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천체와 지구의 충돌, <세계들이 충돌할 때>
SF관광가이드/ 대재앙 이후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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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가이드 외계천체와 지구가 충돌하거나 지나치게 근접하는 경우 (2)
필립 와일리와 에드윈 발머의 <세계들이 충돌할 때>는 한술 더 떠 진짜로 외계의 천체와 지구가 정면충돌 하게 한다. 이번에는 불청객이 혜성이 아니라 태양계 외곽에서 불쑥 뛰어든 미지의 떠돌이 거대 행성이다. 이 장편은 기본 아이디어가 언뜻 이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논란을 빚은 저서 <충돌하는 세계들 Worlds in Collision, 1950>을 연상시킨다.
벨리코프스키에 따르면, 애초에 금성은 목성에서 나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혜성이 되어 떠돌다가 B.C. 1,500년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지구에 접근해 그 꼬리가 닿았으며 화성과도 충돌했다가 결국에 가서 오늘날의 금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필 연대 상 벨리코프스키의 주장이 와일리와 발머의 소설보다 한참 뒤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논픽션 <충돌하는 세계들>이 소설 <세계들이 충돌할 때>의 영향을 받았을 공산이 크다. 오늘날의 천문학 지식으로 판단하건대 벨리코프스키의 주장은 비과학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은하계에 특정 항성에 매여 있지 않은 떠돌이 행성(Rogue planet)들이 배회할 가능성은 과학자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드디어 2013년 10월 10일 하와이대 마노아 천문대는 지구에서 약 80광년 거리의 염소성좌(constellation of Capricornus)에서 멋대로 방향을 정해 자유로이 떠도는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1) 나이가 1,200만년으로 추정되는 이 떠돌이 행성은 목성의 6배나 되는 아주 붉고 거대한 가스 행성이라는 점에서 우연히도 <세계들이 충돌할 때>에 등장하는 설정과 무척 닮아 있다.
<세계들이 충돌할 때>에서는 태양계로 뛰어든 떠돌이 거대 행성 브론슨 알파와 이 행성을 공전하는 지구만한 크기의 위성 브론슨 베타가 지구를 향해 돌진해온다. 양자 간의 거리가 로슈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가까워지자 상호 간에 강력한 조석작용이 일어나 지구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 파편들은 브론슨 알파에 흡수 통합되어버린다. 다행히 이러한 비극적 순간이 일어나기 전에 일군의 사람들이 우주선을 만들어 외계로 대피한다. 그들은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브론슨 베타로 향한다. 잡지 [블루 북 Blue Book] 1932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인기를 끌자 속편까지 나왔다. 1934년 발표된 <세계들이 충돌한 이후 After Worlds Collide>는 소수의 생존자들이 브론스 베타를 탐험하며 겪는 이야기다. (두 편 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번역 출간된 바 있다.)
21세기의 천문학 지식에 따르면, 명왕성은 더 이상 태양계의 끝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 바깥에는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처럼 크기가 제각각인 소천체들이 무수히 많이 모여 있는 지역 외에도 다수의 아(亞)행성2)들이 존재함이 관측되었다. 앞으로 관측기술이 정밀해질수록 아행성들의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명왕성 너머에서 덩치 큰 행성급 천체가 중력균형을 잃고 공교롭게도 안쪽 궤도로 들어오지 못하란 법은 없다는 점에서 <세계들이 충돌할 때>의 전제가 무조건 황당하다 치부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지구가 위험수위에 다다를 염려는 없다는 것이 천체물리학자들의 생각이다. 중량급 천체가 태양계 안에 들어오면 지구와 한참 떨어져 있는 목성과 토성 같은 거대 가스행성들이 우선 필터링을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혜성조차 아주 작은 것이 아니라면 목성 인력에 의해 궤도가 바뀌고 심지어는 1993년 슈메이커 레비 혜성처럼 아예 목성에게 먹혀버리기도 한다. 천체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오히려 목성 같은 거대 행성들이 태양계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지구 같은 내행성들에 위협이 되는 외부 천체들을 흡수하거나 되 튕겨내 지구와 다른 천체와의 충돌 확률을 현격히 줄여주었다고 본다. 물론 외부 불청객의 덩치가 웰즈의 작품에서처럼 항성 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과학적인 설정상의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세계들이 충돌할 때>는 당시로서는 도발적일만치 충격적인 소재로 대중의 인기를 끌어 다양한 매체로 확장되었다. 마빈 브래들리(Marvin Bradley)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재만화 <스피드 스폴딩 Speed Spaulding, 1938~1941>을 그려 신문에 장기 연재했으며, 1951년에는 이전에 <타임머신>을 연출했던 유명감독 조지 팔(George Pal)이 프로듀서를 맡아 동명원작을 극장용 영화로 개봉했다.
필립 와일리와 에드윈 발머의 소설은 이처럼 원작을 곧이곧대로 각색하는 경우 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도 주요 플롯이나 설정 면에서 일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이 발표된 이듬해 알렉스 레이먼드(Alex Raymond)의 만화 <플래쉬 고든 Flash Gordon>은 지구로 돌진하는 불길한 외계행성을 향해 로켓을 타고 떠나는 용감무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은 상황에 놓인 근육질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친구의 모험담으로 바꿔 놓았다. 종말이 닥친 행성을 떠나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에 다다른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1938년 제리 시겔(Jerry Siegel)이 시나리오를 쓰고 조 슈스터(Joe Shuster)가 작화를 맡은 <수퍼맨 Superman>의 탄생신화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한 <세계가 충돌할 때>의 영화판(1951년)은 훗날 지구에 혜성이 충돌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딥 임팩트 Deep Impact>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013년 현재 파라마운트 픽쳐스(Paramount Pictures)가 제작배급을 맡고 스티픈 소머즈(Stephen Sommers) 감독이 연출을 맡은 리메이크 영화가 프리 프러덕션(Pre-production) 중이다.3)
시대의 한계 때문인지 작가들의 과학적 고증노력이 치열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세계들이 충돌할 때>은 과학적인 정합성이 다소 부족하다. 예컨대 천체들의 운동 예측 뿐 아니라 우주선 건조(建造) 방식에서도 과학적인 개연성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에서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선을 지표면에서 제작해 하늘로 띄운다는 단순무식한 발상은 <세계들이 충돌할 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엄청난 질량의 우주선이 지구 중력을 뚫고 초속 11km 이상으로 가속하여 우주공간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천문학적인 연료량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연료량이 늘어나면 이는 곧 질량증가로 이어진다. 연료 때문에 또 다시 연료를 더욱 늘려야 하는 웃지못할 악순환을 겪게 된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말해, 작가는 과학논리상 도저히 뜰 수 없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만일 <스타트랙>에 나오는 엔터프라이즈호 같은 대형 우주선을 만들고 싶다면 우주엘리베이터나 소형 우주선으로 물자를 조금씩 날라 지구 궤도 상공에서 조립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은 <세계들이 충돌할 때>의 발표시점이 1933년이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과학적인 고증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SF 유관업계에 상상력의 불을 지피는 자극제 역할을 톡톡히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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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13.12.19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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