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코리안 밸런타인데이

코리안 밸런타인데이

박석재의 하늘 이야기 10

 
 
과학에세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홀수를 ‘하늘의 숫자’ 천수로, 짝수를 ‘땅의 숫자’ 지수로 여겼다. 그래서 우리나라 명절은 음력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이 됐다. 즉 음력 1월 1일이 설날, 3월 3일이 삼짇날, 5월 5일이 단오, 7월 7일이 칠석, 9월 9일이 중양절인 것이다. 음력 2월 2일, 4월 4일, 6월 6일, 8월 8일, 10월 10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강릉에서는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지자체들이 다른 명절, 특히 칠석에 왜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해마다 2월이 되면 국적 없는 기념일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에 초콜릿을 파는 백화점도 칠석날에는 떡이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날이 되면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딱 한 번 만난다는, 초등학교만 다녀도 누구나 다 아는 사랑 얘기를 외면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유학시절 미국 사람들이 음력 설날을 ‘중국 설날(Chinese New Year)’ 같이 표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칠석을 ‘중국 밸런타인데이(Chinese Valentine's Day)’ 같이 부를 날도 머지않았다. 최근 중국은 이 이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몇 년 후에는 우리나라 백화점들이 중국 밸런타인데이라고 떡을 팔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중국 동화집에서 견우와 직녀 설화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시아의 여러 나라 지자체들이 견우와 직녀 설화가 자기네 고장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고 있다. 견우와 직녀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나온다. 그림 왼쪽 아래 소를 끌고 가는 남자가 견우이고 뒤를 따라가는 여자가 직녀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 도랑 같은 것은 은하수인 것이다.
▲ 고구려 고분 벽화의 견우와 직녀  ⓒ연합뉴스
 

한번은 아이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교육기부 행사에서 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견우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답은 ‘한우’였다. 견우와 직녀가 졸지에 ‘한우와 직녀’가 된 것이다. 하긴 당시 수입된 소는 없었을 테니까 아주 틀린 답이야 아니겠지만….

견우와 직녀 설화는 너무 오래 돼서 사실 어느 민족으로부터 비롯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동양의 아담과 이브’로 알려진 나반과 아만이 바이칼 호수를 건너 만났다는 설화가 견우와 직녀 설화의 시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도 칠석을 ‘코리안 밸런타인데이(Korean Valentine's Day)’ 같이 부르고 행사도 좀 열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시가 8년 전 내 건의를 받아들여 첫 견우직녀축제를 개최한 이래 올해까지 한해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대전의 과학공원과 문예공원 사이 엑스포다리는 오작교 그 자체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모습은 남녀와 음양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그 다리를 공식적으로 ‘견우직녀다리’라고 명명했다. 덕분에 갑천은 ‘은하수’가 된 것이다.
▲ 대전의 ‘견우직녀축제’ 한 장면  ⓒ박석재

올해의 칠석은 8월 13일(화)이지만 견우직녀축제는 10일(토)부터 11일(일)까지 이틀간 열린다고 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행사 내용도 다양해져서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 대전시장이 70년을 해로한 노부부에게 기념품을 주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올해 행사 포스터도 예쁘게 잘 디자인됐는데 안타깝게도 틀린 것이 있다. 독자 여러분도 찾았는가? 정답-칠석은 음력 7일이어서 보름달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 2013 견우직녀축제 포스터  ⓒ대전시

최소한 올여름에는 아이들에게 견우성과 직녀성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자. 여름철 한밤중에는 은하수가 바로 머리 위에 드리워진다. 여름은 은하수가 1년 중 가장 웅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고개를 들어 중천을 바라보면 밝은 세별이 커다란 ‘여름철 대삼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1개는 은하수 속에 잠겨 있고 나머지 2개는 은하수의 가장자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나중 두 별이 바로 그 유명한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 여름철 대삼각형  ⓒ장승혁

사진에서 상변 중앙 밝은 별이 직녀성이고 은하수 건너 오른편 하단 밝은 별이 견우성이다. 서양식으로 견우성과 직녀성은 각각 독수리자리 알테어(Altair), 거문고자리 베가(Vega) 별을 말한다. 왼편 중앙 은하수에 잠겨 있는 별은 백조자리 데네브(Deneb)다. 이 사진을 보니 음력 7월 7일이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진짜 하늘에서 만나는 줄 알고 새벽까지 기다렸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2013.08.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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