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3일 금요일

광기의 예술가 반 고흐

광기의 예술가 반 고흐

狂氣 속 작품세계와 정신질환


“재능은 10배, 집중력은 1천 배의 차이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천재란 바로 이러한 광적이라고 할만치의 강렬한 집중력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일과 사고에 대한 지독한 아집과 집착이 천재를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 1876년도 당시 반 고흐의 모습. 그는 1890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키피디아
빈센트 반 고흐가 길거리를 걸어가면 동네 장난꾸러기들이 “미치광이가 저기 나타났네!”라고 외치며 놀려댔다. 아이들의 부모도 “저 미친 사람 또 시작이군”이라며 반은 못마땅한 마음으로, 또 반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고흐의 모습을 바라봤다.

반 고흐의 아버지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가둬두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 애는 줄곧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신)병은 그 애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고통만을 안겨줬어요.”

한쪽 귀를 잘라 자화상 그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는 최근 반 고흐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반 고흐는 정신병이 발작하면 고함을 치면서 날뛰는가 하면 그림을 그리다 남은 물감을 먹거나 페인트를 희석하는데 사용하는 테레빈유(turpentine)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내 버렸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다. 더군다나 귀가 잘린 자화상을 그렸다.

그렇다면 정신장애라는 진단 기준으로 볼 때 광기(狂氣)의 예술가 반 고흐가 앓았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간질?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정신분열증? 정확한 병명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가 미친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다시 든다. 광적인 집착을 넘어 완전히 미친 그가 어떻게 후세에 남는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해도 남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반 고흐를 자식으로 둔 부모님과 그로 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본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의 정신장애가 어떤 문제가 되느냐?'하는 질문이다. 쉽게 이야기 해서 “그래, 그가 미쳤다고 치자. 그렇다고 우리에게 해를 끼친 것이 있느냐, 없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세계만을 감상하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다.
▲ 광기의 예술가 반 고흐는 마침내 자신의 한쪽 귀를 잘랐다. 그리고 죽기 1년 전인 1889년 귀가 잘린 자화상을 그렸다. 반 고흐는 여러 점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다. 그러나 자화상들 모두 분위기와 특색이 다 다르다. ⓒ위키피디아

“의학적 판단 기준으로는 미친 것이 사실”
사실 반 고흐는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벽에 복사된 그의 그림을 걸기도 하고, 그의 그림이 새겨진 컵 받침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광기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난 2월 반 고흐 전시회(Van Gogh Up Close)를 열었던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코닐리아 함버그 규레이터는 그의 정신장애와 예술성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러한 그의 광적인 예술세계가 그의 작품을 세계 최고의 명작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그가 정신이상자였다는 사실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러한 편견을 없애고 순수한 예술로써 그의 작품을 평가해야 한다”면서 작품을 만든 작가를 생각하지 말고 작품 그 자체에 열중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술 작품은 그 작품 자체로 충분한 것이지 개인의 병력(病歷)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반 고흐 인기? 그림이 사라질 확률보다 못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그러나 반 고흐가 생존했던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미친 화가였다. 팬들조차 그의 그림에서 섬뜩할 정도의 광기를 느껴 등을 돌릴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팬 가운데 한 명은 “반 고흐가 인기를 얻을 가능성은 이 세상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질 확률보다도 희박하다”고 꼬집으면서 그의 작품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반 고흐는 또한 우리의 예상과 달리 “지치고 아프고 제정신이 아닐수록 나의 예술가적인 기질은 더욱 더 살아난다”는 또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예술성이 광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오래된 통념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A grain of madness is what is best in art(가벼운 광기는 예술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요소다)”라는 말을 즐겨 썼다. 또한 “I want to feel what I paint, and paint what I feel(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느끼고 싶고,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 반 고흐의 1888년도 작품 즈아브병(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경보병) 장교. 반 고흐는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추함과 상스러움, 그리고 눈에 거슬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흐의 900여 점의 그림과 1천100여 점의 습작들은 죽기 전 10년 동안에 만든 작품들이다. ⓒ위키피디아

자, 그렇다면 그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신병 환자는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예술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명한 철학을 갖고 있는 예술가에게 “미쳤다”라는 말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 광기의 예술가 반 고흐의 작품세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뉴스위크는 한 미술 비평가의 말을 인용, “그의 작품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의기양양한 마음의 외침”이라고 평가했다. 반 고흐의 그림은 그를 “미술계의 가장 확실한 외침꾼”으로 만들었다.

“세상은 부주의한 신이 만든 불완전한 세계”
그의 작품을 알아준 사람은 동생 테오였다. 그림을 팔고 사는 화상(畵商)이었던 그는 형이 요양원에서 그려 자신에게 보낸 무절제하고 소용돌이 치는 그림들을 보면서 “형, 이 그림들을 그릴 때 얼마나 머리를 쓰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가요”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반 고흐는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인 1890년 6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찌그러진 몰골을 들여다 보며 “비탄에 잠긴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별 없고 부주의한 신(神)이 만든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이 반 고흐의 작품 속에서 보는 세계가 바로 그러한 세계이다.

반 고흐는 정신병으로 37세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가슴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다. 죽기 전에 경찰에게 스스로 가슴에 총을 쐈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제까지의 정설이다. 그러나 새로 나온 그에 대한 전기(傳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반 고흐가 자신을 괴롭히던 10대 청소년 가운데 한 명이 쏜 총에 맞아 죽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다.

이러한 추측이 맞는다면 반 고흐는 스스로 총을 쏴 자살했다고 함으로써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친 천재예술가로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는 천재였을까? 아니면 미친 정신병자였을까? 둘 모두를 합친 미친 천재는 아니었을까?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7.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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