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유리벽 사이에 두고 놀아볼까

유리벽 사이에 두고 놀아볼까

[인터뷰] 이우훈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외부접근이 차단된 소아병실의 어린이와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술의 고민으로 탄생한 새로운 개념의 엔터테인먼트 개발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우훈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신개념 게임 미디어 ‘트랜스월(TransWall)’이 발상의 신선함을 인정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따뜻한 기술
▲ 이우훈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황정은
 

이우훈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와 이기혁 전산학과 교수팀이 공동으로 연구해 개발한 해당 제품은 투명한 유리의 양면을 터치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새로운 개념의 게임 미디어다.

멀티터치가 가능한 두 장의 유리 사이에 홀로그래픽 스크린 필름을 삽입하고 양쪽에서 빔 프로젝터로 유리에 영상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가동, 유리에 ‘서피스 트랜스듀서(Surface Transducer)’를 부착했기 때문에 손으로 터치하면 화면을 통해 소리와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소아환자의 어린 환자들이 외부와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제품이었어요. 때문에 소리와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제작했죠. 우리가 알다시피 유리창은 투명하고 창을 통해 서로를 마주볼 수 있죠. 유리를 통해 공간을 나누기도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비주얼한 정보를 나눌 수도 있어요. 우리 주위에 많이 존재하는 유리벽을 보다 풍부한 상호작용 매체로 사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이번 기술이 시작됐습니다.”

최근 대형 투명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기술 개발은 각 기업들의 끊임없는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이우훈 교수 역시 생활 속 재미있는 요소들을 유리벽 안으로 삽입할 경우 삶이 보다 풍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시각적 콘텐츠를 공유하면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야기 했다.

“비주얼한 정보의 공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질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리벽에 스피커 기능을 탑재한다면 한 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반대편에서 들을 수도 있겠죠. 청각적 정보를 컨트롤함으로써 기기의 사용처를 훨씬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쪽에서 터치하며 손가락이 동시에 겹쳐지면 촉각적인 피드백도 줄 수 있죠. 마치 서로가 스치는 것 처럼요.”

이렇게 개발한 기술은 지난 7월 미국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컴퓨터 그래픽 및 상호작용기술 분야의 세계적 학회인 시그래프 이머징 테크놀로지(SIGGRAPH Emerging Technologies) 에 전시되며 ‘가장 돋보인 작품(Highlight)’ 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 전시를 할 때 한국과 미국의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들이 많이 왔어요. 세계의 분위기를 보니 투명디스플레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주 소형으로 나오거나 혹은 프로토타입으로 나오는 정도인 것 같았어요. 대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개발은 아직 진행 중인 것 같더라고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서는 개발한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고요.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곳에서는 마케팅 역시 자연스럽게 기술주도형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희는 사용처를 먼저 염두에 두고 연구에 들어갔어요. 때문에 다양한 사용처에 대한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은 셈이죠. 공공장소에서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사용되는 것과 병원, 감호소 등에서 사용되는 발상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해당 기술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의 한 학생의 졸업연구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벽을 소통의 미디어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병원의 무균실에서 소아암 등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촉감을 전해주자는 의도로 진행됐다.

“사실 굉장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도 옆에 있는 것처럼 소통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으니까요.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 더욱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중 대표적인 게 게임이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뭔가 콘텐츠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소프트한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복잡한 게임보다 부드러운 게임에 쉽게 접근하는 거죠. 미국 전시회 때 선보인 뮤직 버블도 덕분에 많은 인기를 끌었고요.”

이우훈 교수팀이 선보인 뮤직버블은 손가락을 움직이면 버블이 발생하는 장치로 구성됐다. 하나하나의 버블에 컬러를 입혔으며 컬러마다 다른 음색이 나와 사람들은 다양한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 유리 자체가 스피커이므로 손으로 터치하면 소리가 나오게 되고 이를 통해 일행끼리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며 소리의 화합을 만들 수도 있다.

공공 디스플레이로서의 기능
▲ 이우훈 교수팀의 트랜스월은 유리벽의 양쪽 면을 터치해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활용할 수 있다.  ⓒ카이스트

이우훈 교수팀익 개발한 트랜스월은 그 응용처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 있어서 주목을 받는다. 병원 무균실과 감호소 같은 특수한 상황에 사용 될 수 있으며 버스터미널이나 기차 역사, 쇼핑몰과 테마파크 등 많은 행인들이 오가는 곳에 설치할 수도 있다.

“응용의 용도로 보자면 게임뿐 아니라 공공 디스플레이로서 의미가 있어요. 광고나 TV 방송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죠.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가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포맷으로 다양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품은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기술을 안고 있는 만큼 트랜스월 제작에 사용된 부품이나 원천기술 등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이를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인터랙션 시나리오’ 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사실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은 많은 곳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이의 응용처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터랙션 시나리오’는 특허출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술적으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떤 소재를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요. 투명 LCD 디스플레이의 경우 투과율이 20~30% 밖에 되지 않아 디스플레이 뒤에 있는 광원이 세지 않으면 보이지 않거든요. 발광형 투명디스플레이를 구하려고 했지만 기업에서도 개발단계여서 구할 수 없더군요. 때문에 포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홀로그래픽 스크린 필름을 접하게 됐어요. 지금도 대도시 쇼핑몰에서 볼 수 있는 소재인데 이를 활용한 후에 기술을 현실화 할 수 있었죠.”

개발된 제품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르면 3~4년, 혹은 5년 이내에 해당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제품들이 등장할 것인데 이우훈 교수는 그 전에 대중들이 해당 기술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 기술개발을 하는 데 있어 시장가능성을 제안한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박물관 등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요. 박물관 측에서는 아이들에게 게임콘텐츠와 교육콘텐츠를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앞으로 우리 연구실은 더욱 다양한 기술과 디자인의 접목을 시도할 것입니다. 다채로운 기술적 소재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고 싶거든요.

연구실의 특성상 한 가지 개발품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기보다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월은 조금 더 발전된 형태로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유리라는 매개체는 한 쪽의 이미지를 반전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을 다시 보상해서 바르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완성될 경우 더욱 다양한 매체로 이용될 수 있을 테니까요.”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10.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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