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빛 산란으로 감춰진 물체를 보다

빛 산란으로 감춰진 물체를 보다

[인터뷰]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

 
‘벽 뒤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질문은 판타지 영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음이다. 투명한 물체가 아닌, 불투명한 물체 뒤에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기술’이라기보다 ‘신비한 능력’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투명한 물체 뒤의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논리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빛 산란으로 감춰진 물체를 볼 수 있는 ‘빛 산란 제어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가 우리의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빛 산란을 홀로그래피를 이용해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해당 기술은 미국 MIT 분광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한 것으로,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가 발행하는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빛, 흡수와 산란 사이
▲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황정은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게시물이 있었다. 바로 ‘투명테이프의 재발견’ 이라는 게시물로, 이는 불투명한 유리창에 투명테이프를 부착하자 흐릿하게 보이던 유리가 투명해지는 현상이었다. 많은 대중들은 이를 신기해했으나 간단한 과학적 원리만 알게 되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투명테이프로 불투명한 유리의 요철이 메워져 빛 산란이 줄어들었고, 때문에 장애물 건너편의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박 교수팀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 구름과 연기 같은 장애물로 인해 보이지 않던 건너편의 물체를 또렷이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관찰하고자 하는 물체 중간에 위치한 장애물에 대해 빛 산란을 제어, 빛의 방향과 세기를 모두 기록하는 홀로그래피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이 기술은 연기나 구름 같은 기체뿐 아니라 사람의 피부와 같이 산란이 심한 물체 뒤에 숨은 대상까지 관찰할 수 있어 매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산란된 빛의 정보를 기록한 후 각각의 빛을 정확하게 반대편으로 다시 반사해 본래 이미지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우리가 피부 속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빛이 피부에 흡수되기 때문이 아니라, 빛 산란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피부 속을 볼 수 있다면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매우 쉬워지겠죠. 하지만 아직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없죠. 다만 실제로 아프리카에는 피부가 투명한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해요. 또한 아마존에는 배가 투명한 개구리가 있고, 우리 인체의 조직인 눈의 수정체는 유일하게 투명한 조직이죠. 피부가 투명한 생물들은 내장기관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병을 치료할 때 훨씬 유리합니다.”

빛의 산란으로 피부 속이 보이지 않는 만큼, 역으로 생각하면 빛 산란을 제어할 경우 피부 속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때 제시된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위상 공액(phase conjugation)’으로 알려진 현상으로, 박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위상공액과 디지털 홀로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산란이 심한 벽 뒤에 있는 물체의 2차원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실험을 한다고 생각해볼까요. 콜라병을 가운데 놓고 한 쪽에서 반대편 이미지를 보면 왜곡이 일어나죠. 하지만 거울을 반대편에 놓고 사물을 보면, 거울이 빛을 반사시켜 다시 콜라병을 지나가게 하기 때문에 이미지가 더 왜곡돼서 거울이 없을 때보다 잘 안 보입니다. 이 콜라는 바로 우리의 세포라고 할 수 있어요. 피부에는 위 실험의 콜라병 같은 장애물이 수천, 수만 개 있죠. 때문에 빛 산란이 일어나는 것이고요.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바로 ‘위상 공액(phase conjugation)’입니다.”

일반적인 거울을 콜라병 뒤에 놓았을 때는 거울을 놓기 전보다 더욱 심한 이미지 왜곡이 일어나지만, 만약 특수한 거울을 놓게 되면 이미지 왜곡을 제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매직미러’이고, 자연계에는 이러한 매직미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바로 이 시점에서 연구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빛 산란 제어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몸 속 질환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근 교수는 해당 기술을 통해 피부 속 암 진단을 보다 빠르게 할 수 있는 단계가 연구의 최종목표라고 이야기했다.

“위암의 경우 내시경만으로는 표피세포 안에 있는 작은 암세포를 확인할 수 없어요. 내시경도 결국은 위의 겉 표면만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암세포가 있는지 모르죠. 만약 암으로 의심되는 무엇이 발견되면, 수술실에서 샘플을 채취해 병리학과로 넘기고, 그곳에서 분석한 후 암인지 아닌지를 결정내립니다. 결국 암인지 아닌지를 판독하는 동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죠. 하지만 칼로 절개하지 않고도 피부 속에 있는 암세포를 볼 수 있다면 진단과정이 매우 획기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피부 속을 보자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암뿐 아니라 사람의 뇌 연구에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뇌 연구가 매우 활발하죠. 뇌와 같은 복잡한 구조는 연구하기에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절개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 안을 볼 수 없죠. 때문에 뇌 안을 살아 있는 그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빛 산란을 제어해야 합니다. 이번 기술은, 빛 산란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셈입니다.”

연구는 아이디어에서 시작… “재미있는 연구 하고 싶다”
▲ 빛 산란 제어의 원리 ⓒ카이스트

박 교수의 이번 연구는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박용근 교수는 해당 연구결과가 ‘투명망토’와는 다르다고 이야기 했다.

“이번 연구결과를 내놓으면서 흔히 오해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가 ‘투시’고 다른 하나는 ‘투명망토’입니다. 투시의 경우 옷 속을 본다고 할 때, 한쪽에서 빛이 옷을 뚫고 지나간 다음, 옷 안에서 뚫고 나와야 하죠. 들어가는 빛과 나오는 빛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속이 보인다는 것인데, 아직 여기까지 기술이 발전하지는 못했어요. 들어가는 빛과 나오는 빛이 제어돼야 합니다. 또 한 가지, 투명망토는 망토 속 물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인데 물리적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요.”

박 교수에 따르면 한 물체를 원통형 물체(망토)로 덮는다고 할 때, 안의 물체가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빛이 물체를 교묘하게 피해 결국은 직진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투명망토를 씌운 구조체는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그 형체를 피해 휘어져서 지나간다는 것은 실험적으로 구현될 수 있어도 아직 그 수준이 매우 미미하다.

이처럼 해당 연구가 ‘투시’ 혹은 ‘투명망토’와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 있는 연구주제라고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연구 주제에서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로 유명하다.

“저는 재미있어 보이는 과제를 연구하라고 학생들에게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한 연구가 재미있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하면 안되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저런 게 있을 수 있나’ 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결국 이미 ‘그것은 안 돼’라고 평가되어진 연구를 하라는 이야기죠. 재미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찾고, 동시에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연구는 박용근 교수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당시부터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박 교수의 지도교수가 빛 산란을 제어해 사람 몸속을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품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홀로그래픽을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면서 이러한 연구가 조금씩 실질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연구는 어려운 이론이 들어가지 않았죠. 학부 1학년생 수준에서 배우는 이론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어려운 연구보다 신선한 발상과 이전에 없던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간 사람들이 힘들다고 생각한, 2차원 이미지를 홀로그래피로 제어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박 교수는 이 기술이 앞으로 정보의 암호화와 군사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6.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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