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3일 금요일

내 몸 안의 주치의, '나노봇'의 미래

내 몸 안의 주치의, '나노봇'의 미래

에릭 드렉슬러 '창조의 엔진'

‘분자 조립자(molecular assembler)’라는 개념은 드렉슬러(K. Eric Drexler)의 저서 '창조의 엔진, Engines of Creation'(1986)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이후 분자조립자는 나노기술이 발달하면서 '나노크기의 로봇'이라는 의미로 확장돼 나노봇(nanobot)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드렉슬러는 분자생물학의 효소와 리보솜에서 영감을 얻어 나노봇을 착안하게 됐는데, 그는 생물학적 유사성을 뛰어 넘어 모든 원자 하나하나를 원하는 곳에 배치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러한 작업을 ‘골라내어 붙이기(pick and place)’라 말하며, 그는 이 작업이 인체의 분자복구(mloecular repair)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료용 나노봇이 인체로 들어가 바이러스와 암세포를 파괴하고 손상된 인체구조를 치료하며 두뇌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함으로써 신체를 더욱 젊고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 1986년에 출간된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 ⓒ위키피디아

진화하는 테크놀로지
드렉슬러는 자신의 저서 '창조의 엔진'에서 앞으로 기계가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예견했다. 생명체가 복제자의 변이와 선택을 통해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듯이 기계도 인공적인 설계를 통해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구에 등장한 최초의 복제자들은 RNA 분자들을 넘어서는 능력을 진화시켰으며 원시생물 단계에 머물렀던 이들이 박테리아 단계에 이르렀을 즈음 DNA→RNA→단백질을 만드는 현대적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러한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가 갖춰지자 생명체는 수많은 시간 동안 그 틀 속에서 생명활동을 반복해왔다.

드렉슬러는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려 “유전자들은 자신들의 복제를 돕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생존 기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드렉슬러는 기술의 발전 속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혁명적이거나 비약적 발전을 지향하기보다는 오히려 진화적인 면이 훨씬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창조의 엔진'에서도 기술의 진화를 결과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분자조립자, 즉 나노봇을 만들기 위한 '설계'가 어떻게 진화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스로 자가복제하는 나노봇
드렉슬러는 다양한 기술의 변이들 가운데 선택된 최종 산물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발판, 즉 ‘설계’의 진화에 주안점을 둔다. 설계 자체가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기술의 설계가 진화한다고 보는 것은 나노봇의 자가복제 기능, 수복(repair) 기능과 연결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드렉슬러에 의하면, 설계는 두 가지 뚜렷한 방식으로 진화를 수반한다. 첫째, 설계 업무 자체가 진화한다. 엔지니어들은 기계가 작동하는 설계들을 축적할 뿐만 아니라 그 설계가 기능하기 위한 설계 방법도 함께 축적한다.

둘째, 설계 자체가 변이와 선택을 통해 진행된다. 엔지니어는 실제 제작에 앞서 모의 설계를 만들고 이를 수학 법칙을 이용해 검사한다. 특히 두번째 진화방식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훨씬 더 복잡하고 세밀한 작업까지 가능하게 됐다. 이처럼 설계의 진화는 곧 기계의 진화적인 면모를 드러내줬으며 이후 나노봇의 출현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 저자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는 '나노공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위키피디아
나노봇이 자가증식 돼야 하는 이유는 분자단위의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나노크기는 10억분의 1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나노봇의 크기가 머리카락두께 1000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할 때, 효과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짧은 시간 내에 다량의 나노봇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나노봇의 자가복제(자가증식)는 어떻게 실현가능할 것인가. 생명체 유전자의 경우, 자신을 복제해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만든 다음 RNA로 전사과정을 거쳐 최종 단백질이 완성된다. ‘복제 과정’은 생명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다.

드렉슬러는 리보솜 대신 분자조립기계를 이용해 인공복제자도 자신과 똑같은 분자를 복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세포는 부드럽고, 축축하며, 접힌(folding) 단백질 분자로 구성돼 있지만 인공복제자는 이러한 특정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복제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분자조립기계에는 사람의 손과 같은 모양의 팔이 달려있어 자가복제를 더욱 정교하게 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드렉슬러가 구상한 ‘나노기술’의 미래상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고도의 프로그래밍된 복제자이자 분자 조립자인 기계는 나노크기의 물질이고, 스스로 자가복제를 진행한다. 이렇게 생성된 다수의 분자 조립자는 RNA가 다양한 단백질로 만들어지듯이 다양한 기능체로서의 역할을 할 자가복제 가능한 분자조립자로 탄생하게 된다.

나노기술의 고전, 창조의 엔진

1986년 드렉슬러가 나노봇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당시에는 공상에 불과하다며 동료과학자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미국이 국가나노기술계획(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 2000)을 발표하면서 나노기술의 낙관적인 전망과 함께 분자 조립자의 개념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편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드렉슬러의 아이디어가 실현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실제로 라이스 대학의 스몰리(Smalley)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Scientific American'(2001)에서 드렉슬러의 나노봇이 실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나노봇의 자가증식 속도문제, 나노봇의 손가락 문제, 원자 고유의 특성이라는 세가지 이유로 분자조립자의 실현불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로부터 2년 뒤, '화학공학, Chemical & Engineering'(2003)지에 드렉슬러의 반박이 공개적으로 실리면서 '스몰리-드렉슬러 논쟁'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NNI가 계획된지 10년이 지났다. 한국은 미국보다 1년 늦은 2001년에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했으며 이제 갓 10년을 넘겼다. 분자에서 원자수준으로 축소시키는 하향식(Top-down)이 아닌 원자수준에서 나노봇이 하나하나 쌓여나가는 상향식(Bottom-up) 나노기술이 실현되려면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980년대 한 과학자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창조의 엔진'은 오늘날 나노과학기술의 고전이 됐다. 2007년 저자는 최신 논문과 발표를 엮어 '창조의 엔진 2.0'을 e-book으로 출간하도 했다. 오늘날 거대하게 형성된 나노기술의 담론 속에서 우리는 나노기술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1. 드렉슬러, 조현욱 옮김, 『창조의 엔진』, 김영사, 2011. p. 74, p. 77, pp. 82-83, p. 86, p. 126, p. 128
2. Drexler, “Machine-Phase Nanothechnology”, Sceintific American 285(3), 2001, p. 74.
3. Drexler, “Drexler Open Letter”, Chemical & Engineering 81(48), 2003, pp. 37-42.
4. Smalley, “Smalley Reponds”, Chemical & Engineering 81(48), 2003, pp. 37-42.

손은혜 객원기자 | iamseh@naver.com

저작권자 2012.07.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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