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6일 목요일

진정한 웰다잉, 인체조직 기증

진정한 웰다잉, 인체조직 기증

기증 문화 확산 위한 조례 제정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2007년 8만1천149명, 2008년 7만4천841명, 2009년 18만5천46명, 2010년 12만4천383명. 이는 우리나라의 연도별 장기기증 희망자 통계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2009년, 장기기증 희망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그 이유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덕분이다. 김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면서 각막을 기증해 2명의 눈을 뜨게 했다.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당시 장기 기증을 희망한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 지자체들의 조례 제정으로 인해 인체조직 기증 문화 확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지난해 10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미담이 전해진 바 있다.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한 박준철 씨가 자신의 인체조직을 모두 기증해 환자 150명에게 새 인생을 선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외과의사였던 고인은 생전에 국내 및 해외에서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하는 등 평생 나눔 활동을 실천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줬다. 이로 인해 고인의 인체조직 기증은 천사 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아름다운 선물로 널리 회자됐다. 또 하나 박준철 씨의 사연이 화제가 됐던 것은 그가 의사 중 인체조직의 첫 기증자였다는 점이다.

장기 기증이라고 하면 왠만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인체조직 기증이란 말은 아직 낯설다. 쉽게 얘기하자면 장기 기증은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각막 등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인체조직 기증은 장기에 속하지 않는 피부, 뼈, 심장판막, 혈관, 연골, 인대, 건, 근막, 양막 등 인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생각하기엔 장기보다 중요도가 덜해 보이지만, 인체조직 기증 역시 소중한 생명 나눔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은 중증 환자의 경우 피부 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인공물질이나 돼지 피부 등은 거부반응이 심하므로 사람의 피부가 필요하다.

또 뼈암이나 척추결핵, 골육종 등의 질환으로 뼈가 손상된 환자에게는 다른 이가 기증한 작은 뼛조각이 새로운 생명의 도구가 된다.

장기 기증의 10분의 1에 불과해
사실 장기 기증은 각막을 제외하고는 뇌사일 경우에만 기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체조직은 사망 후 최대 24시간 이내면 기증할 수 있으므로 사망 이후에는 적출할 수 없는 장기보다 이식에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또 인체조직은 장기와 달리 감염이나 면역반응을 없애 멸균처리를 하면 누구에게나 이식할 수 있고, 한 명의 기증자에게서 채취한 조직으로 최대 150명의 환자가 혜택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인체조직 기증 희망등록자 수는 장기기증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하다. 2001년 17명에 불과했던 인체조직 기증 희망자는 2010년 2만8천443명으로 늘었지만, 실제 신체조직 기증자 수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외국과 비교할 경우 인구 100만명당 인체조직 기증자 수가 미국 133명, 스페인 58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3.3명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조직의 약 78%를 미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에서 들여온 인체조직은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수십 배나 비쌀 뿐더러 인종의 차이로 인해 이식 효과가 떨어지고 감염의 우려마저 있다.

지자체 6곳,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조례 제정
이처럼 인지도가 낮아 기증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체조직 기증이 최근 일부 지자체의 조례제정으로 인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울산광역시에서는 인체조직 기증 장려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장기 및 인체조직 등 기증 장려에 관한 조례안’을 최종 의결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구광역시, 경기도 남양주시, 경기도, 부산광역시 남구, 울산광역시 등 6곳의 지자체가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조례를 제정한 상황이다.

인체조직 기증 조례안이 마련되면 지역민들이 보다 쉽게 시·군·구 보건소 및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인체조직 기증 서약을 등록·접수할 수 있으며, 또 기증자에게는 각 지자체별로 예우차원에서 시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의 진료비와 시설물의 입장료 및 사용료 감면 등의 혜택을 주게 된다.

인체조직 등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지역민들에게 보다 공평하게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게 되며, 인체조직 기증 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자(莊子)는 죽기 전에 자신을 그냥 들판에 버려두라는 유언을 남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들짐승의 밥이 되고 땅 밑에 있으면 버러지의 밥이 되는데 저것을 빼앗아 이것에 준다고 무엇이 다르겠느냐”

최근 잘 사는 것이란 의미의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잘 죽는다는 의미의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육신으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웰다잉이 아닐는지….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2.07.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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