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힉스’만을 물고 늘어지다
48년 만에 빛 볼 가능성 많아
"내가 살아 있을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학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올해 83세인 영국의 피터 힉스(Peter W. Higgs) 에든버러 대학 명예교수가 힉스 입자 발견 발표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지난 4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가장 핵심적인 힉스와 일치하는 입자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힉스이론을 제기한 힉스 박사도 참석했다.
진짜 힉스 입자? 속단하기에는 너무 일러
올해 83세인 영국의 피터 힉스(Peter W. Higgs) 에든버러 대학 명예교수가 힉스 입자 발견 발표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지난 4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가장 핵심적인 힉스와 일치하는 입자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힉스이론을 제기한 힉스 박사도 참석했다.
진짜 힉스 입자? 속단하기에는 너무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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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힉스입자 이론을 제기한 피터 힉스 에딘버러 대학 물리학 명예 교수 ⓒ위키피디아 |
하지만 CERN은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그동안 찾으려고 노력했던 ‘진짜 힉스 입자’인지에는 여운을 남겨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힉스 입자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할 뿐,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지 말라”며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힉스 입자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들은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신의 입자인 힉스 입자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힉스 교수는 벌써부터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소립자가 힉스 입자라면 노벨상 수상은 물론, 물리학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또한 현대 과학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 자명하다.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그렇다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처음 이론화 한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어떤 학자이며, 그가 힉스 입자이론을 내세우게 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착안하여 이러한 이론을 제기한 것일까?
힉스는 1929년 영국 월센드(Wallsen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BBC방송의 음향기사(sound engineer)였다. 그는 어릴 때 천식이 아주 심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자주 옮겨 다녀야만 했던 그는 초등학교 교육을 잘 받을 수가 없어 주로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결국 정착한 곳이 브리스톨(Bristol)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교육은 이곳에서 받게 된다.
어릴 때 폴 디락의 양자역학에 감명 받아
그의 과학에 대한 흥미는 한 권의 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명문 사립고등학교 과정인 코담 그라마 스쿨(Cotham Grammar School)에 입학한다. 주로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힉스는 우연히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론의 창시자이자 이 학교의 동문인 폴 디락(Paul Dirac)의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 물리학과에 입학해 수석졸업 한다.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에딘버러 대학의 강사로 재직하게 된다. 이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됐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첫 관심은 질량(mass)에 있었다. 그는 우주가 탄생할 때 입자에는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1964년 힉스는 입자들 사이에 무겁고, 당밀(糖蜜)과 같은 물질들이 가득 차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힉스 소립자가 이 물질들의 위치를 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즉, 힉스는 기본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부여하는 가설적인 입자다.
힉스가 질량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힉스장(Higgs Field)으로 설명된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며 소립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소립자의 질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은 무거워진다.
이처럼 힉스는 물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매개체로 추정되고 있는 입자로 질량의 근원과 우주 생성 비밀을 밝혀낼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입자물리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지 말라”며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힉스 입자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들은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신의 입자인 힉스 입자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힉스 교수는 벌써부터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소립자가 힉스 입자라면 노벨상 수상은 물론, 물리학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또한 현대 과학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 자명하다.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그렇다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처음 이론화 한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어떤 학자이며, 그가 힉스 입자이론을 내세우게 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착안하여 이러한 이론을 제기한 것일까?
힉스는 1929년 영국 월센드(Wallsen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BBC방송의 음향기사(sound engineer)였다. 그는 어릴 때 천식이 아주 심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자주 옮겨 다녀야만 했던 그는 초등학교 교육을 잘 받을 수가 없어 주로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결국 정착한 곳이 브리스톨(Bristol)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교육은 이곳에서 받게 된다.
어릴 때 폴 디락의 양자역학에 감명 받아
그의 과학에 대한 흥미는 한 권의 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명문 사립고등학교 과정인 코담 그라마 스쿨(Cotham Grammar School)에 입학한다. 주로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힉스는 우연히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론의 창시자이자 이 학교의 동문인 폴 디락(Paul Dirac)의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 물리학과에 입학해 수석졸업 한다.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에딘버러 대학의 강사로 재직하게 된다. 이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됐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첫 관심은 질량(mass)에 있었다. 그는 우주가 탄생할 때 입자에는 질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1964년 힉스는 입자들 사이에 무겁고, 당밀(糖蜜)과 같은 물질들이 가득 차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힉스 소립자가 이 물질들의 위치를 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즉, 힉스는 기본입자들과 상호작용해 질량을 부여하는 가설적인 입자다.
힉스가 질량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힉스장(Higgs Field)으로 설명된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하며 소립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소립자의 질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은 무거워진다.
이처럼 힉스는 물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물질의 기본을 이루는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매개체로 추정되고 있는 입자로 질량의 근원과 우주 생성 비밀을 밝혀낼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입자물리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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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소립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위키피디아 |
“물리학과 관계 없는 이론” 논문 거절 당하기도
힉스가 이러한 힉스 입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훗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남부 요이치로(南部 陽一郎) 시카고 대학 교수가 완성한 자발대칭파괴이론(spontaneous symmetry breaking theory)이었다. 소위 골드스톤 정리(Goldstone’s Theorem)로 요약되는 이론이다.
힉스의 “번뜩이는 영감(flash of inspiration)”을 얻은 것은 1964년 스코틀랜드에 있는 캐언곰스(Cairngorms) 산길을 걸으면서다. 그는 문뜩 골드스톤 정리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CERN에서 발간 하는 학술지
우주 탄생 초기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갖게 해주는 이러한 가상의 입자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 그는 반박논문에 이어 자신의 가설을 주장하는 논문을 CERN에 다시 보냈다. 그러나 CERN은 논문게재를 거부했다. 학술지 편집장은 “이 논문은 물리학과는 관계가 없는 논문이라고 판단돼 게재할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게 돼 송구합니다”는 말을 전해왔다.
외모가 유행에 한참 뒤처져 늘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녔던 힉스는 원래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탔다. "더 이상 물리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논문 게재를 거절했다는 소식에 그는 "저들이 내 이론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화를 냈다.
그는 여기에서 고집을 꺾지 않고 다른 학술지
원래는 신의 입자가 아니라 ‘빌어먹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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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입자'는 약력의 존재를 입증한 노벨상 수상자 레온 레더만의 책 제목에서 유래한다. ⓒ위키피디아 |
1967년 힉스는 한 학술회의 리셉션에서 이휘소 박사와 와인 잔을 기울였다.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1972년 이 박사는 학술회의를 주관하면서 힉스와 와인을 마셨던 일을 떠올렸다. 이 박사는 힉스가 말했던 '무거운 입자'를 처음으로 '힉스 입자'라고 불렀다.
힉스는 원래 ‘신의 입자’가 아니었다. ‘God Particle’이란 명칭은 약력(弱力)의 존재를 밝힌 공로로 1988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Leon Max Lederman)이 1994년 펴낸 책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당초 레더만이 붙인 제목은 <빌어먹을 입자 The Goddamn Particle>였다. 이를 밝혀내기 위한 실험비용이 엄청난 데다 아무리 찾아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출판사는 고매한 이론이 그런 제목으로 나갔다가는 독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 우려해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과학계는 “종교와 과학을 동시에 모독하는 명칭이며 그 정도로 중요한 입자도 아니다”라며 혐오감을 나타낸다.
보청기를 낀 여든셋 노인 힉스는 무신론자다. 그는 '신의 입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힉스는 힉스 입자라는 화두(話頭) 하나를 물리학계에 뚝 띄워놓고 세상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때까지 기다렸다. 해답이 나오기까지 48년이 걸렸다. 그래도 죽기 전에 해답을 들어 행복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진짜’ 힉스라면 말이다.
힉스는 원래 ‘신의 입자’가 아니었다. ‘God Particle’이란 명칭은 약력(弱力)의 존재를 밝힌 공로로 1988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Leon Max Lederman)이 1994년 펴낸 책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당초 레더만이 붙인 제목은 <빌어먹을 입자 The Goddamn Particle>였다. 이를 밝혀내기 위한 실험비용이 엄청난 데다 아무리 찾아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출판사는 고매한 이론이 그런 제목으로 나갔다가는 독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 우려해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이에 대해 과학계는 “종교와 과학을 동시에 모독하는 명칭이며 그 정도로 중요한 입자도 아니다”라며 혐오감을 나타낸다.
보청기를 낀 여든셋 노인 힉스는 무신론자다. 그는 '신의 입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힉스는 힉스 입자라는 화두(話頭) 하나를 물리학계에 뚝 띄워놓고 세상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때까지 기다렸다. 해답이 나오기까지 48년이 걸렸다. 그래도 죽기 전에 해답을 들어 행복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에 발견한 소립자가 ‘진짜’ 힉스라면 말이다.
저작권자 2012.07.12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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