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일 토요일

내 몸에 여러 가지 게놈 있다!

내 몸에 여러 가지 게놈 있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39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들이 암 연구에 뛰어들었고 들어간 연구비도 엄청나다. 덕분에 암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자신했던 암 정복의 꿈은 아직 요원한 것도 사실이다. 암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은 암이 유전자 질환이라는 사실. 즉 단순히 외부요인이 세포의 성격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게놈 자체가 바뀌어야 암세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이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일어난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암이 생기기 쉬운 돌연변이 유전자를 받는 경우다. 최근 영화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멀쩡한 가슴을 통째로 제거해 화제가 됐는데, 졸리는 유방암 관련 유전자 검사 결과 자신이 브라카1(BRCA1)이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는 걸 알고 수술을 결심했다고 한다. 졸리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사망했는데,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경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0%라고 한다.

두 번째는 살아가면서 돌연변이가 생기는 경우다. 자외선이나 방사선, 발암물질에 노출돼 체세포 게놈을 이루는 DNA가 손상돼 변이가 생기면 결국 그 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면서 암으로 발전한다. 사실 아무리 조심해도 이런 손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는데,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암에 걸리지 않는 건 면역계를 비롯한 생체 시스템이 비정상 세포를 계속 솎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 대다수는 부모에게서 받은 게놈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을까.

일생 여러 단계에서 변이 일어나
학술지 ‘사이언스’ 7월 26일자에는 미국 베일러의대 제임스 럽스키 교수의 흥미로운 글이 한 편 실렸다. 게놈이 변이는 암세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 한마디로 한 사람이 여러 게놈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One Human, Multiple Genomes).
▲ 게놈 모자이크는 여러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즉 수정체가 분열할 때 일어난 게놈 변이 가운데 세포에 치명적인 것은 사라지지만(빨간색 ×표시) 그렇지 않은 경우(녹색)는 태아의 조직이나 기관을 이룬다. 태아의 체세포분열과정에서 일어난 게놈 변이(보라색)은 성체의 몸에도 모자이크로 남아있다. 한편 생식세포가 만들어질 때도 게놈 변이가 일어난 난모세포가 만들어진다(빨간색, 보라색).  ⓒ‘P. Huey/Science’

생물학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생각하면 부모의 생식세포, 즉 난자와 정자가 합쳐져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게놈의 구성이 결정된다. 그 뒤 세포분열이 일어나 궁극적으로 60조개 세포로 된 개체가 되지만 각각의 세포는 출발점인 수정란과 동일한 게놈을 갖고 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여기서 벗어난 경우가 암세포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변이는 여러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 결과 우리 몸은 게놈이 서로 조금씩 다른 세포들의 모자이크라는 것. 암세포는 이런 변이의 결과 세포분열이 통제가 안 되는 경우일 뿐이다.

부모는 갖고 있지 않은 게놈의 변이는 삶의 여정에서 여러 시기에서 일어날 수 있다. 먼저 부모의 생식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변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수정란에 그 변이가 전달되고 따라서 여기서 분열한 모든 세포에 변이가 존재할 것이므로 모자이크는 아니다. 다음으로 수정란이 분열해 한 개체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특정 세포의 게놈에 변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그 세포의 종착역인 조직이나 기관을 이루는 세포는 다른 게놈을 갖게 된다. 한 개체로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특정 세포에 변이가 일어나면 국소적으로 게놈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몸이 다양한 게놈을 갖고 있는 세포들의 모자이크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세포 하나의 게놈을 해독할 수 있는 차세대 게놈해독 기술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이런 연구가 가능했다. 그 결과 이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현상들이 하나 둘 제대로 규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의 경우 같은 사람의 세포에서 얻었음에도 세포마다 게놈이 조금씩 다르다는 현상이 알려져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불안정성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개별 체세포의 게놈을 해독해보니 이미 이런 변이가 존재해 있었던 것.

조승우 주연의 영화 ‘말아톤’이 다루는 자폐증의 경우도 상당 부분이 체세포 변이로 인한 게놈 모자이크의 결과라는 연구결과들이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에 잇달아 실렸다. 또 조발성 치매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도 게놈 모자이크 현상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놈 변이는 단순히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그치는 건 아니다.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 전부 3개가 돼 발생하는 다운증후군은 보통 부모 가운데 한 쪽에서 21번 염색체가 두 개 있는 비정상 생식세포가 수정에 참여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요즘은 양수검사를 통해 태아의 다운증후군 여부를 검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1994년 학술지 ‘미국인간유전학저널’에는 흥미로운 논문이 한편 실렸다. 21번 염색체가 세 개인 세포가 모자이크로 존재하는 다운증후군의 사례가 발표된 것. 즉 부모로부터는 정상 개수의 염색체를 받아 수정란이 만들어졌지만 발생하는 과정에서 21번 염색체가 비대칭적으로 나뉘어 3개인 체세포가 만들어져 몸의 일부를 구성했고 그 결과 다운증후군 증상이 나타난 것.

이 밖에도 우리 몸에 모자이크로 특정 염색체가 3개인 세포가 존재하는 경우는 1번, 8번, 9번, 16번, 17번, 22번 등 다양한 염색체에서 일어난다. 흥미로운 건 부모의 생식세포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개수를 받으면 수정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자연유산할 정도로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 몸의 일부만이 이런 비정상 세포이기 때문에 개체가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

최근 연구결과 게놈이 생각보다 불안정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유전자 돌연변이나 염색체 수 이상 뿐 아니라 게놈 재배치, 복제수변이(CNV), 전이요소의 유동성 등 다양한 사건들이 세포에서 일어날 수 있다. 럽스키 교수는 “사람의 배아가 발생할 때 염색체의 불안정성은 흔한 일”이라며 “정상적으로 발생한 배아의 70%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염색체가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체세포 모자이크가 질병의 원인이거나 잘해야 개체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부정적인 사건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몇몇 연구자들은 체세포 모자이크가 어떤 생물학적 기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항체를 만들어내는 면역세포의 게놈으로 항체를 지정하는 유전자 부위는 다양한 재조합의 결과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 결과 면역계가 만들 수 있는 항체는 침입한 병원체의 광범위한 표면구조 범위에 대응할 수 있다. 럽스키 교수는 “사람 뇌에 있는 다양한 유형의 신경세포는 체세포 모자이크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국제결혼이 늘면서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다문화’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단일게놈’을 공유하고 있는 세포의 집합체라고 생각하고 있던 우리 몸에 대한 인식도 ‘게놈 모자이크’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게 되지 아닐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08.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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