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4일 수요일

레이저 가공, ‘넓은 곳에 정확하게’

레이저 가공, ‘넓은 곳에 정확하게’

[인터뷰] 이제훈-김경한 기계연 광응용기계연구실 박사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분야에서는 레이저 빔을 이용해 미세한 가공을 진행하는 ‘레이저 가공’ 기술이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미세가공은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필수적인 기술이 됐는데, 최근에는 터치패널 등의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출시되면서 레이저가공 정밀도는 개선해야 할 과제가 됐다.

레이저 가공 시 사용되는 것에는 ‘레이저 스캐너’와 ‘스테이지 테이블’의 두 가지가 있다. 스캐너와 스테이지는 각각 특장점이 다르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안고 있어, 이를 함께 사용할 경우 업무 효율의 시너지는 올라간다.

“스캐너의 장점은 고속으로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작업영역이 좁죠. 반면 스테이지는 대면적 작업이 용이하지만 작업속도가 느려요. 이 때문에 두 개의 장점인 빠른 속도와 넓은 면적에의 용이성을 활용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죠.”

스캐너-스테이지, 연동제어기술 개발
▲ 이제훈(우), 김경한(좌) 박사가 개발한 기기를 작동하고 있다  ⓒ황정은
 

이처럼 다양한 전자산업현장에 널리 사용되지만, 더욱 높은 효율이 요구되면서 이제훈 기계연구원 광응용기계연구실 박사팀은 이 두 가지 기술을 연합한 ‘스캐너-스테이지 연동제어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레이저 스캐너와 스테이지가 함께 움직이며 대면적에서 정밀하게 레이저 가공을 할 수 있는 원천기술로, 일명 ‘온더플라이(on the fly)’ 기술로 불리고 있다. 해당 연구는 향후 대면적 디스플레이 개발에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대면적 디스플레이를 가공할 때는 ‘스텝&스캐닝(Step and Scanning)’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야말로 연속성 있게 작업을 하지 못하고 스캐너가 좁은 면적을 빠르게 가공하면, 테이블이 움직이면서 다음 가공을 마치는 형태였어요. 이러한 작업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스캔한 영역의 가장자리의 이음매가 예쁘지 않았죠. 따라서 이음매 부분의 품질이 낮아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동기술을 개발한 후, 대면적에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음매 없이 연속적인 패턴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이제훈 박사팀이 개발한 ‘온더플라이’ 기술은 최적경로생성 알고리즘을 통해 스테이지가 연속으로 이동하며 스캐너가 위치 오차를 보정하는 방식이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한 사람이 갈 지(之) 자 모양을 그리며 뛰어가야 한다고 했을 때, 지그재그로 뛰어간다면 속도와 작업효율에 만족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업은 상태에서, 한 명은 뛰고 업힌 사람이 그 상태에서 ‘갈 지’ 자를 그린다면 작업 속도는 매우 향상되겠죠”라고 설명했다.

즉, 등에 업힌 사람이 스캐너 역할에 대한 비유이고 업고 뛰는 사람이 스테이지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오차를 보정한다는 것은 스테이지의 다소 거친 궤적을 스캐너가 특유의 정밀함으로 메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대면적에서의 레이저 가공 품질과 가공시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어요. 연동오차를 10마이크로초(㎲)마다 새로 인식해 가공을 제어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를 갖게 됐죠. 생산성은 약 25% 정도 향상됐고, 고속가공이 가능하다는 점과 연속가공이 가능해 불연속 부위가 없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레이저 가공이 기계 가공을 점점 대체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기술 개발로 적용영역을 다변화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순수 국내기술로 이뤄낸 쾌거
▲ 대면적-고속 레이저 가공 알고리즘  ⓒ기계연

전자산업현장에서 레이저가공기술의 영역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기존의 기술로는 늘어가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미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각국은 해당 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모든 과정을 블랙박스에 넣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이제훈 박사의 이번 연구는 초기 개념을 잡는 것에서부터 순수 국내기술로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사실 현재 몇몇 국내기업들이 해당 연구를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연구원과 유럽회사, 그리고 미국의 제어기업 등 세 회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해오기 시작했어요. 학회에서 만나면 서로 기술을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자극을 받고 있죠. 이번 기술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것인데 앞으로 기업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이전해서, 필드에 더욱 활발히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그동안 많은 연구단체에서 해당 기술을 성공시키지 못한 이유는, 최적경로생성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연동제어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알고리즘 구현 기술과 해당 알고리즘을 실질적으로 시스템에 구동하기 위한 하드웨어 제어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대한 개념 파악이 쉽지 않아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차였다.

“알고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뿐 아니라 많은 수학적 모델링을 거쳐야 합니다. 두 가지 모두 만만치 않은 작업이죠. 국내에서는 이 단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하지만 우리팀은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해당 분야의 실마리를 풀었고, 현재 이에 대한 특허를 약 6개 정도 출원한 상태입니다.”

약 4년에 걸쳐 지금에 이른 이번 연구는 해외 연구결과보다 더욱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 미국 기업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제어기를 시판하고 있지만, 이제훈 박사에 따르면 알고리즘에 대한 개념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우리 연구팀에서 개발한 제품이 가공속도와 정밀도가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하드웨어 제어기술의 앞선 단계인 알고리즘 기반이 탄탄하거든요. 때문에 유연한 대처능력을 구현할 수 있죠. 상(相)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알고리즘이 탄탄하게 잡혀 있으면 이에 대한 대처능력이 유연해지거든요. 현재 국내의 타 기업들에서도 우리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하려 합니다.”

산업융합원천기술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1단계 3년을 넘어, 현재 2단계 1차 연도를 지나고 있다. 1단계 목표인 핵심 알고리즘과 모듈 개발에 성공한 이후, 현재 2차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실제 장비에도 구현하고 있는 상태다.

“성과가 좋게 나와서 기술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타 기업에서도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상태고요. 기업에서도 대면적 디스플레이와 터치패널 시장이 커지면서 연속적인 공정제어기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면적이 점점 커지다보니 업계 종사자들은 스캐너로 대면적 공정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초점길이가 길어지면 정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면적 기술은 단순히 면적을 넓게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정밀도를 지금과 동일하게 구현하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때문에 연동기술은 더욱 필요하게 되죠.”

이번 연구는 아이디어가 매우 돋보이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스캐너와 스테이지의 연동기술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느냐가 관건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 단계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구현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시너지가 합쳐질 수 있었어요.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면 연구소에서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기업에서는 제어보드를 만드는 방식이었죠. 최근 융복합 기술이 새로운 시너지를 높이고 있는데 이번 연구 역시 그러한 일환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김경한 박사는 이번 연구와 관련, “개발된 ‘스테이지-스캐너 실시간 연동 제어 기술(on-the-fly)’은 기존 레이저가공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해당 기술이 성공함으로써 국내에서 디스플레이 산업체나 전자산업분야에서 요구하는 대면적의 고속정밀 가공영역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지게 됐다. 국내 기술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이야기했다.

해당 연구결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터치패널 가공과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의 금형 및 라우팅 공정 대체, 대형 TV 패널 가공 등 활용범위가 매우 다양할 것으로 기대되고 잇다. 더불어 생산성 향상과 제조단가 절감, 환경성 및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기존의 한정된 레이저 가공시장의 벽을 뛰어넘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기업이 연구결과를 실용화할 수 있도록 후속연구에 매진할 것이라는 이제훈, 김경한 박사는 개발된 핵심기술을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탄탄한 계기를 마련하겠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7.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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