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들이여, 위대한 바보가 되자”
과과위 주관, 7월 ‘톡톡! 과학콘서트’
“오늘은 바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바로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바보에 대해 연구하면서 과학자들이 이미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더 큰 바보가 되면 노벨상이 한국에서도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같은 바보를 응원합니다.”
국내 과학기술의 집결지, 대전에서 느닷없는 ‘바보’ 예찬이 시작됐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주관하는 '톡톡! 과학콘서트'가 지난 26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된 것.
국내 과학기술의 집결지, 대전에서 느닷없는 ‘바보’ 예찬이 시작됐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가 주관하는 '톡톡! 과학콘서트'가 지난 26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진행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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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표준연구원에서 열린 '톡톡! 과학콘서트'에서 차동엽 신부가 '바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고 있다. ⓒKISTEP |
이 날 콘서트에는 이공계출신의 차동엽 신부가 초청게스트로 출연,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도전하라!'는 주제로 현직 과학인과 예비 과학인 등을 대상으로 토크 콘서트를 이어나갔다.
“바보소리 들으면 성공한 것”
차동엽 신부는 두 개의 학위를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장과 가톨릭대학교 졸업장이 바로 그것이다.
공대생 출신인 그가 신부가 된 계기는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접근한 데 있다. 민주화에 대해 스스로에게 원리적인 물음표를 던진 후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그는 종교인의 길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여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후 그는 사회문제를 놓고 수많은 고민을 시작했다. ‘바보’에 대한 연구를 한 것도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일환이다.
차동엽 신부가 ‘바보’라는 주제로 고민을 시작한 것은 여 20년 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 박사가 언급한 한 마디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바보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다. 바보 소리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는가”라는 말에서 마음 속 울림을 경험한 차 신부는 이후 바보 예찬론자가 되어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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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톡! 과학콘서트'에서 대전지역 과학기술인들이 차동엽 신부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Science Times |
차 신부는 스마트가 대세인 현 시대를 놓고 다양한 명사들의 명언을 인용, 바보가 되는 것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비판보다 실행을 앞서고, 계산된 길보다 보다 배짱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바보에 대한 이야기는 故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故 스티브 잡스 전 애플사 대표 등으로부터 수없이 언급됐다. 故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는 많은 대중들로부터 감동과 반성을 끌어냈으며,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Stay Foolish'라는 주제로 강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명장들의 바보에 대한 인용을 언급한 차 신부는 자신의 저서 '바보존'의 내용을 콘서트에 참여한 관객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차동엽 신부는 “바보란 본래 사전적으로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즉, 이해타산에 약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어 차 신부는 “한국에도 예부터 ‘벽치(癖痴)’란 말이 있었다. 이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전문적으로 연구하다보니 다른 쪽은 모자란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후기 실학자 박제가 선생은 벽이 없는 인간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벽이 있는 자만이 독창적인 정신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바보란 개념이 선택과 집중하는 힘을 갖고 있음을 역설했다.
“과학인, 상식 뒤집고 황소걸음으로 가라”
차동엽 신부의 강연 이후에는 트위터리안, 그리고 현장 관객들과 대화를 갖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참석한 관객들은 그동안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있었다는 듯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한 트위터리안은 바보스러움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 질문 했다. 이에 대해 차 신부는 사회문화운동이 진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손가락질을 하는데, 이는 ‘순수성’이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변수로 생각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가치의 전도가 필요하다. 때문에 바보상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과학계에서도 ‘개발하다 못한 상’ ‘연구하다 그만둔 상’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차 신부는 “과학자들이 그 연구를 왜 중간에 그만뒀는지를 통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과정에 상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객석에 여운을 남겼다.
과학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묻는 물음에 차 신부는 “상식을 뒤집고 황소걸음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큰 연구는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나 역시 책을 쓰다보면 졸속으로 쓴 것은 뭔가 부족하다. 오랫동안 묵히고 발효된 것들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황소걸음으로,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관객들은 종교인 게스트를 기다렸다는 듯 과학인과 종교인의 대화 갈등, 왜 이 사회에 종교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과학인과 종교인이 대화에 갈등을 느끼는 사례에 대해 차 신부는 “과학과 종교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영역이 다름을 인정하면 대화가 순조롭게 이뤄지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영역의 오류와 혼돈에 의해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증명이라는 것도 갈래를 잘 잡는다면 서로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차 신부는 “종교는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더 깊이보고, 더 멀리보고, 더 높이 보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껍데기만을 볼 때, 종교는 그것을 꿰뚫어 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종교의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신호선 연구원은 “강의가 아주 유익했다. 나와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주제로 진행된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공계 기피현상이 생기면서 이공계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은데 이 점에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힘을 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욱진(서울대 생명과학과·석사과정) 학생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바보가 되기도 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데, 바보가 되는 상황에 놓일 때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에 이 강연이 위로를 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지라도 바보 같은 삶이 유익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신수빈(이화여대 생명과학과·4년)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종교와 과학이 대립되는 부분에 고민이 있었는데 강의를 듣고 많은 해결을 얻어서 유익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톡톡! 과학콘서트'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의 ‘과학기술 미래를 말하다’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다. 지난 봄 첫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전국 각지를 다니며 과학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앞으로 진행될 행사 일정과 장소 등을 안내하고 있다.
저작권자 2012.07.27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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