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8일 월요일

유독성 물질, 이제 안전하게 다룬다

유독성 물질, 이제 안전하게 다룬다

[인터뷰] 김동표 포항공대 미세유체응용화학단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는 산업공장 현장에서 유독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구미시에서 다량의 불산이 새어나가 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숨지고 수백 명의 주민들이 무방비 상태로 불산에 노출됐다.

지난해 경남 함안의 선박업체와 강원 태백, 경북 영주 질소생산공장, 전남 영암 산업단지 등 수차례에 걸쳐 유독가스 누출이 발생했으며, 올해에도 청주 GD 공장과 경기도 화성의 삼성전자, 청주 SK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등에서 불산과 염소 등의 누출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화합물이 누출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해 당시 3천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사망하고 약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가스에 중독됐다. 그나마 생존한 사람도 실명이 되거나 호흡기 장애,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 증상을 보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처럼 유독가스 누출은 인류에 상당한 피해를 안겨줄 수 있는 위험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유해화합물 누출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이에 대한 안전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통합형 미세유체시스템 이용, 효율성 ↑
▲ 김동표 포항공대 미세유체응용화학단 교수  ⓒ한국연구재단
 
유해 가스 노출이 우려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장 가동을 모두 멈출 경우 사회가 받는 타격이 너무 크다. 다양한 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인만큼 가장 좋은 대응책은 안전하면서도 기존 사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4산화오스뮴과 이소시아나이드와 같이 우리 생활에 유용한 물질을 제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험성을 갖고 있는 유독성 물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공학과 김동표 연구팀이 랩온어칩과 통합형 미세유체시스템을 이용해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누출 없이 반응시킬 수 있는 안전한 화학공정을 개발한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영국의 화학전문지 '케미스트리 월드(Chemistry World)'에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랩온어칩(Lab-on-a-Chip)이란 이름 그대로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복잡한 실험을 손톱만한 크기의 칩 위에서 간단히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를 말합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미세한 반응 파이프, 그리고 좁쌀보다 작은 저장소로 구성된 랩온어칩은 평면기판 위에 액체 및 기체 물질이 흐를 수 있는 미세 채널(channel: 작은 도랑)을 통해 다양한 화학·생물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일종의 칩 속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칩 위의 실험실’ 이라는 의미로 ‘랩온어칩’ 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랩옵어칩은 매우 미세한 양으로도 화학·바이오 관련 반응과 분석을 가능케 하므로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넓은 표면적과 빠른 열전달, 물질전달측면에서 우수한 장점을 갖고 있어 기존의 유리 비커를 이용한 실험보다 빠르고 쉽게, 그리고 편리하면서도 높은 효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김동표 박사팀이 사용한 통합형 미세유체 시스템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랩온어칩 형 소자를 직렬로 연결해 화합물을 생산·정제·분리하는 공정과정을 외부노출 없이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작은 화학공장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미세반응기와 미세분리기를 단계별로 배열해 집적한 통합형 미세유체 시스템은 반응물 합성과 추출, 분리, 반응 과정을 연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마이크로 사이즈의 채널을 가진 미세유체 시스템도 화학반응에 들어가는 시료의 양이 적기 때문에 폭발성이 강하고 유독한 냄새가 나는 화학반응을 사고위험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위 두 장치를 이용한 김동표 교수팀은 4산화오스뮴의 외부누출을 막을 수 있는 소형 칩을 개발했다. 4산호오스뮴은 항암 물질 등을 합성할 때 이용되는 중요한 촉매로, 극미량에만 노출돼도 실명을 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유독한 물질로 분류된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형칩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5cm 크기인 작은 칩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도랑(channel) 내부에 4산화오스뮴을 고정시켜 기존 초자반응기보다 약 50배 이상 효율적인 반응이 가능케 했다. 특히 해당 칩은 딱딱한 스탬프 대신 저렴하고 부드러운 몰드를 이용해 패턴을 제작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이외에도 길이 3m, 지름 500㎛의 가는 모세관 안에 이소시아나이드(isocyanide)의 합성부터 정제, 분리, 반응까지 네 개 공정이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도 구축해 기존 초자반응기보다 10~20배 빠른 반응시간을 만들어냈다. 이소시아나이드는 세 개 이상의 화학물질이 결합해 유용한 제약물질을 합성하는, 악취가 심하고 인체노출 시 강한 두통을 유발하는 물질로 인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화합물이다.

유독성 물질 다루다보니 ‘늘 조심’
▲ 촉매고정하는 화학공정미세유체칩  ⓒ한국연구재단

“산업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고 위험이 높은 4산화오스뮴 촉매와 이소시아나이드 화학물질은 오래전부터 독성과 악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 왔습니다. 4산화오스뮴 은 유용한 촉매이지만 극미량(0.2 ppm)에만 노출돼도 실명을 일으킬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죠. 이소시아나이드 역시 극소량에만 누출돼도 지독한 냄새를 일으키기 때문에 당분간 공간사용이 불가할 정도로 악취가 심각해요. 생화학 무기로 사용될 정도로 강력한 독성물질이지만 현대사회에는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중요한 물질이기도 하죠. 따라서 4산화오스뮴과 이소시아나이드와 같이 우리 생활에 유용한 물질을 제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험성을 갖는 물질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이번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유리 비커를 활용한 만큼, 연구자들이 고도로 집중훈련을 받아야 했다. 혹여 조그마한 실수라도 일어날 경우, 실험자뿐 아니라 주위에까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의 연구가 맹독성 및 악취가 심한 화합물을 안전하게 다루는 공정개발인 만큼, 연구과정에서의 안전성 확보가 가장 우선이었어요. 혹시라도 안전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연구기간 내내 걱정스러웠죠. 그리고 맹독성 촉매를 고정하는 고분자 나노브러시를 채널 내부에서 합성 부착하는 과정에서, 고정된 4산화오스뮴 촉매가 쉽게 공기 중 산소에 의해 변성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이뿐이 아니다. 합성된 악취화합물 이소시아나이드를 완전 추출하기 위한 유기용매-수용액 간 최적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유기용매 액적만을 선택해 안정적으로 연속분리하기 위한 멤브레인 칩 제작과 공정개발도 매우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처럼 해당 연구과정이 매우 위험하고 어렵지만 김동표 교수가 이를 감행한 것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한 유독물 처리장치는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러한 진심이 통한 듯, 김 교수팀의 연구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미세유체반응 시스템의 장점을 활용해 개발한 것입니다. 공정을 안전하게 하고 악취성 물질의 효율적인 연속공정을 개발했기 때문에 연구와 산업현장의 오랜 딜레마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볼 수 있죠.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는 이번 연구와 관련, 친환경적인 새로운 화학물질을 개발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말했다. “일반 실험실의 유리 플라스크를 대체할 새로운 화학 실험도구인 미세유체 반응시스템을 활용해 향후 연구와 산업현장에서 유독성 촉매의 안정적인 활용공정, 악취성 물질의 안전한 공정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게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요.”

김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화학공정의 영원한 딜레마였던, 유독성과 악취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협소한 공간에서 저렴하면서도 높은 효과를 지닌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대의 요구에 매우 걸맞은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수요가 필요한 현장에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레고 블록형 공장설비, 게릴라형 다품종 소량 생산설비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특정물질을 즉석 생산하거나 수송이 어려운 물질을 현장에서 생산할 때 매우 적합한 방식입니다. 따라서 석유화학 위주의 단일 물질 대량생산과 판매에만 익숙한 국내 화학산업체의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신개념 벤처산업이 출현해 후속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김동표 교수는 앞으로도 신소재와 새로운 칩 공정 개발로 미세유체 반응시스템 제작단가를 현저히 낮춰, 경쟁력 있는 소규모 화학공장을 개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미세유체 반응시스템의 시험차원을 뛰어 넘어, 기존 석유화학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매스 합성공정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노의학용 약물입자와 기능성 고분자 및 무기물 입자 합성에 대해서도 연구할 예정입니다. 즉 새로운 미세유체 합성기법을 활용해 기존 공정에 비해 노동과 비용, 생산성이 대폭 개선된 혁신적인 물질합성 신 공정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이와 더불어 나노공간에서의 물성변화와 같은 기초연구도 수행할 계획이고요.”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7.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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