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 금요일

세균 간 대화에 열쇠가 숨어있다?

세균 간 대화에 열쇠가 숨어있다?

[인터뷰] 류충민 생명(연)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 박사

 
 
예로부터 청국장, 된장국과 같은 발효음식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밀폐된 공간에 일정기간을 숙성시켜 좋은 효소가 자라게 하는 원리를 이용한 발효 음식은 그 냄새부터 특수해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불쾌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향을 지니고 있다.

청국장과 된장의 냄새는 발효에 쓰이는 미생물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들 음식에는 고초균이 서식하는데, 국내 연구진이 된장 안에 있는 고초균의 항생제 메커니즘 원리를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류충민 생명(연)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 박사 연구팀이 냄새가 세균과 세균의 중요한 대화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정 세균의 냄새(휘발성 물질)가 다른 세균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한데 이어, 냄새가 세균의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변화시키고 운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다. 이 연구결과는 '네이처(Nature)'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분리된 공간에서 세균은 대화중
▲ 류충민 생명연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 박사 ⓒScienceTimes

“이번 연구는 특정 세균의 냄새가 우리 몸에 악영향을 끼치는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내용입니다. 된장발효에 쓰이는 발효균이 있는데, 이 균이 바로 그것이죠. 일명 ‘고초균(Bacillus subtilis)’ 이라고 합니다.

고초균이 갖고 있는 특정 냄새는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다른 미생물에 영향을 끼치는데, 특이한 냄새성분이 다른 나쁜 균의 운동성을 저해하는 거죠. 여기서 ‘나쁜 균’이란 대장질환을 유발하는 대장균(E. coli)을 가리킵니다.”

류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냄새만으로 미생물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좋은 미생물의 냄새가 나쁜 미생물을 억제하는 데 해당 냄새성분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앞으로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세균이 아닌 세포의 경우 우리 인체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뇌에 그 신호가 전달돼 세포 사이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면서 반응을 보이고, 이는 신체를 위험으로부터 방어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여기서 세포는 서로 연결돼 있기에 대화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세균 간에도 접촉된 상태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이 기존의 정설이었다. 이런 가운데 발표된 류 박사의 연구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균이 대화를 나눈다는 내용인 만큼 학계에서는 이를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쉽게 설명을 해볼까요. 집 안 화장실 하수구를 살펴보면 벽면으로 미끈한 막이 형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게 바로 세균입니다. 그런데 청소를 한 다음, 한 달 후에 다시 꺼내봐도 여전히 미끈거려요. 이것은 바로 세균 간 커뮤니케이션이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이들 세균이 없어져도, 다시 세균끼리 긴밀하게 대화를 해서 똑같은 형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이번 연구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게 핵심인데요, 더욱 쉽게 이야기 하자면 유선 상태 뿐 아니라 무선 상태에서도 대화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연구팀은 세균을 키우는 배지 중간을 막은 후 한 쪽에는 된장냄새를 풍기는 고초균을 자라게 하고, 다른 한 쪽에는 대장균을 각각 자라게 했다. 이후 공간적으로 분리된 조건에서 고초균의 냄새가 대장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유전체 기술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더 뚜렷한 결과가 나타났다.

“세균이 냄새를 풍긴 지 6시간 만에 대장균의 160개 유전자 발현이 급격하게 변한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운동성과 관련한 유전자와 스트레스 저항성 관련 유전자는 냄새에 특이하게 반응했죠. 이 실험을 통해 배지 상에서 고초균 냄새의 영향을 받아 대장균의 움직임이 빠른 시간 안에 없어진 것도 발견했고요.”

또한 고초균에 휘발성물질을 처리해 운동성이 사라진 대장균을 대상으로 항생제에 대한 반응성을 조사했더니, 총 13종의 항생제에 대한 대장균의 민감도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했다.

“이 중 3종의 장염 치료에 많이 쓰이는 ‘세팔로스포린(Cephalosporin)’ 계열 항생제 대한 유효성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것은 세팔로스포린 계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항생제 보완 첨가물질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장염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세팔로스포린 계열 항생제로 인해 또 다른 장염이 유발되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류충민 박사의 이번 연구는 향후 대장관련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류충민 박사팀의 이번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강력한 항생제에도 소멸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잦은 사용에 저항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초강력 박테리아로서 기능하는 이것은,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제가 속한 곳이 슈퍼박테리아연구센터입니다. 앞으로 슈퍼박테리아가 의료계에서 상당한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죠. 현재도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슈퍼박테리아 감염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슈퍼박테리아에는 항생제 처리가 물처리와 비슷할 정도로 어떠한 효과도 얻을 수 없어요. 하지만 휘발성물질과 기존의 항생제를 함께 사용한다면 더욱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요. 이를 통해 슈퍼박테리아가 소멸하는 현상을 발견한다면, 의학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로 의학 저변 넓혀
▲ 고초균 냄새에 의한 대장균의 운동성 감소 모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류충민 박사팀의 이번 연구는 기존의 연구와 다른 차원의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기존 연구의 경우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면, 류 박사팀은 기존 항생제에 다른 물질을 섞어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저는 식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전공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계속 살펴본 것이죠. 그러다가 식물과 세균이 아닌, 세균과 세균 사이에는 어떤 작용이 일어날까 궁금했어요. 기존 ‘식물-세균’ 간 연구 시스템에 ‘세균-세균’ 간 연구를 진행하니 예상 외로 반응이 잘 나오더라고요. 이후로 세균의 냄새성분을 연구했고, 지금은 해당 냄새 성분을 각각 갖고 있습니다.”

의외의 성공적인 결과는 류 박사를 더욱 깊은 내용이 들어 있는 연구로 이끌었다. 세균의 냄새에 따른 반응이 거리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세균은 빨리 소멸했지만, 먼 거리의 세균은 다소 약하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고초균의 냄새를 맡고 대장균의 운동성이 멈춘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과학적으로 이 결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왜 안 움직이는가’에 대한 증명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세균의 운동성이 무엇에 의해 정의되는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류 박사는 대장균에 내재한 유전자 3~4천개를 모두 DNA 마이크로어레이 기술을 통해 확인했다. 3천개 유전자의 영향을 개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당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연구는 앞으로의 더욱 심화된 연구를 가능케 하는 자산이 됐다.

“이번 연구는 미생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냄새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슈퍼박테리아나 다제내성균 등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고도 할 수 있죠. 물론 하루 이틀 사이에 출시될 해결책은 아니지만 응용 분야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죠.”

최근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다녀왔다는 류충민 박사는 그곳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자신과 같은 연구를 하는 연구팀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파리에서도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심각성에 공감하더군요. 현재 파스퇴르연구소에서는 쥐와 물고기 등을 통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 더욱 다양한 성과를 기대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임상실험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6.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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