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1일 수요일

‘사이언스 쇼’ 전통 이어온 영국

‘사이언스 쇼’ 전통 이어온 영국

수학자 듀 소토이 새 공연 시작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은 과학자가 직접 대중 앞에 나서는 ‘과학 강연’의 역사가 깊다. 전기의 비밀을 밝혀낸 19세기 최고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1825년 실시한 크리스마스 강연을 시작점으로 본다.
▲ 왕립연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연 중인 마이클 패러데이  ⓒWikipedia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1939년부터 1942년까지 4년 동안 중단했던 것을 제외해도 180년이 넘는 연륜을 자랑한다. 정식 명칭은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RI Christmas Lectures)’이다. 지금도 매년 계속되고 있다.

2002년부터 우리나라 영국문화원도 강연자들을 한국으로 초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 행사를 펼쳤다. 지난 4월에도 2011년 강연자인 브루스 후드(Bruce Hood) 브리스톨대학교 심리학 교수를 초청해 서울 창동고등학교에서 ‘고맙다 뇌야’라는 지식강연을 진행했다.

이처럼 대중 강연에 나선 과학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영국 공영방송사 BBC는 유명 과학자들을 진행자로 내세운 과학 다큐멘터리를 연속 제작해 이 분야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아인슈타인에 이은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코스모스’ 시리즈로 과학대중화에 한 획을 그은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 진화론과 무신론으로 무장해 연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등이 BBC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브라이언 콕스(Brian Cox) 맨체스터대학교 물리학 교수가 진행하는 천체물리학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과학다큐 시리즈는 ‘태양계의 경이’, ‘우주의 경이’, ‘생명의 경이’ 등 경이(Wonders)를 제목으로 붙였다. 쉽고 재미있는 설명 덕분에 120만 명에 달하는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TV가 아닌 극장의 무대에 올라 실제로 연극을 벌이는 과학자들도 있다. 청중들과 직접 눈을 마주친다는 점에서 패러데이의 후계자라 불릴 만하며 연기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그보다 더 용감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이언스 쇼(Science Show)’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기도 한다.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마커스 듀 소토이(Marcus de Sautoy)가 주인공이다.

연극을 통해 과학적 지식 전달하는 듀 소토이 교수

패러데이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지치지 않는 호기심과 열정 덕분에 독학으로 과학 공부를 계속한 그는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1800년부터 강연회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부모의 숫자가 늘자 1825년에는 청소년을 위한 과학 강연을 선보인다.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의 출발이다. 패러데이는 총 19번의 강연 중 여섯 번을 양초와 촛불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양초 한 자루의 화학사’라는 책으로 엮어지기도 했다.
▲ 영국왕립연구회는 전용 TV 채널을 통해 마커스 듀 소토이 교수 등 과학자들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동영상으로 서비스 중이다.  ⓒRI Channel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 왕립연구소는 전용 TV 채널을 통해 역대 과학 강연을 한자리에 모아 동영상 서비스를 실시중이다. (홈페이지 http://richannel.org/christmas-lectures)

이후 영국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한 과학 강연의 행렬이 계속되어 왔다. 듀 소토이 교수 같은 독특한 과학자들은 TV 카메라나 강의실 칠판 앞이 아닌 수많은 청중 앞에 서서 수학과 과학의 신비를 연극으로 만들어 설파하기도 한다.

듀 소토이 교수는 강연이 아닌 연극의 형태를 이용해 유쾌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과학 강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에 참여한 연극 중 대표작으로는 2007년 시작해 런던, 뉴욕, 밀라노, 시드니, 뭄바이 등 세계 순회공연을 진행 중인 ‘숫자의 증발(A Disappearing Number)’이 있다.

천재수학자 하디(G.H. Hardy)와 라마누잔(Ramanujan)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2007년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상 최고 희곡상, 2008년 올리비에(Olivier)상 최고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배우가 되어 직접 참여한 작품은 토머스 해든의 소설을 각색한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이 있다. 올해 올리비에상의 7개 부문을 휩쓸며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 덕분에 9월 2일부터 새로운 배우들로 무장해 런던 무대에 다시 올려졌다.

공연예술과 과학 합친 ‘사이언스 쇼’ 도전

지난 8월 17일까지는 ‘브레이니액 라이브(Brainiac Live)’라는 공연에도 참여했다. 무대에서 다양한 재료와 기구를 이용해 직접 과학 실험을 진행하고 원리를 알아보는 융합장르다. ‘사이언스 쇼(Science Show)’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7세부터 70세까지 전 연령을 대상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브레이니액 라이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활 속 요소들을 과학 실험으로 파헤치며 선입견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내놓는다.

공연예술과 과학을 합치고 코미디 요소를 가미한 덕분에 관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일반 공연과는 달리 개인 사진기 촬영을 허용하는 등 제약이 덜해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과학 대중화는 왜 진지한 강연이 아닌 사이언스 쇼 형태를 이용해야 할까. 듀 소토이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의 기고문을 통해 ‘융합형 과학 공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에서 이미 연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또한 가설과 검증을 통해 확실한 지식을 찾아내는 과정은 문학이나 영화처럼 긴장을 유발하고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의 열망은 과학과 결합되었을 때 제대로 충족될 수 있다. 미국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Nicola Tesla)도 대중들을 상대로 신기술을 선보인 덕분에 전기 시설의 열망과 확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듀 소토이 교수는 강조했다.
▲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런던과학박물관(NMSI)에서는 새로운 과학연극 '엑스 앤드 와이(X&Y)'가 진행된다.  ⓒScience Museum
지치지 않는 열정을 자랑하는 듀 소토이 교수는 10월부터 ‘엑스 앤드 와이(X&Y)‘라는 새로운 연극에 도전한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남녀 과학자가 수학과 과학 지식을 이용해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류를 만난다는 내용이다.

상대역은 빅토리아 굴드(Victoria Gould) 요크대 수학과 교수가 맡았다.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극단 컴플리시트(Complicite)와 함께 제작했다.

‘엑스 앤드 와이’는 수학과 과학을 통해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우주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시간은 언제 끝이 나는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우주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 누구나 던졌을 법한 질문에 대해 파고든다.

공연은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런던과학박물관(NMSI)에서,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는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MOSI)에서 진행된다. 공연 안내는 홈페이지(http://www.sciencemuseum.org.uk/visitmuseum/plan_your_visit/theatre_shows/x_and_y) 참조.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3.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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