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9일 월요일

“인문학은 思惟의 자유에 있다”

“인문학은 思惟의 자유에 있다”

한국연구재단 석학인문강좌


인문학의 대중화와 진흥을 목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다섯 번째 강좌가 7일 광화문 서울 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언어철학)는 <이것을 저렇게도- 다원주의 실재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의 자유>라는 내용을 갖고 첫 강의를 시작했다.
▲ 정대현 이화여재대학 언어철학 명예 교수 ⓒScience Times


“자유로운 질서 추구가 바로 인문적인 것”
“이게 뭐야?” 2살짜리 아이의 물음이다. “강아지야!”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강아지는 뭐야?”라고 되묻는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묻는다. 그러나 질문의 대상이 되었던 강아지는 엄마 개에게 비슷한 물음을 물을 것인가?

개들도 물음과 대답의 낌새가 있는 행동을 보이는가? 아니다. 반면, 아이 엄마의 대답은 아이의 다음 물음을 낳고 또 하나의 대답은 다른 물음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피곤해하지도 않고 계속 묻고, 인내심 있는 엄마는 그 물음의 함축에 놀라면서 대답한다.

아이와 강아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는 어떻게 물음에 물음을 이어갈 수 있는가? 강아지는 왜 아무런 물음도 묻지 않는 것일까? 독자적 생존능력은 오히려 강아지가 더 강할 텐데, 왜 물음의 능력은 아이에게 돋보일까? 이는 언어 때문이 아닐까?

언어는 아이로 하여금 주어진 여건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언어가 없는 강아지는 그 여건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아이는 벌써 주어진 환경의 의미를 물으면서 제한적인 환경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아이의 물음처럼 주어진 조건의 사실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질서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구는 아이에게서처럼 언어를 통해 “사실의 감옥”으로부터 “가능성의 의미”를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향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인문성(人文性)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의미론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의 인문성은 새삼 주장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인문성의 성격을 명료하게 하는 의미에서 함석헌(咸錫憲) 사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함석헌은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철학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충분히 철학적이다. 그의 통전성(統全性, integrationality) 세계관은 기본적이고 개념적이다. 그의 개념은 얼핏 과거 유물로 보인다. 그러나 미래 전망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통전 철학은 씨알 개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씨알”은 일차적으로 맨 사람, 민중을 나타내지만, 또한 우주의 모든 사물이 실현해야 할 뜻을 지칭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왕> 속에 나타나는 문학의 인문성
문학의 인문성은 그 재미만큼 확실하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 작품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테바이 도시의 왕이고 어머니는 요카스타 왕비였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神託)을 받고 태어났다. 왕과 왕비는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아기 오이디푸스를 바구니에 담아 코린토스와 인접해 있는 키타이론 산에 버렸다.

그러나 아기는 코린토스의 왕 풀뤼보스와 그 왕비 메로포이의 양자가 된다. 그러나 자라면서 친자가 아니라는 소문으로 괴로워하다가 방황하게 된다. 유랑 중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좁은 길에서 한 대의 마차를 만나게 되고 서로 길을 비키라는 요구를 하다가 싸움이 벌어져 그 마차의 마부와 차주를 죽이게 되었다. 그 차주가 바로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였다.

테바이 도시는 왕을 잃고 곤경에 처하지만, 오이디푸스가 그 곤경을 극복해주어 인정을 받아 그 도시의 왕위와 왕비를 얻게 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의 살인자를 색출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이 그 살인자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카스타 왕비는 밧줄로 목을 매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맹인이 된다.
▲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면서 자기 두 눈을 찔러 맹인이 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위키피디아
<오이디푸스 왕>의 인문성은 인간 인식의 기술 의존성 때문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뺐지만 독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요카스타가 자살을 했을 때 독자는 이 비극의 필연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학의 인문성은 자명하다. 역사서들은 그러한 인문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440년경에 저술된 책으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시작된 항쟁에서부터 페르시아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에 쓰여 진 책으로 옛 신화시대부터 전한 초기인 기원전 2세기 말 한 무제(漢武帝) 때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1145년(고려 인종 23)에 완성한 책으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흥망성쇠를 기술한 책이다.

이러한 역사서들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인문적이다. 첫째, 이러한 책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그만큼 인간 역사의 중요한 부분들에 접근할 수 없거나 망각한 채로 살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인류가 역사적으로 연대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주고 자연종(自然種)으로서의 인간이 보편적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라는 인문성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역사가는 역사 현상을 기술할 때 “객관성”을 추구하지만 그의 관점으로부터 가치들의 종류, 가치들의 우선순위, 이야기의 틀, 내용을 선택해 구성하게 된다. 역사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역사 현상이라는 “사물적 잡다함”을 “하나의 질서 있는 의미 체계”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무의미할 수도 있는 잡다한 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의미를 상승시켜 주는 것이다.

예술의 언어는 비문자적이지만, 표현과 소통뿐만 아니라 세계의 탐구나 인식의 확장의 도구로서의 언어이다. 예를 들어, 두샹(Marcel Duchamp)의 <샘 Fountain>이라는 작품은 남성 소변기 하나를 선택하여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언어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나 비트겐슈타인의 게임 언어론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두샹은 이 작품을 제시했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이 일상과 예술의 거리를 약화하거나 부인하는 시각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기성품(ready-made)이나 일상품이 모두 “예술적이며 구체성을 초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해석은 소중하고 수용할 만하다.

종교 또한 인문적이다. 종교는 인간의 어떤 체계적 경험보다도 먼저 인문적이었을 것이다. 태고의 인간들은 어두운 밤의 반짝이는 별빛, 밤을 이기고 꾸준히 동터오는 새벽에 신비와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상존하는 생존의 위협 앞에 겸손을 배우고, 높은 산, 깊은 바다, 넓은 광야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의 중심에 종교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사물적 취약성 앞에서 실존을 고백하여 의미의 안정성에 이르는, 인간 진실성의 장치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종교는 그러한 초월적 의미의 질서를 선형적 문자 언어로서가 아니라 비선형적 언어로 구성된, 종교 고유의 문법을 통해 제시한다. 종교 사상의 전승을 가르치는 교육제도는 나름의 문자적 언어를 전승하고,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특정 종교는 그 종교 내에서 사용하는 문자적 언어에 어떤 역할을 부여한다. 그 문자적 언어는 그 종교 질서를 상정하는 구도의 장치이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7.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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