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BEST SF작가 10인, 배명훈(3)
이념 편향적 사고의 경직성으로 인한 위험성 경계
한국SF를 찾아서 작가 배명훈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이념 편향적 사고의 경직성과 그로 인한 위험성을 경계하며, 그보다는 인간 본연의 문제와 위기에 관심을 쏟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넓게 그리고 다차원 구도 아래 들여다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요즘 애들은 수직주의는 무조건 부자들 이념이고 수평주의는 또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 이념인 줄 알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거든. 사람 사는 게 어디 수직이나 수평 하나만 가지고 해결이 되냔 말이야...(중략)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냔 말이지. 인생이란 게 얼마나 복잡한데 어떻게 그걸 직파, 평파로 딱딱 가를 수가 있어? ---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타워> 수록단편, 오멜라스, 2009년, 114~115쪽 |
<타워>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서는 어떤 이념적 당파에도 관심 없는 한 공무원이 수직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국가권력의 시녀로 일하면서 수평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사회운동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수직파(垂直派)는 수평파(水平派)를 힘으로 눌러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수세에 몰린 수평파는 폭탄 테러라는 극약처방을 서슴지 않게 된다. 결국 50만에 육박하는 빈스토크 빌딩의 전 주민이 하루아침에 바깥으로 대피하느라 아비규환을 이룬다.
길 건너인 이웃나라 길거리에 노숙하며 난생 처음 찬바람에 덜덜 떠는 빈스토크 사람들은 이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들의 고향임을 깨닫는다. 어느 쪽으로 생각이 흐르던 간에 자기가 있을 곳은 그곳인 것이다.
작품 말미에서 주인공은 당면한 외부의 적 코스모마피아와 새로운 전쟁을 벌이는 젊은이들에게 충고한다. 전쟁이든 뭐든 다 좋은데 고향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지는 말라고. 세상에 이념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갈등하며 살아갈 수 있는 둥지마저 없애버리는 자충수를 두지 말라는 작가의 조언은 오늘날 좌우 어느 한쪽만 바라보고 달리는 이들도 귀 기울여야 할 말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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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배명훈 |
이념갈등의 공허함에 대한 풍자는 단지 빈스토크 내부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타워>의 맨 끝에 수록된 단편 <샤리아에 부합하는>을 보자. 여기서 빈스토크는 비록 인구와 영토는 극소하지만 인공위성 유도 기술 등 첨단 IT산업 강국으로서 세계시장의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구소련의 잔당인 코스모마피아와 치열한 각축을 벌인다.
그 결과 빈스토크는 이슬람교도들을 고정간첩으로 잠입시켜 빌딩 자체를 다수의 폭탄으로 날려버리려는 코스모마피아의 음모에 위기를 맞는다. 다행히 이러한 파괴공작은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는 빈스토크의 보안요원들과 방첩대가 대단한 수완을 발휘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이자 빈스토크의 정보국 2급 행정관 최신학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빈스토크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이었다. 경비가 삼엄한 이 거대빌딩에 대형폭탄을 몰래 반입하기 위해 아예 건설공사 당시부터 곳곳에 토지와 건물을 분양받은 코스모마피아의 고정간첩들은 그곳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막상 거사일이 닥치자 준비해두었던 폭탄을 불발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면서 빈스토크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추악한 세계악의 심장부가 아니라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을 배후 조종하던 테러리스트마저 빈스토크에 오래 살면서 번민에 휩싸인다. 마침내 빈스토크는 구원되었다, 지키려는 자들이 아니라 파괴하려는 자들에 의해.
이념 갈등의 뿌리에는 자기 중심주의적 아집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배명훈의 두 번째 선집 <안녕, 인공존재!>에 실린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 2007년> 역시 같은 주제의 변주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고고심령학 팀과 중국의 공룡화석 발굴팀 그리고 일본인을 팀장으로 한 2차 대전 당시의 폭탄제거반이 중국 변방의 한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문제는 이 세 팀 모두 저마다 자기네 팀의 임무가 가장 가치 있으며 상대의 학문은 사기성이 농후하거나 이류라고 치부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빈스토크는 이슬람교도들을 고정간첩으로 잠입시켜 빌딩 자체를 다수의 폭탄으로 날려버리려는 코스모마피아의 음모에 위기를 맞는다. 다행히 이러한 파괴공작은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는 빈스토크의 보안요원들과 방첩대가 대단한 수완을 발휘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이자 빈스토크의 정보국 2급 행정관 최신학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빈스토크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이었다. 경비가 삼엄한 이 거대빌딩에 대형폭탄을 몰래 반입하기 위해 아예 건설공사 당시부터 곳곳에 토지와 건물을 분양받은 코스모마피아의 고정간첩들은 그곳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막상 거사일이 닥치자 준비해두었던 폭탄을 불발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면서 빈스토크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추악한 세계악의 심장부가 아니라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을 배후 조종하던 테러리스트마저 빈스토크에 오래 살면서 번민에 휩싸인다. 마침내 빈스토크는 구원되었다, 지키려는 자들이 아니라 파괴하려는 자들에 의해.
이념 갈등의 뿌리에는 자기 중심주의적 아집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배명훈의 두 번째 선집 <안녕, 인공존재!>에 실린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 2007년> 역시 같은 주제의 변주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고고심령학 팀과 중국의 공룡화석 발굴팀 그리고 일본인을 팀장으로 한 2차 대전 당시의 폭탄제거반이 중국 변방의 한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문제는 이 세 팀 모두 저마다 자기네 팀의 임무가 가장 가치 있으며 상대의 학문은 사기성이 농후하거나 이류라고 치부한다는 점이다.
| 여기 모인 세 팀은 모두가 그렇게 타인의 안목을 부정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땅을 재단하느라 바쁘다. --- <안녕, 인공존재!> 수록단편 “누군가를 만났어”, 2010년, 77쪽 |
이 단편은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잣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처지는 보통사람들만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내가 기준이고 나머지는 다 오류투성이거나 심지어 미신이라는 작중 인물들의 태도는 여기서 특히 고고심령학이란 신종학문에 퍼부어진다.
작가가 창안한 고고심령학은 이영수가 소개한 은서동물학1)처럼 낯설지만 그럴듯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고고심령학은 고대 혼령의 흔적을 추적하여 역사문헌상의 생활문화와 실상을 대조하는 학문으로, 영매나 심령술사를 동원한 주관적 직관이 아니라 각종 미세탐지기들로 냉기펄스 변동 그래프 상에 나타나는 영기(靈氣)의 흐름을 찾아내야 하므로 그 어떤 학문보다 섬세하고 치밀한 과학적 검증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자리 잡은 기존 학문의 연구자들은 고고심령학의 존립 가치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 “발굴현장 통제가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 못 보던 사람이 근처에 계속 얼쩡거리는 것 같던데요. 생긴 건 한국인 쪽에 가까운데 아무튼 서로 기분 나쁜 이야기가 오가지 않도록 아무나 접근을 못하게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 일본 여자(폭탄제거반 팀장) 말이 중국어로 통역되어 전해지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달 전부터 우리 팀 사람들이 목격하기 시작한 중세 투르크계 혼령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은 다 못 봤다는데 이 여자 혼자서만 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끼리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한층 더 심각한 어투로 우리팀이 쓸데없는 사람을 현장에 접근하게 방치한 게 분명하다고 열변을 토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하는 발굴 작업이라는 것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경멸 섞인 비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 <안녕, 인공존재!> 수록단편 “누군가를 만났어”, 2010년, 71쪽 |
일본인 폭탄제거반 팀장은 남다른 영적 감수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에 지배되어 눈앞의 증거를 올바로 해석하지 못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의 고고심령학 팀에 현지 중국 정부가 억지로 떠맡긴 영매는 영혼을 보기는커녕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념갈등과 반목이 심해지다 보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입증은 뒷전이고 상대방을 거꾸러뜨릴 트집만 잡아내느라 논의가 산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 각주1) 네스호의 네시와 설인 같은 수수께끼의 동물들의 존재를 연구하는 이른바 ‘은서동물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학문이지만 고고심령학은 배명훈이 지어낸 상상의 학문이다. 언제고 영혼방정식을 탐지해낼 만큼 미세입자 측정기계들이 정밀해진다면 이러한 학문이 성립가능할지 모르겠다. |
저작권자 2012.07.17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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