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문화를 열자
박석재의 하늘 이야기 15
과학에세이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달과 행성에 탐사선을 보내느라 야단법석인 지금은 누가 뭐래도 우주시대다. 국민수준이 낮아서 훌륭한 우주문화 상품을 갖지 못한 국가는 문화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ET’나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우주문화 꽃이 활짝 피어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우주문화 분위기는 어떻게 보면 도로나 항만만큼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막장 드라마나 폭력영화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영화에서 왜 우리 아이들은 안 되고 꼭 백인 아이들만 ET를 만나야 하는가. 현실은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왜 우주음악, 우주미술, 우주영화, 우주공원…같은 것이 거의 없을까.
“우리나라 어느 정보기관 지하에는 ET 시체가 냉동보관 중에 있다, 우리 공군 전투기 편대가 UFO를 추적했다,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이 ET와 교전했다, 우리가 만든 로켓이 드디어 달에 도착했다…” 우리도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약 5년 전 일이다. 어렵게 연락이 돼 나는 두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불쑥 말했다.
“박사님, 저희는 타임머신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쎄요,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요?”
내 입에서 상투적이고 무성의한 답이 나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정색을 하며 나에게 줄거리를 얘기했다.
“…해저 연구소에 완벽하게 격리된 7명의 연구원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 어느 날 오전 11시 타임머신을 타고 2명의 연구원이 다음 날 오전 11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가봤다. 그런데 모두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전날 오전 11시로 돌아온 2명의 연구원은 예고된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는 크게 감명 받았다. 소재는 SF지만 추리적 요소와 스릴이 추가돼 절묘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반부에 충격적인 반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본격적인 SF 영화는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바 없다. 두 사람은 꿈을 찾아 도전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일에 많이 무디어졌음을 깨달았다.
나를 크게 반성하게 만든 그 두 사람은 이강규 프로듀서와 이승환 작가였다. 몇 달 뒤 우리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시 만났다. “지구가 미니 블랙홀이 되면 사람 손톱만해진다는 사실에 유의해라, 미니 블랙홀이 연결된 웜홀을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우기면 된다, 과학자들 말이 너무 거칠다, …” 나는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해줬다.
이후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동안 두 사람을 간간이 만나기는 했지만 큰 진전은 없어 보였다.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3년이 넘도록 헛고생만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영화인들은 고생이 많구나.’
나는 두 사람이 무척 안쓰러워 만나면 위로하기 바빴다. 그런데 2012년 봄 어느 날 이강규 프로듀서의 전화가 왔다.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 내 귀청을 때렸다.
“박사님, 드디어 투자자를 구했습니다! 이제 촬영에 들어갑니다!”
“그래요? 축하합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SF 영화 시대가 열리겠네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였지만 정말 기뻤다. 이 영화가 성공하면 SF 붐이 조성돼 우리 국민을 막장 드라마와 폭력 영화로부터 해방시켜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동네 노래방 하나 잘 되면 한 달도 안 돼 노래방 서너 개가 생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뜻 아닌가.
“그래, 영화 제목은 무엇으로 확정했지요?”
“영화 제목은 ‘열한시’입니다.”
“주연과 감독은 누구세요?”
“정재영 배우님과 김현석 감독님입니다.”
한국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도 아는 이름들이었다.
‘아,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만들겠구나!’
얼마 후 나는 제작회의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을 만나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특히 SFX(특수효과) 쪽에서 질문이 많았다.
“웜홀을 통과하는 과정 그래픽은 소신껏 만드시면 됩니다. 실제로 통과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에서는 우주선이 광속으로 날면 별들이 직선을 그리지 않습니까….”
내 말을 들은 스태프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바로 제작과정에 들어갔다.
제작과정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일화가 하나 있다. 정부출연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National Fusion Research Institute)에서 ‘열한시’ 제작을 아낌없이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NFRI에는 ‘K-STAR’라고 부르는 거대한 핵융합장치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SF 영화의 세트로서 안성맞춤이다. NFRI는 K-STAR 점검기간에 과감하게 촬영을 허용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도 기관장을 지냈지만 이런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NFRI 권면 소장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남긴다. 인터넷에 이미 올라와 있는 ‘열한시’의 예고편을 보면 K-STAR가 얼마나 훌륭한 배경이 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영화 ‘열한시’는 11월 말 개봉된다. 이런 영화가 대박이 나서 나라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 ‘풀뿌리’의 하나다. 김선빈 관장이 이끄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는 ‘국제SF영상축제’같은 풀뿌리인 것이다. 독자는 잘 키운 SF 영화 하나 열 공장 안 부럽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러한 풀뿌리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어록에서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영화산업이 4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문화융성의 핵심이자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런 차원에서 대통령이 영화인 처우개선,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글로벌 시장진출 확대 등을 구체적으로 지원 약속한 것은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미래 우리 영화의 나아갈 길이 11월 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ET’나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들은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우주문화 꽃이 활짝 피어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우주문화 분위기는 어떻게 보면 도로나 항만만큼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막장 드라마나 폭력영화를 보고 살아야 하는가. 영화에서 왜 우리 아이들은 안 되고 꼭 백인 아이들만 ET를 만나야 하는가. 현실은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왜 우주음악, 우주미술, 우주영화, 우주공원…같은 것이 거의 없을까.
“우리나라 어느 정보기관 지하에는 ET 시체가 냉동보관 중에 있다, 우리 공군 전투기 편대가 UFO를 추적했다,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이 ET와 교전했다, 우리가 만든 로켓이 드디어 달에 도착했다…” 우리도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약 5년 전 일이다. 어렵게 연락이 돼 나는 두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불쑥 말했다.
“박사님, 저희는 타임머신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쎄요,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요?”
내 입에서 상투적이고 무성의한 답이 나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정색을 하며 나에게 줄거리를 얘기했다.
“…해저 연구소에 완벽하게 격리된 7명의 연구원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 어느 날 오전 11시 타임머신을 타고 2명의 연구원이 다음 날 오전 11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가봤다. 그런데 모두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전날 오전 11시로 돌아온 2명의 연구원은 예고된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는 크게 감명 받았다. 소재는 SF지만 추리적 요소와 스릴이 추가돼 절묘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반부에 충격적인 반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본격적인 SF 영화는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바 없다. 두 사람은 꿈을 찾아 도전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일에 많이 무디어졌음을 깨달았다.
나를 크게 반성하게 만든 그 두 사람은 이강규 프로듀서와 이승환 작가였다. 몇 달 뒤 우리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시 만났다. “지구가 미니 블랙홀이 되면 사람 손톱만해진다는 사실에 유의해라, 미니 블랙홀이 연결된 웜홀을 이용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우기면 된다, 과학자들 말이 너무 거칠다, …” 나는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해줬다.
이후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동안 두 사람을 간간이 만나기는 했지만 큰 진전은 없어 보였다.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3년이 넘도록 헛고생만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영화인들은 고생이 많구나.’
나는 두 사람이 무척 안쓰러워 만나면 위로하기 바빴다. 그런데 2012년 봄 어느 날 이강규 프로듀서의 전화가 왔다.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 내 귀청을 때렸다.
“박사님, 드디어 투자자를 구했습니다! 이제 촬영에 들어갑니다!”
“그래요? 축하합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SF 영화 시대가 열리겠네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였지만 정말 기뻤다. 이 영화가 성공하면 SF 붐이 조성돼 우리 국민을 막장 드라마와 폭력 영화로부터 해방시켜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동네 노래방 하나 잘 되면 한 달도 안 돼 노래방 서너 개가 생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뜻 아닌가.
“그래, 영화 제목은 무엇으로 확정했지요?”
“영화 제목은 ‘열한시’입니다.”
“주연과 감독은 누구세요?”
“정재영 배우님과 김현석 감독님입니다.”
한국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도 아는 이름들이었다.
‘아,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만들겠구나!’
얼마 후 나는 제작회의에서 감독과 스태프들을 만나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특히 SFX(특수효과) 쪽에서 질문이 많았다.
“웜홀을 통과하는 과정 그래픽은 소신껏 만드시면 됩니다. 실제로 통과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에서는 우주선이 광속으로 날면 별들이 직선을 그리지 않습니까….”
내 말을 들은 스태프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바로 제작과정에 들어갔다.
제작과정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일화가 하나 있다. 정부출연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National Fusion Research Institute)에서 ‘열한시’ 제작을 아낌없이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NFRI에는 ‘K-STAR’라고 부르는 거대한 핵융합장치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SF 영화의 세트로서 안성맞춤이다. NFRI는 K-STAR 점검기간에 과감하게 촬영을 허용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도 기관장을 지냈지만 이런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NFRI 권면 소장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남긴다. 인터넷에 이미 올라와 있는 ‘열한시’의 예고편을 보면 K-STAR가 얼마나 훌륭한 배경이 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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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여름 K-STAR 앞에서 기념 촬영한 영화 ‘열한시’ 배우들 일부. 왼쪽부터 이건주, 신다은, 박철민, 정재영, 필자, NFRI 권면 소장, 최다니엘, 김현석 감독, 이강규 프로듀서. ⓒ박석재 |
영화 ‘열한시’는 11월 말 개봉된다. 이런 영화가 대박이 나서 나라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 ‘풀뿌리’의 하나다. 김선빈 관장이 이끄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는 ‘국제SF영상축제’같은 풀뿌리인 것이다. 독자는 잘 키운 SF 영화 하나 열 공장 안 부럽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러한 풀뿌리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어록에서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영화산업이 4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문화융성의 핵심이자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런 차원에서 대통령이 영화인 처우개선,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글로벌 시장진출 확대 등을 구체적으로 지원 약속한 것은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미래 우리 영화의 나아갈 길이 11월 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저작권자 2013.10.18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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