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일 토요일

유행 따라 변하는 황금주파수

유행 따라 변하는 황금주파수

이동통신 3사의 주파수 전쟁 내막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1994년 12월 5일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은 기자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사상 최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무슨 경매이기에 부통령이 직접 나섰던 걸까. 그날 경매에 나온 상품은 골동품이나 유명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2GHz 주파수였다.

예전 같으면 주파수 사업권은 감독위원회 등에서 무료로 배정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바로 그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게임이론을 토대로 주파수를 경매에 부쳤다. 이 혁명적 시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다음해 봄에 종료된 주파수 경매에서 미국 정부는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2011년 6월 29일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파수를 경매에 부칠 수 있게 됐다. 그해 8월 진행된 최초의 경매에서 이동통신 3사는 총 1조7천여 억원을 내고 각각의 주파수를 할당받았다.
▲ 시대에 따라 이동통신사들이 선호하는 황금 주파수가 달라지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

정부는 올해 8월에도 종전에 군과 위성DMB에서 사용하던 1.8GHz 대역과 2.6GHz 대역의 총 140MHz 폭을 이동통신 3사에 내놓을 예정이다. 그런데 6월로 예정된 정부의 할당 공고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이동통신 3사 간의 주파수 전쟁이 정보통신업계의 새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1.8GHz 구간 내의 1.83~1.84GHz 대역이 KT에 돌아가는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KT는 바로 그 인접 대역인 1.84~1.85GHz 대역을 2G용으로 갖고 있다. 따라서 8월에 1.83~1.84GHz를 확보하게 되면 KT는 아주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만 투자하고서도 현재 LTE 속도인 75Mbps보다 2배나 빠른 최고 통신속도 150Mbps의 광대역 LTE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1.83~1.84GHz 대역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에 돌아갈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다. SK텔레콤이 1.8GHz 구간에서 갖고 있는 대역은 1.85~1.86GHz이므로 그 대역을 확보한다고 해도 한 길 건너 또 다른 길 하나를 확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또 800MHz와 2.1GHz의 주파수를 통해 LTE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LG유플러스의 경우 그 대역은 더 멀기만 하다.

만약 KT에 그 대역이 할당될 경우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가 KT와 비슷한 수준의 광대역 LTE를 구축하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훨씬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 때문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공정하게 경쟁을 하기 위해서 KT에 1.83~1.84GHz 대역을 할당하는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KT는 공공재인 주파수의 파편화를 막고 자원의 효율성을 위해서 그 주파수 대역을 꼭 할당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전엔 800MHz가 황금 주파수
사실 음성통화 중심인 2G 시대만 하더라도 이번 논란의 핵심인 1.8GHz 대역은 인기가 없던 주파수였다. 대신 그때는 SK텔레콤이 독점하고 있던 800MHz 대역이 황금주파수였다. 따라서 KT와 LG유플러스가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면서 2010년에 결국 KT와 LG유플러스도 800~900MHz 저대역 주파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왜 이처럼 상황이 뒤바뀐 것일까. KHz 대역을 사용하는 AM방송과 MHz 대역을 사용하는 FM방송을 비교해보면 보다 이해가 쉽다. AM처럼 저대역 주파수는 훨씬 먼 곳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물을 돌아 나가는 회절 현상으로 인해 정보량의 일부가 손상될 수 있으며 감도가 떨어지는 단점을 지닌다.

이에 비해 FM처럼 고대역 주파수는 직진성이 강해 장애물을 만나면 전파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장애물에 부딪히면 그대로 뚫고 지나가거나 반사되는 것. 대신에 이 같은 직진성은 음질의 감도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

또 하나, FM방송은 주파수의 폭이 0.2MHz 정도 된다. 만약 93.1MHz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방송의 경우 실제로는 93.0~93.2MHz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파수 단위가 낮은 AM방송의 대역폭은 불과 0.009MHz밖에 되지 않는다. FM방송은 주파수의 폭이 넓은 만큼 고음질의 스테레오 방송을 할 수 있는 반면, AM방송은 대역폭이 좁아 사람 목소리만 잘 들릴 뿐 고음질의 음악 방송을 할 수 없다.

휴대폰도 이와 마찬가지다. 음성통화가 주였던 2G 시대에는 주파수의 대역폭이 넓은 것보다는 먼 곳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저대역 주파수가 유리했다. 그래야 기지국을 적게 세우고도 지하나 산악 공간에서의 통화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량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고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주파수 대역이 넓어질수록 보낼 수 있는 정보량도 늘어나므로 스마트폰의 통신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넓은 대역은 필수적이다. 특히 LTE는 주파수 대역 폭과 무관하게 통신 속도가 일정한 3G와 달리 대역폭이 곧 속도를 결정하는 특성을 지닌다.

게다가 외국 통신기업들도 대부분 1.8~2.2GHz 대역을 4G 서비스용으로 선택하고 있으므로 해외 출국 시의 로밍 서비스에도 800MHz 대역보다 1.8GHz 대역이 훨씬 유리하다.

과학자들은 초고주파인 밀리미터파에 주목
그러나 이런 추세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2G 시대가 마감된 후 그 주파수를 회수해 다시 할당할 경우 지금은 찬밥 신세인 저대역 주파수 900MHz가 각광 받을 수 있다. 900MHz는 전 세계 160개국이 사용하는 주파수라는 장점이 있다.

한편, 과학자들은 현재 군사나 우주개발 같은 특수 목적으로 사용하는 ‘밀리미터파’를 주목하고 있다. 밀리미터파는 30~300GHz에 달하는 초고주파를 일컫는다. 초고주파인만큼 파장이 cm보다 작은 mm 수준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밀리미터파는 진동 횟수가 너무 높고 직진성이 강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러나 직선 구간에서 특별한 장애물만 없다면 많은 양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사용 정보량이 훨씬 많아질 미래의 이동통신기기들이 지금의 주파수 대역으로는 그 엄청난 정보량을 전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부상되고 있는 이유다. 따라서 밀리미터파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 지금의 주파수 고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이다.

유행 따라 돌고 도는 여성들의 패션처럼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의 선점 경쟁도 앞으로 어떻게 돌고 돌지 모를 일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5.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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