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에 씌어진 노트를 통해 본 과학의 작동방식
과학명저 읽기 22
과학명저 읽기 1970년 9월, 3년 뒤 열릴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의 준비위원이었던 과학사학자 제롬 라베츠와 천문학자 오언 깅거리치는 영국 요크에서 만나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과연 『천구』를 읽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질문을 던졌으며, 신중하게 책을 읽었을 가능성이 있는 당대인들을 꼽아보았지만 열 사람을 넘길 수 없었다.
그나마 그 열 사람 중에도 책을 교정하고 서문을 쓴 오시안더를 제외하면 확실한 독자는 책의 출판을 줄기차게 종용했던 유일한 제자 레티쿠스와 당대의 천문학 교과서에서 코페르니쿠스를 높이 평가하며 소개했던 에라스무스 라인홀트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케플러와 그의 스승 마에스틀린 그리고 튀고 브라헤는 아마도 신중히 책을 읽었겠지만, 글쎄 갈릴레오나 클라비우스 같은 이들은 이 책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정말 이 책을 심각하게 읽었을까? 사실 그리 믿음직한 역사책이라 볼 수는 없지만, 아더 케슬러는 그의 『몽유병자들』에서 『천구』를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나마 그 열 사람 중에도 책을 교정하고 서문을 쓴 오시안더를 제외하면 확실한 독자는 책의 출판을 줄기차게 종용했던 유일한 제자 레티쿠스와 당대의 천문학 교과서에서 코페르니쿠스를 높이 평가하며 소개했던 에라스무스 라인홀트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케플러와 그의 스승 마에스틀린 그리고 튀고 브라헤는 아마도 신중히 책을 읽었겠지만, 글쎄 갈릴레오나 클라비우스 같은 이들은 이 책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정말 이 책을 심각하게 읽었을까? 사실 그리 믿음직한 역사책이라 볼 수는 없지만, 아더 케슬러는 그의 『몽유병자들』에서 『천구』를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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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틀 후 에든버러 왕립 천문대의 도서관에서 깅거리치의 눈에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초판본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책 거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누군가가 빼곡이 노트를 하고 오류를 교정해 놓은 것이 아닌가. 책 안쪽 표지 아래쪽에는 “천문학의 공리: 천체의 운동은 균일하고 원형이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우주론을 다룬 앞쪽 내용보다는 소 주전원들을 동원하여 좀 더 아름다운 모형을 만들어 행성의 운동을 보여주려는 뒤쪽의 내용에 노트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이틀 전에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후 처음 우연히 눈에 띈 『천구』초판본이 그리도 충실하게 여백을 채운 노트들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우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 편, 라베츠와의 대화가 없었다면 에딘버러 천문대에서 본 『천구』는 낙서로 인해 제 값 받기 힘들어진 고서 정도로나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깅거리치는 그 책의 꼼꼼한 노트들이 바로 에라스무스 라인홀트의 필적이며, 그 책에 이름의 이니셜이 찍혀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 마주친 책에서 독서의 흔적이 발견되고, 그로부터 당대의 저명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에게 호의적인 천문학자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보다는 지엽적인 가설처럼 보이는 주전원들에 관심을 보였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 낼 수 있다면, 초판본들을 좀 더 살펴 보면 훨씬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에딘버러, 케임브리지, 런던, 옥스퍼드를 돌며 찾아 낸 초판본 이십여 권을 더 살펴보면서는 다시 실망감이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책들은 소유했던 사람의 이름은 물론 여백에 아무 내용도 남기지 않았다. 에딘버러에서 본 첫 책 외에 여백에 약간이라도 적힌 것이 있는 책은 단 두 권뿐이었다.
1973년 봄 깅거리치는 100권이 넘는 『천구』초판본을 살피며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연구 중 알게 된 폴란드 학자 도브지키는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가 퇴위하며 로마에서 죽은 후 바티칸 소장품이 된 서적과 미술품 중에 뒤쪽에 수십 쪽의 수고가 합철되어 있어 수고본으로 분류된 『천구』한 편이 ‘오토보니 1902’라는 목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책의 표제에는 에딘버러에서 보았던 라인홀트의 책에서와 똑 같은 “천문학의 공리: 천제의 운동은 균일하고 원형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튀고 브라헤의 우주를 연상시키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에서 도출된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적용된 행성들의 회전궤도”를 그려 보여주고 있었다.
깅거리치는 이 책이 티코 브라헤가 가지고 있던 책이라면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라인홀트를 거쳐 티코에 이르는 일종의 지적 계보가 확인되는 것이 아닌가 기대했으며 그런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8년 말쯤이면 결국 오토보니의 『천구』에 라인홀트의 노트 일부를 베끼고 더해서 ‘태양중심의 천동설’을 그려 넣은 이는 티코 브라헤가 아니라 그의 방문객이었던 파울 비티히라는 이름의 학자였음이 밝혀진다.
비티히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는 두 스코틀랜드 학자들의 소장 책자들에서, 오토보니 본 그림의 지리 좌표가 코펜하겐이나 우라니보그가 아닌 비티히의 출생지인 브라티슬라비아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티코가 비티히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여러 모습을 티고의 전집을 통해 확인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정교하게 벼리며 후학을 키운 사람이 비티히라는 뜻하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993년 초, 4~5일의 긴 천문학사 컨퍼런스가 끝나고 마지막 일요일에는 짧은 마무리 세션이 있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마무리 세션에 참석하지 않고 공항으로 떠났다. 깅거리치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전에 오클라호마 대학의 과학사 컬렉션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이미 그곳 도서관의 책들 특히 오클라호마 대학의 『천구』초판을 살펴 본 일이 있었지만,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깅거리치는 이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초판과 2판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 책들의 표지, 행간, 여백, 앞 뒷면 등에 적혀 있는 내용들을 분석하여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그 책을 읽고 이용했는지를 연구하며 그 내용을 출판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오클라호마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초판본은 여백에 상당량의 노트가 있었지만, 깅거리치의 기억에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베살리우스”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베살리우스가 적어 두었던 내용을 세 가지 옮겨 적는다는 내용의 노트였다. 공항에서 깅거리치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비행기 출발시간이 사실은 댈러스 공항에서의 환승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기록들을 살피다가 그는 오클라호마 본의 바로 그 노트 내용이 다른 일곱권의 책들에 씌어있는 어떤 동일한 내용의 노트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일부 생략된 내용이 있어 오클라호마 본이 나머지 일곱 권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일곱 권의 노트들은 거의 대부분 노트의 원 저자의 시각 그대로 “나는...”이라고 일인칭으로 쓰여있는데, 그 중 한 권은 “스승 요프란쿠스께서 가르쳐 주신 내용”이라며 추가로 적어 놓은 내용이 있으며, 다른 책에서 “나는”이라고 되어 있는 곳 몇 군데를 요프란쿠스로 이해되는 대명사로 바꾸어 썼다.
그런데 오클라호마 본에서는 세 곳에서 “나는”을 “베살리우스”라고 고쳐 써 넣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여덟권의 여백에 있는 노트의 필적은 분명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추종자 또는 제자를 둔 스승이 누구일까? 라인하르트의 노트를 베낀 책들도 몇 권 있고, 비티히의 노트를 베낀 책들도 몇 권 있지만 여덟, 아마도 적어도 열 명 이상이 노트를 베꼈을 학자가 대체 누구일까? ,깅거리치는 그가 어느 날 홀연히 그를 찾아와 배움을 청했던 유일한 제자, 그를 떠밀어 『천구』를 발행하게 한 레티쿠스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대가”(大家)는 요프란쿠스 오푸시우스란 뜻밖의 인물로 확인된다. 몇 가지 다른 정황증거도 있지만, 한 이탈리아의 수학자가 그를 요한네스 프란키스쿠스 겔드렌시스라고 언급한 자료가 있는데, 겔드렌시스란 그가 겔드렌 마을 출신이라는 뜻이며 그 인근에 베젤이란 마을이 있고 오클라호마 본에서 나타난 베살리우스란 베젤 출신이라는 뜻이었다. 많은 내용을 다른 책들이 복사 해 간 원본, 오푸시우스가 지니고 있던『천구』는 스코틀란드 국립도서관 본임도 밝혀졌다. 또 흥미로운 점은 오푸시우스가 코페르니쿠스가 달의 시차를 계산상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스스로도 실수를 했음을 오푸시우스의 노트를 복사하던 제자들 중 아무도 눈치재지 못했다. 그런데 앞서의 파울 비티히의 노트가 오푸시우스의 실수를 지적하고 있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주석에 관한 조사』의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모은 회고록이다.『조사』는 깅거리치가 찾을 수 있었던『천구』초판과 2판 600여 권 한 권 한 권에 대한 서지학적 기술이며, 출판사는 400부를 찍어내면서 이를 모두 팔수는 없으리라 예상했다.
이에 비해『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흥미로운 탐정소설처럼 읽힌다. 그렇게 읽어 가면서 16세기에 출판된 매우 전문적인 책 한권이 오푸시우스나 비티히 등 이제는 잊혀 가는 점성술사나 수학자들을 중심으로 깅거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대학”을 형성하며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학습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 준다.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주제로 하는 한 모임을 위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묻는 대담자에게 깅거리치는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어떻게 의문을 품어야하는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틀 전에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후 처음 우연히 눈에 띈 『천구』초판본이 그리도 충실하게 여백을 채운 노트들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우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 편, 라베츠와의 대화가 없었다면 에딘버러 천문대에서 본 『천구』는 낙서로 인해 제 값 받기 힘들어진 고서 정도로나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깅거리치는 그 책의 꼼꼼한 노트들이 바로 에라스무스 라인홀트의 필적이며, 그 책에 이름의 이니셜이 찍혀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처음 마주친 책에서 독서의 흔적이 발견되고, 그로부터 당대의 저명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에게 호의적인 천문학자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보다는 지엽적인 가설처럼 보이는 주전원들에 관심을 보였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 낼 수 있다면, 초판본들을 좀 더 살펴 보면 훨씬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에딘버러, 케임브리지, 런던, 옥스퍼드를 돌며 찾아 낸 초판본 이십여 권을 더 살펴보면서는 다시 실망감이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책들은 소유했던 사람의 이름은 물론 여백에 아무 내용도 남기지 않았다. 에딘버러에서 본 첫 책 외에 여백에 약간이라도 적힌 것이 있는 책은 단 두 권뿐이었다.
1973년 봄 깅거리치는 100권이 넘는 『천구』초판본을 살피며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연구 중 알게 된 폴란드 학자 도브지키는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가 퇴위하며 로마에서 죽은 후 바티칸 소장품이 된 서적과 미술품 중에 뒤쪽에 수십 쪽의 수고가 합철되어 있어 수고본으로 분류된 『천구』한 편이 ‘오토보니 1902’라는 목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책의 표제에는 에딘버러에서 보았던 라인홀트의 책에서와 똑 같은 “천문학의 공리: 천제의 운동은 균일하고 원형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튀고 브라헤의 우주를 연상시키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에서 도출된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적용된 행성들의 회전궤도”를 그려 보여주고 있었다.
깅거리치는 이 책이 티코 브라헤가 가지고 있던 책이라면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라인홀트를 거쳐 티코에 이르는 일종의 지적 계보가 확인되는 것이 아닌가 기대했으며 그런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8년 말쯤이면 결국 오토보니의 『천구』에 라인홀트의 노트 일부를 베끼고 더해서 ‘태양중심의 천동설’을 그려 넣은 이는 티코 브라헤가 아니라 그의 방문객이었던 파울 비티히라는 이름의 학자였음이 밝혀진다.
비티히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는 두 스코틀랜드 학자들의 소장 책자들에서, 오토보니 본 그림의 지리 좌표가 코펜하겐이나 우라니보그가 아닌 비티히의 출생지인 브라티슬라비아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티코가 비티히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 여러 모습을 티고의 전집을 통해 확인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정교하게 벼리며 후학을 키운 사람이 비티히라는 뜻하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993년 초, 4~5일의 긴 천문학사 컨퍼런스가 끝나고 마지막 일요일에는 짧은 마무리 세션이 있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마무리 세션에 참석하지 않고 공항으로 떠났다. 깅거리치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전에 오클라호마 대학의 과학사 컬렉션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이미 그곳 도서관의 책들 특히 오클라호마 대학의 『천구』초판을 살펴 본 일이 있었지만,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깅거리치는 이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초판과 2판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 책들의 표지, 행간, 여백, 앞 뒷면 등에 적혀 있는 내용들을 분석하여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그 책을 읽고 이용했는지를 연구하며 그 내용을 출판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오클라호마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초판본은 여백에 상당량의 노트가 있었지만, 깅거리치의 기억에 그리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베살리우스”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베살리우스가 적어 두었던 내용을 세 가지 옮겨 적는다는 내용의 노트였다. 공항에서 깅거리치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비행기 출발시간이 사실은 댈러스 공항에서의 환승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기록들을 살피다가 그는 오클라호마 본의 바로 그 노트 내용이 다른 일곱권의 책들에 씌어있는 어떤 동일한 내용의 노트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일부 생략된 내용이 있어 오클라호마 본이 나머지 일곱 권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일곱 권의 노트들은 거의 대부분 노트의 원 저자의 시각 그대로 “나는...”이라고 일인칭으로 쓰여있는데, 그 중 한 권은 “스승 요프란쿠스께서 가르쳐 주신 내용”이라며 추가로 적어 놓은 내용이 있으며, 다른 책에서 “나는”이라고 되어 있는 곳 몇 군데를 요프란쿠스로 이해되는 대명사로 바꾸어 썼다.
그런데 오클라호마 본에서는 세 곳에서 “나는”을 “베살리우스”라고 고쳐 써 넣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여덟권의 여백에 있는 노트의 필적은 분명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추종자 또는 제자를 둔 스승이 누구일까? 라인하르트의 노트를 베낀 책들도 몇 권 있고, 비티히의 노트를 베낀 책들도 몇 권 있지만 여덟, 아마도 적어도 열 명 이상이 노트를 베꼈을 학자가 대체 누구일까? ,깅거리치는 그가 어느 날 홀연히 그를 찾아와 배움을 청했던 유일한 제자, 그를 떠밀어 『천구』를 발행하게 한 레티쿠스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대가”(大家)는 요프란쿠스 오푸시우스란 뜻밖의 인물로 확인된다. 몇 가지 다른 정황증거도 있지만, 한 이탈리아의 수학자가 그를 요한네스 프란키스쿠스 겔드렌시스라고 언급한 자료가 있는데, 겔드렌시스란 그가 겔드렌 마을 출신이라는 뜻이며 그 인근에 베젤이란 마을이 있고 오클라호마 본에서 나타난 베살리우스란 베젤 출신이라는 뜻이었다. 많은 내용을 다른 책들이 복사 해 간 원본, 오푸시우스가 지니고 있던『천구』는 스코틀란드 국립도서관 본임도 밝혀졌다. 또 흥미로운 점은 오푸시우스가 코페르니쿠스가 달의 시차를 계산상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스스로도 실수를 했음을 오푸시우스의 노트를 복사하던 제자들 중 아무도 눈치재지 못했다. 그런데 앞서의 파울 비티히의 노트가 오푸시우스의 실수를 지적하고 있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주석에 관한 조사』의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모은 회고록이다.『조사』는 깅거리치가 찾을 수 있었던『천구』초판과 2판 600여 권 한 권 한 권에 대한 서지학적 기술이며, 출판사는 400부를 찍어내면서 이를 모두 팔수는 없으리라 예상했다.
이에 비해『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흥미로운 탐정소설처럼 읽힌다. 그렇게 읽어 가면서 16세기에 출판된 매우 전문적인 책 한권이 오푸시우스나 비티히 등 이제는 잊혀 가는 점성술사나 수학자들을 중심으로 깅거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대학”을 형성하며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학습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 준다.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주제로 하는 한 모임을 위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묻는 대담자에게 깅거리치는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어떻게 의문을 품어야하는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 소개도서 : 오언 깅거리치, 장석봉 옮김,『아무도 읽지 않은 책: 근대 과학혁명을 불러 온 코페르 니쿠스의 위대한 책을 추적하다』, 지식의 숲, 2008 |
저작권자 2013.09.06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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