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이휘소 박사, 그 왜곡된 진실

이휘소 박사, 그 왜곡된 진실

핵무기와 관계 없는 순수물리학자


동료인 팀 버너즈 리(Tim Berners-Lee)와 월드와이드웹(WWW)을 공동으로 개발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의 웹 오피스 소장인 로버트 칼리우(Robert Cailliu) 박사가 지난 2005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본지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들려준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애가 하루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우니? 친구들하고 싸웠니?”라고 물었죠.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울면서 “아빠하고는 앞으로 이야기도 하지 않을거야”라는 등 저한테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어요.

저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하도 슬피 우는 딸애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겨우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었죠. 그리고는 딸애한테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말해 보라고 그랬지요. 그러자 딸애가 단도직입적으로 “아빠는 원자폭탄 만드는 직장에 다녀?”라고 묻더군요.

그때야 비로소 딸애가 왜 울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제가 근무하는 기초과학연구소인 CERN의 이름에는 핵(nuclear)이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딸애 친구들이 아빠인 제가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핵폭탄을 만드는 곳에 근무하고 있다며 놀렸고, 화가 난 것이죠. (원문에 충실해 CERN을 유럽핵물리연구소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포와 원소의 핵심인 핵을 핵폭탄과 연결시켜
핵은 생물체의 세포를 비롯해 모든 물질의 근간의 되는 원소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핵이라는 단어는 핵폭탄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더군다나 핵에 물리가 더해지면서 당연히 핵폭탄과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 한국이 낳은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그는 핵폭탄과는 거리가 먼 순수 이론물리학자였다. ⓒ위키피디아
이러한 핵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다. 아마 2차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가공할 위력의 핵폭탄이 심어준 공포심이 커다란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에서 나오는 버섯구름의 공포가 우리 의식 속에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CERN 소속 과학자들이 우주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로 알려진 힉스입자(Higgs bosson)로 추정되는 새로운 소립자(素粒子)를 발견했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이 낳은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1935~1977)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는 영국인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1964년 이론화한 것으로 137억년 전 우주 탄생 당시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 뒤 사라진 입자를 말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반세기 이상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왔다.

처음으로 힉스라는 이름을 붙인 장본인
이 입자에 힉스라는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 바로 이 박사다. 영어이름은 벤자민 리(Benjamin Lee). 사실 힉스 입자 발견에 있어 그의 공헌도는 컸다. 이 박사는 1973년부터 미국 페르미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진을 이끌며 힉스 입자가 자연계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입자라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순수과학자인 그에게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왜곡된 진실이 있다. 바로 핵무기다. 핵무기 개발 열쇠를 쥐고 있던 핵물리학자라는 주장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이 박사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쥐고 있는 학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만 포섭하면 핵폭탄 개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본지는 이 박사와 6개월 동안 같이 연구하면서 4편의 논문을 공동으로 저술할 정도로 가까웠으며 현재 프랑스 샤클라이 연구소(Saclay Laboratory) 소속 교수로 이 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DAPNIA를 이끌고 있는 저스틴(Jean Zinn Justin) 교수를 2006년 12월에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고등과학원에서 만난 그는 “벤자민(이휘소 박사)은 나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였다. 그는 평화주의 신봉자로 핵무기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핵무기와 전혀 관련이 없고 개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웬만큼 유명한 물리학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스틴 교수는 “그의 성향이 어느 정도 좌편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마찰도 다소 있었다. 그러나 벤자민은 핵개발 지식이 있거나 그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결코 없었던, 양심적이고 평화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본받을 만한 훌륭한 학자였다”고 분명히 밝혔다.

당시 저스틴 교수는 이 박사와 관련해 국내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몇 년 전 벤자민을 소재로 한 어떤 소설이 상당히 많이 팔려 독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벤자민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도 아는 사람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벤자민은 픽션에 소재로 재가공됐을 뿐 핵무기와는 거리가 먼 학자다.”

“벤자민,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 프랑스 샤클라이연구소의 장 진 저스틴 교수. ⓒ위키피디아
저스틴 교수가 언급한 소설은 김진명 작가가 2003년에 내놓은 추리소설 '무궁화꽂이 피었습니다'이다. 핵무기 개발을 민족주의와 연결시킨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소설에서는 이 박사를 판에 박은 것 같은 모델 이용후 박사가 등장한다. 법정공방으로 간 소설이기도 하다.

이 박사의 핵개발과 관련한 의문점에 대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나 고려대 강주상 교수를 비롯한 당시 제자들이 여러 차례 해명한 바가 있다. 그러나 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휘소와 핵무기’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단골메뉴로 출연해 갖가지 추리와 상상이 등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순수성은 몇 가지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등과학원 초대원장인 김정욱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어느 날 한인교회의 목사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대학원 학생들을 중국식당에 초대했다. 식사 전, 목사는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박사가 갑자기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물리학자인 그가 기독교 종교관에 반대하는 신념을 시위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덤덤하게 아무데서나 피우는 흡연 버릇의 연속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그의 특이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면이다. 사실 그는 대단한 골초로 파이프 담배를 즐겼다. 언제나 파이프를 손에 쥐거나 입에 물고 있었다. 당시 프린스턴대학 고등과학원(IAS)의 오펜하이머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의 오펜하이머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지나친 민족적인 정서로 끌어안지 말아야
이 박사는 또 옷을 갈아입지 않기로 유명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속옷이 썩을 정도로 오래 입었다고 한다. 단순한 노총각 수준을 훨씬 넘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에 너무 빠져 있었다. 그는 토요일이든, 일요이든 간에 항상 연구실에 나갔다.

이 박사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가정과 연구가 전부였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국내에서 그를 요리조리 포장하는 것과는 전혀 달리 순수 물리학자 그리고 자연인 이휘소로 살다간 과학자다. 그의 버릇은 독특했지만 추구했던 과학은 너무나 순수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지나친 민족주의적인 감정으로 이휘소 박사를 끌어 안는다는 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과학을 추구한 순진무구한 과학자 그 자체였다.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우주의 비밀이 풀릴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박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보내는 위대한 찬사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7.18 ⓒ ScienceTime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