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다
박석재의 하늘 이야기 7
과학에세이 학창시절 배운 국사 교과서에서 BC 2333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후 고구려가 건국될 때까지는 ‘블랙홀’이다. 따라서 만일 고조선 건국이 신화에 불과하다면 우리 역사는 2천 년밖에 안 되는 셈이다. 일본보다도 역사가 짧아지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 누구도 역사를 조작해서는 안 되니까.
그런데 그 블랙홀 한복판에 위치한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서 발견됐다. 즉,
戊辰五十年五星聚婁(무진오십년오성취루)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무진오십년’은 BC 1733년을 말하고 ‘오성’은 물론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을 말한다. ‘취’는 우리가 흔히 ‘취합한다’ 할 때 ‘취’로 모인다, 집결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루’는 동양 별자리 28수의 하나다. 즉 이 문장은 ‘BC 1733년 오성이 루라는 별 옆에 모였다’ 같이 해석된다.
이 기록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검증해 본 천문학자는 라대일 박사와 박창범 박사다. 당시 라 박사는 천문대(한국천문연구원의 전신), 박 박사는 서울대 소속이었지만 라 박사는 요절했고 박 박사는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검증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돼 1993년에 발행된 한국천문학회지 26권 135~139페이지에 실려 있다. 나는 큰일을 해낸 두 후배 천문학자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 ‘오성취루’ 기록을 천문학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슈퍼컴퓨터 같은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문방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국산 천문 소프트웨어를 돌려봤다. 그 결과 BC 1734년 7월 12일 저녁 서쪽하늘에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수성·토성·목성·금성 순서로 5행성이 늘어서고 여기에 달까지 끼어들어서 ‘우주쇼’를 연출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그런데 그 블랙홀 한복판에 위치한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서 발견됐다. 즉,
戊辰五十年五星聚婁(무진오십년오성취루)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무진오십년’은 BC 1733년을 말하고 ‘오성’은 물론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을 말한다. ‘취’는 우리가 흔히 ‘취합한다’ 할 때 ‘취’로 모인다, 집결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루’는 동양 별자리 28수의 하나다. 즉 이 문장은 ‘BC 1733년 오성이 루라는 별 옆에 모였다’ 같이 해석된다.
이 기록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검증해 본 천문학자는 라대일 박사와 박창범 박사다. 당시 라 박사는 천문대(한국천문연구원의 전신), 박 박사는 서울대 소속이었지만 라 박사는 요절했고 박 박사는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검증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돼 1993년에 발행된 한국천문학회지 26권 135~139페이지에 실려 있다. 나는 큰일을 해낸 두 후배 천문학자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 ‘오성취루’ 기록을 천문학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슈퍼컴퓨터 같은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문방구에서 구입할 수 있는 국산 천문 소프트웨어를 돌려봤다. 그 결과 BC 1734년 7월 12일 저녁 서쪽하늘에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수성·토성·목성·금성 순서로 5행성이 늘어서고 여기에 달까지 끼어들어서 ‘우주쇼’를 연출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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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 1734. 7. 12. ‘오성취루’ 상상도 ⓒ박석재 |
위쪽부터 화성, 수성, 달, 토성, 목성, 금성의 순서로 황도를 따라 배열돼 있다. 아름답지 않은가? 달은 하루에 약 13도씩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 전인 7월 11일에는 금성 아래, 하루 후인 7월 13일에는 화성 위에 자리를 잡았다. 7월 11, 12, 13일을 벗어나면 달은 더 이상 오성취루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현상은 보름 이상 계속됐기 때문에 장마철이어서 비가 많이 왔어도 고조선 천문학자들이 놓쳤을 리 없다. 특히 제일 아래쪽에 있었던 행성이 가장 밝은 금성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라대일-박창범 박사가 컴퓨터를 돌려본 BC 2000년부터 BC 1450년까지 오성취루 비슷한 현상이 한 번 더, BC 1953년 2월 새벽에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BC 1734년에 있었던 오성취루와 비슷한 현상이 219년 전에도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소프트웨어를 돌려본 결과 BC 1953년 3월 3일 아침 7시 동녘 하늘에 아래 그림과 같이 달과 오행성이 벌이는 우주쇼가 펼쳐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오성취루’ 역시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있을 수 있다. 오성취루 현상은 BC 1734년 이후로도 현재까지 10회 이상 되풀이됐다고 봐야 한다. 더 이상의 기록은 없는지 우리 모두 찾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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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 1953. 3. 3. ‘오성취루’ 상상도 ⓒ박석재 |
오성취루 같은 천문현상을 임의로 맞추거나 컴퓨터 없이 손으로 계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BC 1734년 우리 조상들은 천문현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조직과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천문대를 가진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고조선을 신화의 나라로 치부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오성취루 기록이 남아있는 ‘환단고기’는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1911년 계연수가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4권의 책을 합해 편찬한 것으로 우리나라 상고사 및 고대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성취루가 천문학적으로 검증이 됐다는 사실은 ‘환단고기’의 신뢰도를 더욱 높여준 것이다.
최근 ‘환단고기’를 놓고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혐오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극한대립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무엇이든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유행병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경우든 ‘환단고기’를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채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옛날에는 복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일일이 옮겨 적었다. ‘환단고기’의 내용 중에는 후세 사람들이 옮겨 적으며 추가한 부분, 즉 가필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 가필됐다 해서 ‘환단고기’를 쓰레기 취급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이 세상에 전혀 가필되지 않은 경전이나 역사서가 있을까? 왜 ‘환단고기’에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과연 그 많은 내용을 한 사람이 창작해낼 수 있었을까? 언뜻 생각해봐도 ‘환단고기’ 내용이 엉터리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내용 중 일부는 진실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2013.06.21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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