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과학과 함께 보낸 ‘낭만적인 저녁’

과학과 함께 보낸 ‘낭만적인 저녁’

제2회 ‘사이언스 이브닝’ 열려

 
 
어른들이 즐길 만한 과학 프로그램은 없을까? 파티를 즐기듯 과학의 세계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의문이지만 해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일반인을 위한 즐거운 과학 파티’가 열렸다. 지난 15일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열린 ‘2013년 제2회 사이언스 이브닝’ 행사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일반인도 즐길 만한 과학 행사가 사시사철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린이와 학생·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난 4월 ‘선박의 과학’에 이어 두 번째로 ‘사이언스 이브닝 - 과학이 있는 저녁’을 기획해 성인들도 공연, 전시, 뮤지컬을 즐기듯 과학을 만끽할 자리를 마련했다.

오후 7시에 시작된 행사에는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50여 명의 직장인들이 참석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표정에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엿보였다.

이날의 주제는 ‘소리의 과학, 악기의 과학’으로 이돈응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가 강연을 맡았다.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인 이 교수는 서울대 예술과학센터에서 음악과 소리의 과학적 속성을 연구하며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학자 겸 예술가다.
▲ 인사말을 하는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ScienceTimes
 

과학이 있어 행복하고 낭만적인 금요일 저녁

행사에 앞서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어른들에게 과학은 학교에서의 공부가 마지막으로 기억된다”며 과학이 그동안 문화가 아닌 학습대상으로만 여겨져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화장품, 밤하늘, 역사, 선박 등을 소재로 ‘사이언스 이브닝’을 개최한 결과, “마니아들이 생길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자리가 빈번하다”며 “오늘 우리도 과학을 소재로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돈응 교수의 강연이 시작되었고 ‘풍관’, ‘소리의 창’, ‘소문난 장독대’, ‘당나귀는 임금님 귀’, ‘한 잔의 시’ 등 소리를 이용한 전시물 제작 사례를 소개했다. 음악 분야만 소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의 융합 작업을 통해 다양한 과학적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파이프오르간을 분해해 전시함으로써 건반악기가 아닌 관악기임을 보여주고, 창호지가 붙여진 문짝을 스피커로 이용해 소리를 재생하는 등의 작품들을 보며 참가자들은 소리의 세계에 점차 빠져들었다.
▲ 이돈응 교수의 강연 모습  ⓒScienceTimes

사례 소개에 이어 소리, 음악, 악기를 주제로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우선 소리란 무엇인지, 바람은 소리를 품고 있는지, 왜 녹음된 자기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리는지, 사람은 어느 정도의 주파수까지 들을 수 있는지를 실험과 퀴즈를 통해 진행했다.

소리의 전달은 물체의 진동이 공기나 매질을 통해 귀에 전달되고 이것을 사람이 듣고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 자체는 소리를 품고 있지 않지만 이런저런 물체에 부딪히면서 진동이 생기고 우리 귀에는 윙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소리는 공기가 아닌 물질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 음성이 귀로 전달되는 소리와 성대의 진동이 뼈를 통해 고막으로 전달되는 두 가지 과정을 동시에 겪는다. 그러나 녹음된 목소리는 뼈로 전달되는 골전도음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날카롭고 높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은 얼마나 높은 음까지 들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인간의 가청범위를 20에서 2만 헤르츠(Hz) 사이로 본다. 1헤르츠는 1초에 한 번의 진동 주기를 갖는 소리를 가리킨다. 1초에 2만 번 이상 진동하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컴퓨터를 통해 주파수를 올리자 일부 참가자들의 귀에는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1만4천을 돌파해 1만7천까지 올라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를 들었다. 1만8천 헤르츠에 다다르자 비로소 몇 명을 빼놓은 대다수가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관의 한쪽 끝을 막으면 더 낮은 소리가 난다
소리에 대한 공부 이후에는 여러 종류의 악기에 대해 배웠다. 특히 관악기 중에서도 양쪽이 뚫려 있는 ‘개관’은 한쪽이 막혀 있는 ‘폐관’보다 높은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배우고, 실제로 플라스틱 관의 한 쪽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뗐다 하며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보았다.

관의 끝이 막힐 때 소리가 낮아진다면, 막힌 관의 길이가 달라질 때 소리도 따라서 달라질까? 플라스틱 관과 고무 마개를 나눠주고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준비된 틀에 여러 개의 플라스틱 관을 끼우고 고무 마개를 각각 다른 깊이까지 밀어넣자 눈에 익은 악기 모양이 되었다. 남미 사람들이 즐겨 연주하는 ‘팬플루트(pan flute)’다.

고무 마개를 안쪽으로 밀어넣을수록 관 안에서 소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짧아진다. 굵기가 같을 경우 관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진동수가 낮아져 그만큼 더 낮은 음을 낸다. 여러 개의 플라스틱관에 끼워진 고무 마개의 깊이를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순서대로 더 깊이 밀어넣자 제법 팬플루트의 모습이 갖춰졌다.
▲ 자신들이 만든 팬플루트를 불고 있는 참가자들 

이제 소리를 낼 시간. 어렸을 때 불어보고 오랜만에 다시 불어서 그런지 다들 훅훅 휙휙 소리만 날 뿐 제대로 된 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돈응 교수가 “입술과 관의 각도를 조정하면 제대로 소리가 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 비결을 가르쳐주었더니 금세 여기저기서 삑삑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관이 길수록 살살 불어야 소리가 잘 난다”고 가르쳐 주자 5분도 지나지 않아 실제 악기 소리를 내며 어설프게나마 연주를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제대로 소리가 나자 이곳저곳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들렸다. 어른이 된 이후로 자기 자신에게 감탄하며 밝은 표정을 지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한쪽에서는 뿌웅하는 소리가 크게 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웃고 즐기며 팬플루트 불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고무 마개를 밀고 당겨 위치를 세밀하게 조정하자 정확한 도레미파솔 음이 났다. 아는 노래를 연주해보라고 하자 대부분 ‘아리랑’, ‘학교 종이 땡땡땡’, ‘반짝반짝 작은 별’ 중에 한 곡을 불었다. 음이 단순하고 멜로디가 강렬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탓이리라.

이따금 자세가 부정확해 바람 새는 소리가 나거나 굵게 떨리는 소리가 났지만,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오리가 꽥꽥거리고 때로는 땅에 떨어진 곤충이 쉼없이 날개짓을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속에서 점차 깨끗한 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소리가 모여 음악이 되었다. 음악이 모여 행복이 되었다.

체험 실습을 마친 참가자들은 동심을 되찾은 듯 밝은 표정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웃고 즐기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반복적인 회사 생활에 지쳐 있었는데 활력소를 얻었다”,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만들어봐야겠다”는 등 다양한 소감도 이어졌다.

재단은 앞으로도 2040 세대 일반인을 위한 다채로운 과학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3.11.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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