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3일 화요일

레티노익산에 의한 줄기세포 분화과정 규명

레티노익산에 의한 줄기세포 분화과정 규명

[인터뷰] 엄수종 세종대 생명공학과 교수

 
 
음식에 있는 비타민A가 체내 효소에 의해 대사작용을 거치며 만들어지는 레티노익산(Retinoic acid: RA). 일반적으로 우리가 동물성 음식으로부터 비타민A를 섭취하거나 식물성 음식을 통해 베타카로틴을 섭취할 경우, 체내에서는 이들이 레티날로 전환돼 저장된다.

저장된 레티날은 여러 효소들의 작용을 거쳐 레티노익산으로 바뀌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체내에서 생리적 활성 모습을 보인다. 레티노익산의 대표적인 생리적 기능에는 동물 배아의 발달과 분화, 피부세포의 성장과 유지, 면역기능의 증진과 암 예방 등이 있다.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데 사용돼 매우 중요하지만, 작용기작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레티노익산에 대한 연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본격화됐다. 엄수종 세종대 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레티노익산에 의한 줄기세포 분화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엄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불완전한 분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검문점 역할을 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규명, ‘셀(Cell)’ 자매지인 ‘몰레큘라 셀(Molecular Cell)’ 온라인 판에 논문이 게재됐다.

검문점 역할의 레티노익산
▲ 엄수종 세종대 생명공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줄기세포는 특정기능을 가진 세포로 한 번 분화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때문에 분화신호에 대한 세포의 정교한 대응기작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다.

“레티노익산의 분자생물학적 작용기작에 대해 알려진 것은 세포핵에서 전사인자로 작용하는 레티노익산 수용체와 결합해 이들 수용체의 전사활성을 조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사조절은 수용체와 결합하는 보조인자에 의해 결정돼요. 보조인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보조촉진인자(Coactivator)’이며 다른 하나는 ‘보조억제인자(Corepressor)’입니다. 보조촉진인자는 말 그대로 레티노익산이 존재할 경우 수용체와 결합해 전사활성을 촉진시키고, 보조억제인자는 레티노익산이 없을 때 수용체와 결합해 전사활성을 억제하죠.”

하지만 현실은 이 두 가지 기전으로 핵호르몬 수용체와 관련된 생명현상을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생명체의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많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의 핵호르몬 수용체의 전사조절 보조인자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많은 연구가 이뤄진 끝에 호르몬에 의존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개념의 보조억제인자들을 찾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생리활성을 조절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줄기세포분화 분야에서는 줄기세포를 특정세포로 분화시키기 위해 레티노익산을 처리하죠. 하지만 줄기세포에 처리된 레티노익산의 작용은 수용체를 통해 작용할 것이라는 추정과 현상학적 발견만 존재할 뿐, 분자생물학적 작용기전에 대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엄 교수팀은 레티노익산이 존재할 때 레티노산수용체(RAR)와 결합하는 단백질로 ‘ASXL1(Additional Sex Comb Like 1)’을 세계 최초로 발굴, 그 기능을 분석하고 있다.

줄기세포에서 히스톤단백질(H2B)에 붙어 있는 유비퀴틴을 떼어내는 데 관여하는 두 가지 단백질 ‘BAP1’과 ‘ASXL1’이 레티노익산수용체(RAR)와 복합체를 이루면서 완벽한 분화를 위한 검문점(checkpoint)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에 따라 줄기세포에서는 히스톤단백질(H2B)에 붙은 유비퀴틴을 계속 떼어냄에 따라 염색질 구조가 단단하게 유지되면서 결과적으로 분화 관련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는 것을 밝혀냈다.

엄 교수는 지난 2006년과 2010년, 레티노익산 수용체와 결합하는 ‘ASXL1’ 단백질을 발굴하고, 세포의 종류에 따라 레티노익산 수용체의 전사활성을 촉진·억제하는 기능을 밝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2010년의 연구내용은 핵호르몬 수용체에 작용하는 레티노익산 의존적 보조억제인자에 대한 기전연구로, 해당 연구분야에서 거의 유일한 내용이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연구에서 분자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것으로 레티노익산 의존적 전사활성억제에 대한 생리학적 의미를 밝힐 수 없었어요. 때문에 이번 연구는 ‘ASXL1’의 생리학적 작용기전을 밝히기 위한 일환으로 ASXL1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찾는 연구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BAP1 단백질을 찾을 수 있었죠. BAP1은 구조적으로 단백질 분해에 중요한 유비퀴틴을 제거할 수 있는 도메인을 갖고 있지만, 당시에는 BAP1 효소의 기질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더불어 줄기세포에서 분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기 위해 히스톤단백질의 탈 유비퀴틴화가 일어나고, 분화하는 세포에서는 이와 반대로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기 위해 2B의 유비퀴틴화가 일어나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히스톤 H2B의 유비퀴틴 변형이 줄기세포 분화과정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더불어 어디에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한 것은 그동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또한 줄기세포를 특정세포로 분화시키는 과정에 레티노익산을 처리하는데 이것 역시 레티노익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러한 학문적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레티노익산에 의한 줄기세포 분화조절기전을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결과 레티노익산 수용체 ASXL1과 탈유비퀴틴 효소 BAP1 단백질이 레티노익산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죠. 또한 이 복합체가 줄기세포에서 분화 관련 표적유전자 염색질에 존재하는 히스톤 H2B에서 유비퀴틴을 제거함으로써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어요.”

평생 연구해야 할 운명 같은 단백질
▲ 줄기세포 분화에서의 레티노익산 수용체와 ASXL1, BAP1의 작용 모델  ⓒ한국연구재단

세계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레티노익산에 의한 줄기세포 분화과정을 규명한 이번 연구는 엄 교수가 프랑스에서 핵호르몬학의 대가로 불리는 P. Chambon 교수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레티노익산 수용체와 결합해 활성을 조절하는 인자를 찾고자 했던 Chambon 교수 연구팀에 엄 교수도 포스트닥터로 참여했지만, 몇 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과학자로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이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세종대학교에서 독립된 연구를 진행하면서 레티노익산 수용체와 결합하는 새로운 보조인자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결과 ASXL1을 찾을 수 있었죠. 이 단백질은 전통적인 보조인자와 달리 세포에 따라 두 가지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에요. 저에게는 과학자로서 평생을 연구해야 할 운명 같은 단백질이 됐죠. 계속 진행되는 연구를 통해 분자생물학적 기전은 규명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생리적 의미를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 생체 내에서 레티노익산에 의해 수용체 전사활성이 억제돼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죠.”

통상적으로 전사인자로서 핵호르몬 수용체는 호르몬이 존재하는 환경에 노출되면 빠르게 반응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신속한 반응에는 정확성이 동반돼야 생명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 엄 교수는 그중 대표적인 것이 줄기세포의 분화라고 생각했으며, 연구팀에 축적된 ASXL1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 이 같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던 것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무엇보다 순수 국내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해당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ASXL1과 BAP1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그룹이 몇몇 있지만, 그 연구방향은 암과 관련돼 유전자 변이체를 보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왜 암에서 변이체들이 발견되고 이 변이체들이 어떻게 암을 유발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수준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엄 교수의 연구는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학문적으로 줄기세포의 분화현상을 후성유전학적 접근을 통해 밝혔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줄기세포 분화라는 생명현상에 분화검문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 역시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이를 통해 미약하나마 해당 연구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것 같아 보람과 긍지도 갖고 있고요.”

앞으로 이번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강하는 새로운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는 엄수종 교수. 그는 현재 이번 연구 결과를 갖고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중에 있으며, 동시에 줄기세포 분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레티노익산을 처리했을 때 어떤 기전으로 ASXL1과 BAP1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사라지는지 밝히고 있다.

“더불어 분화검문점이라는 개념을 보편화하기 위해 현재 레티노익산이 아닌 다른 분화신호에서도 작용하는지를 확인하고 있어요. 이번 연구에서는 분화과정에서의 ASXL1-BAP1 단백질 기능을 분석했다면, 앞으로는 이들이 왜 줄기세포에서 발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에서 접근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백질이 특정시기에 발현되면 분명 그 시기에 특별한 기능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7.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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