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사전시각화기술' 한국영화 동력 될까

'사전시각화기술' 한국영화 동력 될까

아시아 최초 버추얼 스튜디오 개관


한국에서도 '아바타'나 '반지의 제왕' 같은 대형 판타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동안은 기술력이나 비용 면에서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달 중 부산에서 개관하는 국내 최초의 3D 프로덕션센터 '디지털베이(Digital Bay)'가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며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버추얼 세트를 활용해 기존 제작과정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키는 '사전시각화(Pre-visualization)' 기술이 그것이다.

가상에서 현실로, 세트와 사람까지 한번에
▲ 사전시각화 기술을 활용해 완성된 미드 '팬암'의 한 장면 ⓒ부산영상위원회

올해 2월까지 미국 전역에 방영됐던 드라마 '팬암'은 196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의 비주얼 이펙트 슈퍼바이저인 샘 니콜슨은 실제 세트를 짓는 대신 사전시각화 기술을 통해 공항 터미널의 전체 배경과 비행기,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그래픽으로 완성시켰다. 천문학적인 비용은 물론 세트 제작 시간까지 절감한 일거양득의 제작방식이었다.

'인크레더블 헐크'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아이언맨2' 등 근래 제작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공통점은 단연 디지털 사전시각화 기술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사전시각화 기술은 '아바타'에서 정점을 보여주고 이후에도 기술력과 활용도를 톡톡히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은 시각화를 위해 그린 콘티나 간단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활용돼왔지만, 이제는 거대해진 예산과 복잡해진 스케줄에 따라 보다 효과적인 작업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도입된 디지털 사전시각화 기술은 이제 캐릭터 표현뿐만 아니라 배경 합성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제작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실시간으로 배경을 합성하는 모습 ⓒ부산영상위원회

이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촬영환경에 대처하자는 취지에서 국내 최초로 사전시각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현재 한국영화 제작을 선도하고 있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다. 특히 버추얼 스튜디오를 갖춘 것은 아시아 최초다. 최근 한국영화의 절반 가까이를 촬영할 정도로 새로운 영화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는 부산의 활성화도 이처럼 세트와 카메라 장비 도입 등 제작 인프라 구축의 노력에 기댄 바 컸다.

이번에 새로 개관하는 디지털베이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배주형 팀장은 "기존에 운영하던 촬영스튜디오를 리모델링해 의미 있는 결실을 맺게 됐다. 지난달에는 3주에 걸쳐 할리우드의 저명한 전문가를 초청해 사전시각화 시스템의 이해와 활용 교육도 마쳤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희철 스튜디오운영팀장을 비롯한 팀원 5명이 교육에 참여해 스튜디오 촬영법과 ‘테크노집(Techno Jib)’을 활용한 카메라 데이터 추출과정 등 할리우드 특수촬영 시스템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로써 국내에도 사전시각화 전문 현장인력이 탄생하게 된 셈이다.

물리적 세트 벗어나 더 창의적인 연출 가능해져
국내에서는 주로 '모션 캡쳐' 정도로만 알려진 사전시각화 기술은 영화보다는 게임으로 대중과 친숙하다. 특히 최근 주류를 이루고 있는 3D게임 제작과정에서 이 기술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보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캐릭터의 모습과 움직임을 요구하는 사용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디지털베이 스튜디오에 구축된 사전시각화 시스템은 이런 모션 캡쳐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우선 촬영 시 배우의 동작과 현장의 모든 상황을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배우가 움직여도 포착이 가능하고 핸드헬드 기법(휴대용 카메라를 이용해 바짝 붙어 촬영하는 카메라 기법. '들고 찍기'라고도 한다) 같은 실험적 표현도 가능하다.
▲ 디지털베이의 버추얼 스튜디오 ⓒ부산영상위원회

물론 이런 디지털 촬영장비들이 예전에는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비만 디지털이었을 뿐, 스튜디오는 아날로그 그대로여서 제작방식은 여전히 비효율적이었다. 거대한 세트 제작이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정하는 그래픽 디자인 등 시간과 비용, 노동력이 드는 작업환경은 변하지 않았던 것.

정희철 팀장은 "촬영 전에 배경과 배우의 위치, 동선, 카메라의 각도까지 3D로 미리 조정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CG)을 합성하고 모니터링까지 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방식에서는 연출 포인트 수정이나 배우들의 실수로 인한 재촬영이 계속 반복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하면 카메라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데이터화하며 수정부터 데이터 송출까지 스튜디오 안에서 실시간 처리도 할 수 있다.

다만 처음 시작하는 시스템과 장비 운용인 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스튜디오 측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 팀장은 "전문업체와 공조해 앞으로 파일럿 영상을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귀띔한다. 국내 사전시각화 시스템 인력과 장비로 시도하는 첫 번째 표준화 작업인 셈이다. 8월에 크랭크인되는 이 파일럿 프로젝트는 10월에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목표로 진행될 예정이다.

'아이언맨2'의 사전시각화를 담당한 니콜라스 마켈은 "이 기술은 감독과 촬영감독을 비롯한 제작 스태프들에게 무궁무진한 창작의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세트의 한계에서 벗어나면 상상에서만 가능했던 창의적인 연출이 가능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말처럼 사전시각화 시스템은 국내 영화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송준호 객원기자 | junhoism@hotmail.com

저작권자 2012.07.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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