 때는 얼굴 표정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극단적이 됐을 때 오히려 서로 구분이 가지 않게 되는 걸까.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먼저 감정이 극단적이 되면 얼굴 근육으로 가는 신호가 너무 격렬해져 순간적으로 망가진다는 것. 즉 얼굴 근육은 극단적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한 매체라는 얘기다. 다음으로 정서적인 측면으로 순간적인 강렬한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의식적인 경험 이전 단계로 만들기 때문에 그 감정의 질을 미처 판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렬함만이 얼굴표정에 나타난다고.
극단적인 감정 상황에서 얼굴표정의 부적응(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므로)이 도태되지 않고 남아있는 건 이런 모호함이 몸짓 같은 좀 더 분명한 신호를 통해 가려질뿐더러 강렬한 순간이 지나가면 얼굴표정이 곧바로 감정을 제대로 나타나게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140년 전 다윈의 책에는 이번 연구결과를 해석하는 것 같은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진정한 표현은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모습 속에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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