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6일 월요일

과학과 예술은 본래 하나였다

과학과 예술은 본래 하나였다

KIRD, 과학기술 동향 세미나 개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기억하는가. 한 개, 혹은 수십 수백개의 TV들이 흩어지거나 모여서 작가가 담은 메시지를 전파로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며 백남준에게 ‘천재 아티스트’란 수식어를 붙여줬다.

당시 백남준은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가장 보편적인 매체가 바로 TV라고 여겼다. 이제 비디오아트에서 디지털아트로 한 걸음 더 나아간 미디어아트는 현대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시도하고 실현하는 예술장르로 자리 잡았다.
▲ 지난 12일, UST에서 <과학기술 동향 세미나>가 진행됐다. ⓒScience Times

미디어아트는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과학과 예술이 더 이상 분리된 장르가 아닌, 이제는 만나고 교감하며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융합이 필요하다고 많은 과학‧예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이것이 실현가능한 시대가 도래 했다고 이야기 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같이, 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음악인식 어플과 같이,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12일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University of Science Technology)에서 과학인과 예술인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연구개발인력교육원(KIRD)에서 주최한 이번 <과학기술 동향 세미나>에서는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과 이교구 서울대학교 교수가 각각 강연자로 참석, 미술과 음악 그리고 과학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21C, 과학이 예술의 상상력을 수용하는 시대
▲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이 KIRD의 <과학기술 동향 세미나>에서 과학과 미술의 융합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Science Times

이 관장은 <과학기술과 예술, 우린 원래 하나다!> 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이 관장은 “과학과 예술, 특히 미술은 이미 하나가 됐다. 이제는 융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할 시점”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과학계가 생각하는 셈법과 예술계가 생각하는 셈법의 차이를 생각해보고 싶었다”면서 “예술계가 생각하는 융합의 셈법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이 두 간극을 줄이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볼 것”이라며 강연의 전반적 방향을 언급했다.

과학과 예술의 어원을 먼저 짚은 그는 “두 단어의 어원이 같듯 양자의 개념은 결국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art)의 어원은 본래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하고, 아르스는 ‘법칙에 따른 합리적 제작활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기술의 상징적이고 정신적 의미를 함께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본래 예술의 의미는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특히 키네틱 아트(Kinetic Art)가 과학예술 융합 장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데, 조형예술의 실제적인 운동감에서 움직임과 소리, 빛 등 다양한 미학적 구성을 조합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가졌다.

키네틱 아트는 70년대를 기점으로 비디오 아트로 넘어가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떠올리면 큰 무리가 없다. TV를 통해 다양한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장르로,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디오 아트는 디지털 아트로 한 단계 발전하게 된다. 과학의 발전이 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이다.

테크놀로지 아트에 대해 이지호 원장은 “테크놀로지 아트의 경향은 순수한 움직임이라는 요소에 의한 구성이 아닌, 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테크놀로지 방법을 받아들이게 한다”고 전했다.

키네틱 아트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미국 키네틱아트 작가인 렌 라이(Len Lye)의 가 유명하다. 이 작품은 6.7미터의 부드러운 강철 밴드가 조각 안에 숨어있는 자기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강철밴드의 움직임이 조각의 악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과 관련 이 관장은 “렌 라이는 소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예술언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며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작품으로 보여준다. 마치 악기에서 소리가 나듯, 조각 작품이 음악을 표현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스위스의 키네틱아트 작가이자 신사실주의 조각가인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작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분수대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기계에 모터를 달아 물을 뿜어내고 빛을 넣어 스펙터클한 광경을 만들어내는데, 이에 대해 이 관장은 “폐기돼야 할 고철들이 작품으로 태어나는 미학”이라고 언급했다.

비디오 아트에 있어서는 백남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TV로 권력을 통제하는 것을 비웃듯,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 세계 인공위성으로 생중계를 시도, TV를 상호소통하는 매체로 활용했다.

이 관장은 “백남준은 사이언스 테크놀로지의 예술적 가능성을 시도했다”며 “이는 형식주의의 예술에 대한 반발이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그가 1963년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해 최초의 비디오 작품을 제작해 상영하면서 시작됐다. 플럭서스 연장으로서의 비디오 영상매체 작업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비디오아트가 오브제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상호관계성과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넓히며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후 콘템포러리(contemporary)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눈에 띄는데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의 <프로젝션>은 대표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파리거리에 갑자기 나타난 구름을 묘사, 화면을 가득 채운 구름을 보는 관람객은 마치 자신이 실제로 구름에 덮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그라소의 작품들은 비가시적인의 가시화를 통해 현상을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관장은 “로랑 그라소는 빛, 소리, 전기에너지, 자기장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시각화 한다”며 “이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치 연구실에 온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키네틱 아트와 비디오 아트, 더불어 현대 미디어 아트의 사례와 작가를 언급한 이 관장은 “예술과 과학은 이미 하나가 됐고, 각각의 셈법을 서로에게 적용할 수 있다. 예술의 경우 성찰적 기능과 창조성으로 조명한 현대미술 작품이 있으며 과학의 경우 과학과 예술이 통합된 작품으로 현대사회와 삶에 대한 통찰력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음악에는 무수한 과학이 있다”
▲ 이교구 서울대 교수가 과학기술과 음악의 융합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Science Times

이 교수는 <과학기술과 음악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소리와 음악의 기초에 대해 언급한 후, 과학기술과 음악 융합의 의의, 과학기술과 음악의 융합 사례 등을 중심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과 음악의 융합과 관련, 역사적 관점으로 볼 경우 고대부터 음악과 과학기술은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말한다. 특히 고대 중국인과 이집트인, 메소포타미아인은 사운드의 수학적 원리를 연구했는데, 그 대표적 예가 수학가이자 철학가였던 피타고라스로 피타고라스의 음계는 완전 5도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또한 플라토 시대부터 화음(harmony)이 물리학의 기초분야 중 하나로 간주됐는데, 이것은 현대 음악음향학(music acoustics)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과 음악의 만남은 매체(medium)가 발달하고 기기(device)가 발달할수록 더욱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됐다. 고대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실황으로 공연했지만, 이후 마그네틱 테이프카세트와 CD, MP3 등 디지털 기기가 출현하고 스트리밍 오디오 같은 장치들이 등장, 해당 장치의 발전은 음악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 셈이다.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현재, 과학기술과 음악의 융합 사례는 더욱 눈에 띈다. 그 중 허밍으로 곡을 검색하는 ‘허밍인식’ 어플리케이션은 사용자의 노래나 허밍을 기계에 입력해 어떤 노래인지 인식하는 것을 응용한 것으로 ‘음악인식’과 매우 비슷한 응용을 보이고 있다.

‘음악인식’은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어떤 노래인지 인식하는 것으로 이 기술은 기본적으로 음성인식의 원리와 같다. 여기에 오디오지문이라는 알고리즘을 사용, 스마트폰의 대중적인 보급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어플 중 하나기도 하다.

이외에도 사용자의 취향을 추적해 음악을 추천하는 음악추천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미디어 아트 등이 있는데, 이들 모든 기술 역시 과학과 음악이 효과적으로 융합돼 삶의 질을 보다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럴수록 더욱 많은 대중들이 간편한 디바이스로 음악을 감상하거나 미술 등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예로부터 예술의 발전이 과학 발전과 맥을 같이해 왔듯이, 앞으로는 어떤 예술 장르가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2.07.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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