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아이들에게는 낮잠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는 낮잠도 수업시간!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50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한낮의 더위가 굉장한 스페인에서 사람들은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자는 관습을 만들어 낮의 무더위를 피하는 삶의 지혜를 수백 년 동안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경제 위기로 나라 전체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시에스타를 없애 스페인 비즈니스 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세계화 앞에서는 오래 된 전통도 설 자리가 없나보다.

사실 잠을 줄이는 건 현대인의 생활패턴이 됐다. 할 일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가 어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은 물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어린이들에게까지도 퍼지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한 아이들은 그 뒤에도 학원 한 두 곳은 더 다녀와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현대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려서부터 이런 생활패턴이 불가피한 것일까.
▲ 이번 연구결과는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는 어린이집 커리큘럼 경향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강석기
 
미국 매사추세츠 암허스트대 레베카 스펜서 교수팀은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낮잠이 학습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0월 22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서 잠이 기억력을 향상시켜준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성인의 잠 패턴의 차이는 잠자는 시간뿐 아니라 낮잠의 여부도 포함된다. 신생아는 거의 종일 잠을 자지만 점차 잠시간이 주는데, 예전에는 5살 무렵까지는 대부분 낮잠을 잤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고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꽉 찬 커리큘럼을 선호하는 부모들 때문에 이제는 낮잠을 자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밤에 자도 낮잠 효과 안 나와
연구자들은 평균 나이가 50개월인 어린이 40명을 대상으로 낮잠의 여부가 서술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서술기억이란 사물의 이름이나 얼굴 같은 사실 정보에 대한 기억으로 의식의 영역에 있다. 참고로 자전거를 타는 요령처럼 무의식적인 기억은 절차기억이라고 부른다.

오전 10시 아이들은 그림이 9개(44개월 미만) 또는 12개(44개월 이상)가 배치돼 있는 그림판을 본 뒤, 진행자가 보여주는 그림이 그림판의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맞춰야 한다. 9개일 경우는 7개, 12개일 경우는 9개 이상을 맞출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일단 기준에 도달하면 바로 ‘직후 기억’ 테스트를 한다. 그 결과 기억의 정확도는 75% 내외로 나타났다.
▲ 서술기억을 테스트하는 방법. 먼저 그림 12개가 배치된 그림판을 본다(위). 그림이 가려진 그림판 오른쪽 화면에 그림이 뜨면 위치를 가리킨다(가운데). 정확도가 75%에 이를 때까지 틀리면 그림의 위치를 알려준다(아래). 이 과정을 반복해 정확도가 75%가 넘으면 기억력 테스트를 하는데, 이때는 틀려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PNAS’
그 뒤 아이들은 정상적인 일정을 보내고 오후 1시가 되면 반은 낮잠을 자고 나머지는 계속 활동을 한다. 낮잠 시간은 3시까지다. 아이들은 평균 78분 동안 낮잠을 잤다. 3시 반이 되면 아이들은 ‘지연 기억’ 테스트를 받는다. 오전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시하는 그림을 보고 위치를 말하는 것인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낮잠을 잔 그룹은 직후 기억의 정확도와 차이가 없었지만, 죽 깨어있었던 그룹은 10% 이상 낮아졌다.

이 결과에 대해 낮잠이 오전의 일에 대한 기억력을 공고히 한 게 아니라, 단지 낮잠을 잔 아이들은 피로가 풀려 정신이 맑고 깨어있었던 아이들은 피곤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하루, 즉 24시간이 지난 뒤 기억력을 테스트했다. 즉 다음날 오전 10시에 같은 방식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로 낮잠을 잔 그룹의 정확도가 10% 이상 더 높았다.

이 결과는 낮잠을 안 자 약화된 기억력이 밤에 잠을 자더라도 회복되지 않음을 뜻한다.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기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잠을 자주 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 아이들은 자주 잠을 잤는데,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이런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즉 요즘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인지능력 발달 경로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하루 두 번 자는 습관에서 한 번 자는 습관으로 바뀌는 나이대가 빨라지면서 낮잠을 뺏긴 아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는 학부모의 요구에 맞춰 어린이집에서 낮잠 시간을 빼는 커리큘럼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이 고민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질 것 같아 서너 살 아이에게 이것저것 주입하기에 급급한 부모들이 유념해야할 연구결과가 아닐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10.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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