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일 토요일

‘남성의 종말’ vs ‘여성의 시대’

‘남성의 종말’ vs ‘여성의 시대’

성염색체 연구에서 드러난 남녀의 비밀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신종 용어 중에 ‘남성 감기(man-flu)’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정도의 감기 증상을 가지고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질병을 앓는 듯이 반응할 때를 비꼬아 일컫는 용어다. 사실 여자들은 건강 및 질병에 있어서 남자들보다 더 튼튼하다. 남자보다 강한 면역체계를 가지며 암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것이다.

통계상으로도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며, 염증 및 감염, 트라우마에 대해 더 잘 저항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벨기에 겐트대학의 클로드 리베르 박사는 X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마이크로 RNA가 면역시스템 및 암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 Y염색체는 유전자가 쇠퇴했지만 더 이상의 변화가 없는데 비해, 여성을 상징하는 X염색체는 안정된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ScienceTimes

건강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일자리 등에서도 ‘여자의 바람’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불고 있다. 미국의 초·중·고교에서는 남학생의 학업 성적이 갈수록 떨어지는 반면 여학생들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대학에서도 학사 및 석사 학위의 60%가 여자들의 몫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전역의 고등교육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본래 남성들이 독차지했던 직업인 교직과 약사는 이제 여성들의 전용 일자리가 되고 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미래에 가장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15개 업종 중 12개가 여성들의 차지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남성들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사상 최저치이며, 남성들의 연간소득도 지난 40년간 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미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여성 가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전업주부로 가사를 돌보는 남편이 지난 15년간 3배나 늘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기업 CEO, 정치 지도자, 전문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내용의 책이나 특집기사들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해나 로진은 자신의 저서 ‘남자의 종말’에서 “4만년간 세상을 지배한 남자를 40년 전부터 여자가 밀어내면서 성(性)의 권력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분석되고 있다. 첫째 이유는 남성들의 퇴화 때문이다. 호주의 고인류학자 피터 매캘리스터는 ‘남성퇴화보고서’라는 저서에서 현대 남성은 고대 남성들보다 힘과 외모, 성적 능력 등에서 오히려 퇴보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원인은 현대 사회가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힘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점차 쇠퇴하는 반면 현대사회는 조용히 공부하고 감정적으로 섬세하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므로 유전학 및 문화적면에서 여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Y염색체 종말론' 반박하는 연구결과 나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성의 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꾸준히 위축되어 마침내는 사라질 것이라는 ‘Y염색체 종말론’까지 등장한 바 있다. Y염색체는 2~3억년 전 포유류의 공통조상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과 암컷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들의 성은 유전자가 아니라 기온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던 것.

그러다가 SOX3라는 성관련 유전자로부터 SRY라는 유전자가 진화해 수컷을 수컷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최초의 Y염색체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 후 Y염색체는 수백 개의 유전자를 잃고 점차 쇠퇴해 이제는 X염색체와 뒤섞을 수 있는 유전물질이 염색체의 끝부분에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2002년 호주의 제니퍼 그레이브스 박사 등은 “Y염색체가 쇠퇴하는 속도를 계산한 결과 앞으로 1천만 년 후에는 자폭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논문을 네이처 지에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로 두더지들쥐와 고슴도치 등 일부 포유류는 이미 Y염색체를 상실함에 따라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에서 등장했다. 때문에 인간의 Y염색체도 이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이 논문에 반박하는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Y염색체 종말론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Y염색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대표적인 연구결과 중의 하나가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의 것이다. 제니퍼 휴즈와 데이비드 페이지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Y염색체는 2천500만년 전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조상인 붉은털원숭이가 가진 염색체와 비교할 때 유전자 하나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

2천500만년은 Y염색체의 역사에 있어 매우 긴 시간인데, 그처럼 변한 게 없다면 앞으로 5천만년 동안은 인간의 Y염색체가 건재할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밝힌 데이비드 페이지 박사가 최근 X염색체는 진화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예상과는 달리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의 유전학자 스스미 오노는 약 50년 전에 “X염색체의 불활성화가 X염색체의 진화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X염색체 유전자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해
포유류의 몸은 하나의 활성화된 X염색체만을 필요로 하므로, 한 쌍의 X염색체를 지닌 암컷의 경우 두 번째 X염색체는 불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스스미 오노는 “X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의 내역은 대부분의 포유류에 걸쳐 매우 유사할 것”이라는 ‘오노의 법칙’을 내놓았다.

페이지 박사는 이 법칙이 진화학적으로 약 8천만년의 격차가 있는 인간과 마우스 사이에도 성립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X염색체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들을 하나씩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한 것. 그 결과 스스미 오노의 예측과는 달리 인간의 X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 중 144개가 마우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으며, 마우스의 X염색체 역시 197개의 독특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X염색체의 유전자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페이지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인간만의 독특한 X염색체 유전자들이 인간의 진화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이 유전자들은 예상과는 달리 주로 고환 조직, 그중에서도 특히 후에 정자가 되는 부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페이지 박사는 “X염색체는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안정적인 생활과 더불어 남성의 특징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무쌍한 ‘이중적 생활’을 한다”고 표현했다.

즉, 페이지 박사가 밝힌 최근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남성을 상징하는 Y염색체는 유전자가 쇠퇴했지만 더 이상의 변화가 없는데 비해, 여성을 상징하는 X염색체는 안정된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결과가 요즘의 뒤바뀐 남성과 여성의 위상 및 역할을 콕 꼬집어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8.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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