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사유재산제도는 함께 진화했다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32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과유불급이라고 자본주의도 극단으로 치닫다보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수년 전 읽기 쉽지 않은 책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밀리언셀러가 됐고 지금은 공정사회가 화두가 돼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라는 말을 빼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 지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는 지인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노후자금이 보장된 사람이 귀농해 자급자족형 농사를 짓는 게 아닌 이상 생계수단으로서의 농업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돌아가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이뤄 농사지은 걸 나눠먹으며 소박하게 살아간다는 건 공상일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되는 사유재산의 개념이 바로 농업의 등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취인으로 살아가던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는 1만2천여 년 전 농사를 시작했고 동시에 사유재산의 개념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농사라는 기술 혁신이 제도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이런 시나리오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처음 농사가 시작됐을 무렵에는 생산성이 수렵채취보다 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농업을 고집하려면 다른 동기가 있어야하는데 그게 사유재산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 한마디로 농업과 사유재산제도는 닭과 달걀의 관계라는 것이다.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역사 재현
그러나 어느 정도 노후자금이 보장된 사람이 귀농해 자급자족형 농사를 짓는 게 아닌 이상 생계수단으로서의 농업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돌아가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이뤄 농사지은 걸 나눠먹으며 소박하게 살아간다는 건 공상일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되는 사유재산의 개념이 바로 농업의 등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수십만 년 동안 수렵채취인으로 살아가던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는 1만2천여 년 전 농사를 시작했고 동시에 사유재산의 개념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농사라는 기술 혁신이 제도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이런 시나리오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처음 농사가 시작됐을 무렵에는 생산성이 수렵채취보다 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농업을 고집하려면 다른 동기가 있어야하는데 그게 사유재산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 한마디로 농업과 사유재산제도는 닭과 달걀의 관계라는 것이다.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역사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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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논문의 공저자인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는 지난 2007년 국내 경제학자로는 처음으로 학술지 ‘사이언스’에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동진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석기 |
미국 산타페연구소의 사무엘 보울즈 박사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는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28일자에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두 사람은 홀로세 초기 농업과 사유재산제도가 함께 진화한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보였다. 홀로세(Holocene)는 지질학적 시기 구분 단위로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기온이 온화해지기 시작한 1만여 년전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
저자들은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사유재산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미 자연에 주어져 있는 걸 포획하거나 채취하는 것과는 달리 농사는 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돌보는 장기간 ‘투자’를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와서 걷어가 버리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사유재산도 농업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제도다.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누가 잡은 사냥감의 소유자인가가 확실하지 않은데 반해 농업은 누가 땅에 씨를 심었는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농업은 생산물 자체가 갖는 속성상 소유권 확정이 덜 모호하다는 점에서 사유권 확립에 도움을 주고, 한편으로는 농업 자체가 사유권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진화' 관계에 있다고 저자들은 봤다.
얼핏 모순돼 보이는 상황이지만 저자들은 몇 가지 조건을 세운 컴퓨터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농업과 사유재산제도가 함께 진화한 과정을 멋지게 재구성했다. 즉 한 세대에 600명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생산과 분배, 문화적 업데이트라는 세 단계를 상정했다. 먼저 생산 단계에서 사람들은 수렵채취나 농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수렵채취가 농사보다는 생산성이 높고 농사는 초기 투자를 요구하지만 대신 농사로 얻은 물건은 소유권을 더 주장할 수 있다. 한편 기후가 온화할수록 농사의 생산성은 높아진다.
다음은 분배 단계로 사람들은 세 가지 성향을 갖고 있다. 먼저 공유자(sharer)로 자기가 생산한 물건의 반을 내놓고 상대가 원하면 전부를 내놓는다. 다음으로 부르주아(bourgeois)로 자기가 생산한 건 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농사로 얻은 게 아니면 다른 물건에도 욕심을 낸다. 끝으로 공민(civics)으로 불리는 행동유형으로 공유자나 시민을 만나면 그들과 같이 행동하고 부르주아를 만나면 다른 시민들과 힘을 합쳐 투쟁한다. 힘을 모은 시민 숫자가 많을수록 이길 확률이 커진다.
끝으로 문화적 업데이트 단계로 위의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우위에 선 그룹의 성향이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즉 힘을 합친 공민이 부르주아가 생산한 농산물을 거둬들여 분배하는데 성공하면 부르주아도 공민으로 전향한다. 역으로 자본주의자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면 이를 지켜본 공유자가 부르주아로 바뀐다.
저자들은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사유재산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미 자연에 주어져 있는 걸 포획하거나 채취하는 것과는 달리 농사는 작물을 키우고 가축을 돌보는 장기간 ‘투자’를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와서 걷어가 버리면 말짱 꽝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사유재산도 농업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제도다. 수렵채취 사회에서는 누가 잡은 사냥감의 소유자인가가 확실하지 않은데 반해 농업은 누가 땅에 씨를 심었는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농업은 생산물 자체가 갖는 속성상 소유권 확정이 덜 모호하다는 점에서 사유권 확립에 도움을 주고, 한편으로는 농업 자체가 사유권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진화' 관계에 있다고 저자들은 봤다.
얼핏 모순돼 보이는 상황이지만 저자들은 몇 가지 조건을 세운 컴퓨터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농업과 사유재산제도가 함께 진화한 과정을 멋지게 재구성했다. 즉 한 세대에 600명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생산과 분배, 문화적 업데이트라는 세 단계를 상정했다. 먼저 생산 단계에서 사람들은 수렵채취나 농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수렵채취가 농사보다는 생산성이 높고 농사는 초기 투자를 요구하지만 대신 농사로 얻은 물건은 소유권을 더 주장할 수 있다. 한편 기후가 온화할수록 농사의 생산성은 높아진다.
다음은 분배 단계로 사람들은 세 가지 성향을 갖고 있다. 먼저 공유자(sharer)로 자기가 생산한 물건의 반을 내놓고 상대가 원하면 전부를 내놓는다. 다음으로 부르주아(bourgeois)로 자기가 생산한 건 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농사로 얻은 게 아니면 다른 물건에도 욕심을 낸다. 끝으로 공민(civics)으로 불리는 행동유형으로 공유자나 시민을 만나면 그들과 같이 행동하고 부르주아를 만나면 다른 시민들과 힘을 합쳐 투쟁한다. 힘을 모은 시민 숫자가 많을수록 이길 확률이 커진다.
끝으로 문화적 업데이트 단계로 위의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우위에 선 그룹의 성향이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즉 힘을 합친 공민이 부르주아가 생산한 농산물을 거둬들여 분배하는데 성공하면 부르주아도 공민으로 전향한다. 역으로 자본주의자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면 이를 지켜본 공유자가 부르주아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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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과 사유재산제도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다. 6000년 전 10% 미만이었던 부르주아와 농부가 3000년 뒤에는 각각 90%, 80%가 돼 농업과 사유재산제도가 함께 진화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PNAS |
이런 조건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할 때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는 지구기후의 변화다. 즉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농업에 호의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 아래 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6천년 전에서 2천400년 전까지 약 3천600년에 걸쳐 부르주아와 농부의 비율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즉 6천년 전에는 부르주아와 농부의 비율이 10%도 안 되지만 해가 지날수록 서서히 높아지다가 2천800년이 지나가 90%가 부르주아, 80%가 농부로 바뀌어 있다. 농사를 짓는 부르주아도 80%에 육박한다. 즉 수천 년에 걸쳐 농업과 사유재산제도가 정착해왔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저자들은 “농업과 사유재산제도로의 전이는 천천히 진행됐고 때로는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며 “그 결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취와 농업 둘 다에서 먹을거리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사회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즉 위의 시뮬레이션이 실제 인류의 발자취를 잘 재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2013.06.07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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