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봄’이 불러온 ‘시끄러운 여름’
과학명저 읽기 10
과학명저 읽기 “과학철학을 하시는 분이 어떻게 이 책을 읽으셨어요?”, 칭찬으로 들어야 할 말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다소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몇 년 전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환원주의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나온 필자에게 환경운동을 하신다는 사회학자 한 분께 들은 말이다. 내가 대견하게도 읽었다고 칭찬받은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출간하여 당시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다. 그 분은 이런 ‘칭찬’에 카슨의 책이 ‘환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고전 중에 고전’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셨다. 당시에는 좋은 책이면 좋은 책이지 환경 분야 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과 과학철학 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 따로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때 그 분 말씀이 여러 가지로 함축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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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침묵에 봄’에 대해 발표한 것 중에 언급한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레이첼 카슨이 반과학적이지도 않았고 환원주의적 과학 방법론 자체를 거부한 것도 아니며 자연의 숭고한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급진적 생태주의자도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침묵의 봄’을 비롯한 카슨의 책을 선입견을 갖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출판물에서 드러나는 카슨의 생각은 강연 원고나 편지글처럼 다소 비공식적인 자료들에서도 정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통해 카슨의 업적을 폄하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카슨의 위대함이 정확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당시 전문 과학자에게만 알려졌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일반 대중이 알기 쉽게 (게다가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전달하여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환경관련 규제를 비롯한 행동에 나서도록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카슨은 ‘침묵에 봄’의 집필 및 편집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다. 이 책이 가져올 것이 예상된 화학회사와의 소송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지만, 카슨이 평소에 자신의 글이 철저하게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카슨은 책 출간 시기에 수행했던 대중 강연에서 전문가주의에 빠진 과학자들이 올바른 과학적 사실을 시민에게 알릴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학술적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과학 연구 결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고 해양생물학자로 훈련받았던 카슨은 미국 어업국에서 정부 과학자로 오랜 기간 일하면서 미 전역에서 수집된 환경 관련 자료를 과학자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카슨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이들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살충제를 비롯한 과학 연구 산물의 무분별한 사용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를 밝혀낸 후, 이를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여 당시 우리가 과학을 활용하는 방식을 바꾸려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슨의 ‘침묵의 봄’은 반과학적이라기보다는 당시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되던 과학적 연구 결과의 문제점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적절하게 지적한 책이었다. 그리고 카슨은 이 책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침묵의 봄’ 이후 우리는 과학 연구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익숙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카슨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카슨 책의 우리말 제목은 ‘침묵의 봄’이지만 원제는 ‘조용한 봄’이다. 개인적으로 이 제목이 카슨의 원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카슨이 화학물질의 남용의 상징으로 묘사한 ‘조용한 봄’은 해충을 잡기 위해 살포한 살충제 성분이 먹이사슬을 타고 새의 몸 안에 축적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 즉 새의 알 껍질이 얇아지는 결과로부터 시작된다. 얇아진 알 껍질은 깨지기 쉽고 그런 이유로 봄이 되어도 어린 새가 부화하지 못해 즐거운 새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조용한’ 봄이 온 것이다.
이처럼 카슨의 원제는 살충제처럼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험실 연구를 통해 개발된 과학기술의 산물이 그 목적 이외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과 그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말 제목에 포함된 ‘침묵’이라는 개념은 강제하는 과학을 권력으로 그리고 그에 유린되는 자연을 죄없는 희생자로 보는 대립구도를 연상시키기에, 마치 카슨이 자연의 본질적 가치를 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카슨은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물질의 사용을 전면으로 금지하자든지, 자연의 가치는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침묵의 봄’에서 카슨이 비판했던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살포였다. 카슨은 국소적 지역에 선택적으로, 즉 현명하게 화학물질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고, 특히 천적을 활용하는 생물학적 방제와 같은 대안을 고려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생 관계에서 어떤 특정 방법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하나의 해결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자연 생태계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카슨의 이런 생각은 ‘침묵의 봄’ 출간 이후 벌어진 일련의 환경 규제 법안에 반영되었다. 최근 세간에는 카슨이 DDT처럼 효과적인 살충제를 전세계적으로 금지하도록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말라리아로 죽게 만든 살인자라는 ‘괴담’이 떠돈다. 하지만 이보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는 없다. 우선 카슨의 주장을 경청하고 관련 과학적 증거를 검토한 미국 규제기관이 미국 내에서의 DDT 사용을 금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적 위기상황 수준으로 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해충이 창궐하면 예외적으로 DDT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또한 말라리아가 널리 퍼진 다른 나라에 DDT를 수출하는 일이 금지된 적은 결코 없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지적한 것처럼 카슨은 화학물질의 ‘현명한’ 사용을 지지했을 뿐 모든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하거나 과학 연구의 무용성을 주장한 적이 없다. 실제로 책에 담긴 관련된 과학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다면 ‘침묵의 봄’이 그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개연성은 낮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급진적 생태주의의 선구자로 카슨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침묵의 봄’ 출간 당시 카슨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수사학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슨이 ‘조용한 봄’에 대해 쓴 책은 그 책에 대한 열띤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시끄러운 여름’을 가져왔다. 당시 카슨의 비판자들은 카슨이 관련 과학적 사실에 무지하며 과학 연구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자연을 위해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포기하자는 철모르는 낭만적 현실도피자라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생태주의 운동에서 카슨을 묘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그 묘사에 대한 평가적 태도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문학적인 동시에 과학적으로 엄밀한 서술이 보여주는 내용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카슨은 암과 싸우면서 자신의 비판자에게 답하며, 자신이 공격하는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과학의 ‘관행’이며 자연적 가치와 과학적 가치는 동시에 존중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카슨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카슨의 전망이 어렵기는 하지만 충분히 현실적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이 책이 단순히 환경주의자들의 고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과학’ 고전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카슨은 ‘침묵에 봄’의 집필 및 편집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다. 이 책이 가져올 것이 예상된 화학회사와의 소송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지만, 카슨이 평소에 자신의 글이 철저하게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카슨은 책 출간 시기에 수행했던 대중 강연에서 전문가주의에 빠진 과학자들이 올바른 과학적 사실을 시민에게 알릴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문가들이 자신들만의 학술적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과학 연구 결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고 해양생물학자로 훈련받았던 카슨은 미국 어업국에서 정부 과학자로 오랜 기간 일하면서 미 전역에서 수집된 환경 관련 자료를 과학자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카슨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이들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살충제를 비롯한 과학 연구 산물의 무분별한 사용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를 밝혀낸 후, 이를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여 당시 우리가 과학을 활용하는 방식을 바꾸려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슨의 ‘침묵의 봄’은 반과학적이라기보다는 당시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되던 과학적 연구 결과의 문제점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적절하게 지적한 책이었다. 그리고 카슨은 이 책을 통해 세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침묵의 봄’ 이후 우리는 과학 연구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익숙해졌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카슨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카슨 책의 우리말 제목은 ‘침묵의 봄’이지만 원제는 ‘조용한 봄’이다. 개인적으로 이 제목이 카슨의 원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카슨이 화학물질의 남용의 상징으로 묘사한 ‘조용한 봄’은 해충을 잡기 위해 살포한 살충제 성분이 먹이사슬을 타고 새의 몸 안에 축적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 즉 새의 알 껍질이 얇아지는 결과로부터 시작된다. 얇아진 알 껍질은 깨지기 쉽고 그런 이유로 봄이 되어도 어린 새가 부화하지 못해 즐거운 새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조용한’ 봄이 온 것이다.
이처럼 카슨의 원제는 살충제처럼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험실 연구를 통해 개발된 과학기술의 산물이 그 목적 이외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과 그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말 제목에 포함된 ‘침묵’이라는 개념은 강제하는 과학을 권력으로 그리고 그에 유린되는 자연을 죄없는 희생자로 보는 대립구도를 연상시키기에, 마치 카슨이 자연의 본질적 가치를 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카슨은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물질의 사용을 전면으로 금지하자든지, 자연의 가치는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침묵의 봄’에서 카슨이 비판했던 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살포였다. 카슨은 국소적 지역에 선택적으로, 즉 현명하게 화학물질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고, 특히 천적을 활용하는 생물학적 방제와 같은 대안을 고려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생 관계에서 어떤 특정 방법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과학적이든 사회적이든 하나의 해결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자연 생태계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카슨의 이런 생각은 ‘침묵의 봄’ 출간 이후 벌어진 일련의 환경 규제 법안에 반영되었다. 최근 세간에는 카슨이 DDT처럼 효과적인 살충제를 전세계적으로 금지하도록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말라리아로 죽게 만든 살인자라는 ‘괴담’이 떠돈다. 하지만 이보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는 없다. 우선 카슨의 주장을 경청하고 관련 과학적 증거를 검토한 미국 규제기관이 미국 내에서의 DDT 사용을 금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적 위기상황 수준으로 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해충이 창궐하면 예외적으로 DDT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또한 말라리아가 널리 퍼진 다른 나라에 DDT를 수출하는 일이 금지된 적은 결코 없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지적한 것처럼 카슨은 화학물질의 ‘현명한’ 사용을 지지했을 뿐 모든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하거나 과학 연구의 무용성을 주장한 적이 없다. 실제로 책에 담긴 관련된 과학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다면 ‘침묵의 봄’이 그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개연성은 낮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급진적 생태주의의 선구자로 카슨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침묵의 봄’ 출간 당시 카슨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수사학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슨이 ‘조용한 봄’에 대해 쓴 책은 그 책에 대한 열띤 사회적 논쟁이 벌어진 ‘시끄러운 여름’을 가져왔다. 당시 카슨의 비판자들은 카슨이 관련 과학적 사실에 무지하며 과학 연구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자연을 위해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포기하자는 철모르는 낭만적 현실도피자라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생태주의 운동에서 카슨을 묘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그 묘사에 대한 평가적 태도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문학적인 동시에 과학적으로 엄밀한 서술이 보여주는 내용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카슨은 암과 싸우면서 자신의 비판자에게 답하며, 자신이 공격하는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과학의 ‘관행’이며 자연적 가치와 과학적 가치는 동시에 존중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카슨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카슨의 전망이 어렵기는 하지만 충분히 현실적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이 책이 단순히 환경주의자들의 고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과학’ 고전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 소개도서: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침묵의 봄’(개정판), 에코리브르, 2011 |
저작권자 2013.06.07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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