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4일 화요일

성서에 빗대어진 공포정치

성서에 빗대어진 공포정치

브뤼겔 ‘영아 학살’


독재자들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정치를 공포정치라고 한다. 공포정치 하에서 대중들은 자신의 의지를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 공포스러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 <영아 살해>-1566년경, 패널에 유채, 116*160,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공포정치를 풍자한 작품이 브뤼겔의 '영아 학살'이다. 이 작품은 16세기 네덜란드의 정치 상황을 성서의 한 부분에 빗대어 표현했다.

1567년 스페인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를 자신의 국가로 복속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알바 공작을 보내 승리를 거둔다. 알바 공작은 네덜란드를 통치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들을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시켰으며 개종하지 않은 수많은 네덜란드인들은 사형에 처했다.

알바 공작의 공포 정치는 처음에는 반란을, 그 뒤에는 8년간의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전쟁은 남쪽 프로테스탄트와 북쪽 가톨릭교도로 분할되면서 종결됐다.

알바 공작이 종교적 탄압을 강행한 것은 펠리페 2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단에 대한 박해를 그만두느니 10만 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게 낫다’고 여겼을 만큼 이교도를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

브뤼겔은 당시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스페인의 공포 정치를 언급하고자 성서의 영아 학살이라는 주제를 택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하늘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헤로데 왕에게 구세주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로데 왕은 구세주가 왕권을 위협할 거라고 생각해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그를 만난 후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다.

하지만 헤로데 왕을 찾지 말라는 꿈을 꾼 동방박사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동방박사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헤로데 왕은 베들레헴으로 군사를 보내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헤로데 왕의 명령으로 베들레헴에 도착한 군사들의 모습을 그린 ‘영아 학살’. 갑옷을 입은 기마대가 창을 들고 위협적으로 서 있는 마을 광장에서 군인들이 아이들을 광장으로 끌고 나오고 끌려나온 아이들을 창으로 찌르고 있다.

마을 광장 중앙에는 군인에게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여자,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울부짖고 있는 여자, 군인들에게 애원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다.

남자들은 그러한 여자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등을 돌리고 있으며 화면 왼쪽의 기마병들은 아이를 안고 도망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있다.

마을 여자들은 공포와 슬픔에 휩싸여 있고 단순한 색채의 배경은 눈에 갇힌 고립된 마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살육의 현장과 어울리지 않게 개를 끌고 가는 남자와 이륜마차 그리고 반쯤 열려 있는 문 등은 마을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피터 브뤼겔(1525경~1569)은 성서의 사건을 자신이 살고 있는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에 담아냈다. 그는 아이를 잃은 여자들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여자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기병대를 지휘하는 인물은 네덜란드를 통치하고 있던 알바 공작이다. 실제로도 알바 공작은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처럼 길고 흰 턱수염을 지녔다. 또한 기병대가 창을 위로 향하게 들고 있는 것도 스페인 군대의 특징이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2.07.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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