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8일 일요일

우리는 우주론이 없는가

우리는 우주론이 없는가

박석재의 하늘 이야기 (11)

 
 
과학에세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일본인이 말했다.

“태초 이자나기라는 신이 창으로 바다를 휘저으니 일본 열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해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오른쪽 눈에서 달의 여신 츠쿠요미 노미코토, 코에서 바다의 남신 스사노오 노미코토가 각각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스사노오가 속을 썩이자 누나 아마테라스가 동굴 속에 숨어버렸고 세상은 암흑으로 덮이게 됐습니다. 결국 추방된 스사노오가 사람들을 괴롭히던 머리가 8개 달린 뱀을 죽이고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일본입니다…….”

이번에는 중국인이 말했다.

“태초 혼돈의 하늘과 땅 사이에 반고라는 거인이 태어났습니다. 반고가 죽자 왼쪽 눈은 해가 되고 오른쪽 눈은 달이 됐으며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됐습니다. 피는 강이 돼 흐르고 살은 논과 밭이 됐으며 사지는 산으로 태어났습니다. 숨결은 바람이 되고 목소리는 천둥이 됐으며 몸 안의 벌레들은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한국인 차례가 됐다. 한국인은 당황했다.

“우, 우리나라에 우주론은 없습니다. 옛날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먹여…….”

한국인의 단군신화 답변을 듣고 중국 사람이 물었다.
“그럼 한국인은 곰의 자손이네요.”
“그, 그런 셈이지요.”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에 의해 고조선의 역사는 신화로 둔갑하고 우리는 곰의 자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교육받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오늘날 신붓감들을 왜 외국에서 데려오는가. 곰 한 마리씩 사서 쑥과 마늘을 열심히 먹이면 될 것을…….

이번에는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물었다.
“그럼 해와 달은 누가 창조했습니까?”
“우리는 그런 거 없는데. 아, 맞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얘기가 있구나. 옛날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상은 내가 실제로 들은 얘기를 조금 각색한 것이다. 인도의 경우를 보더라도 커다란 코끼리 네 마리가 하늘과 땅을 떠받들고 있는 우주론 설화가 있다. 그 한국인은 우리나라에 우주론이 없다고 단언했다.

과연 그럴까? 당연히 아니다! 하늘의 자손, 천손인 우리 민족에게 우주론이 없을 리가 있는가. 우리 민족은 신화가 아니라 글로 적은, 형이상학적 우주론들을 가지고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부경’이다. 천부경은 신라시대 최치원에 의해 정리됐기 때문에 존재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내용은 한자 81자로 구성됐다.


天符經  천부경
一始無始一析三極無  일시무시일석삼극무
盡本天一一地一二人  진본천일일지일이인
一三一積十鉅無櫃化  일삼일적십거무궤화
三天二三地二三人二  삼천이삼지이삼인이
三大三合六生七八九  삼대삼합육생칠팔구
運三四成環五七一妙  운삼사성환오칠일묘
衍萬往萬來用變不動  연만왕만래용변부동
本本心本太陽昻明人  본본심본태양앙명인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중천지일일종무종일

총 81자의 글자 중 31자가 숫자인 이 경전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수없이 많은 해석이 있지만 모두 제각각이다. 독자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천부경’을 검색해보기 바란다.
▲ 천안에 있는 국학원 현관의 천부경  ⓒ박석재

놀라운 것은 천부경의 철학이 현대 우주론의 ‘정상우주론’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정상우주론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이 발견한 팽창우주부터 알아야 한다. 팽창우주에서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축우주가 돼 모든 은하가 한 곳에 모인다. 바로 그 순간을 우리는 ‘태초’라고 부른다.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도 크고 무지막지하게 뜨거웠을 것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한 점에 모여 있었으니 이는 당연하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Big Bang, BB)을 일으켜 팽창 우주가 됐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빅뱅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팽창을 거듭함에 따라 당연히 평균 밀도는 감소하고 배경 온도 역시 떨어진다. 따라서 초기 우주의 모습과 나중 우주의 모습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이론과 달리 초기 우주와 나중 우주의 모습이 변치 않는다는 우주론이 제시됐다. 즉 우주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은하가 하나씩 없어지면 태초의 높은 밀도와 온도를 피할 수 있다는 우주론이다. 따라서 시간이 원래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 우주론에서는 은하가 하나씩 생겨야 한다. 그래서 이 우주론을 연속창생(Continuous Creation, CC) 우주론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定常宇宙論’ 같이 적는데 모양이 정해져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 비정상 할 때 정상이 아님에 유의하자.

BB와 CC의 대결은 5, 60년대 과학사에서 유명한 사건이 돼버렸다. 이는 당시 미국의 두 여배우 MM과 GG의 대결에 자주 비교됐다. 여기서 MM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GG는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를 말한다. BB는 가모프(Gamow) 등 미국 천문학자들에 의해, CC는 호일(Hoyle) 등 영국 천문학자들에 의해 주장됐다. 이 미국과 영국의 대결 결과는 BB의 KO승으로 끝났다.

천부경의 첫 구절 ‘一始無始一’은 ‘한 번 시작하되 시작이 없다’, 마지막 구절 ‘一終無終一’은 ‘한 번 끝나되 끝이 없다’ 같이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CC 우주론과 철학이 비슷한가. 천부경이 다른 민족들의 신화적 우주론과는 격이 다른 내용을 보여주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옛날 동양에서 현대물리학의 철학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태극이 은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옛날 동양에서는 이미 은하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천부경은 구전돼 내려오다가 고조선 이전의 우리나라, 즉 배달국 첫 환웅 때 신지 혁덕이라는 사람이 녹도문자로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신지 혁덕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 한 마리를 놓쳤는데 추적 끝에 평평한 모래밭에 이르러 발자국을 발견했다. 고개를 숙이고 깊은 사색 에 잠긴 끝에 ‘그래, 이런 식으로 글자를 만들면 되겠다’ 깨달아 만든 글자가 녹도, 즉 사슴그림 문자였다.

최치원이 한자로 정리하기 이전 누군가 천부경을 녹도문자에서 갑골문자로 바꿔 적었을 것이다. 실제로 2002년 고려시대 민안부의 ‘농은유집’ 문집에서 그림과 같은 갑골문자로 적힌 천부경이 발견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 역시 ‘환단고기’처럼 진위 논쟁에 휩싸여있다.

천부경의 존재는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천부경에 관한 책이 거의 없어 유감이다. 김진명 소설 ‘최후의 경전’에서 프리메이슨 조직이 받드는 유대 민족의 ‘카발라’ 경전과 당당하게 맞서는 천부경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최후의 경전’이 바로 천부경이라는 얘기다. 나도 2011년 ‘개천기’라는 역사소설을 발표한 바 있는데 천부경 81자를 최초로 갑골문자로 적은 배달국 천문대장의 얘기다.

TV 연속극 ‘주몽’에서도 주몽이 천부경이 새겨진 거울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은 광활한 고조선 영토가 그려진 지도를 펼쳐보는 장면과 함께 나에게 강한 감동을 줬다. 아무쪼록 이런 식으로 환인, 환웅, 단군의 시대 — 삼성조 시대 TV 연속극도 앞으로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연산군, 장희빈, 세종, 충무공, ……, 좀 지겹지 않은가.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2013.08.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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