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5일 토요일

모차르트 플루트협주곡 1번은 노란색?

모차르트 플루트협주곡 1번은 노란색?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30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색의 소리는 매우 정확하기 때문에 밝은 노랑색을 피아노의 저음으로, 또는 어두운 진홍색을 고음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20세기 현대 추상미술을 개척한 러시아 태생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놀라운 감각의 소유자이다. 즉 그는 색에서 소리, 즉 음을 지각하는 공감각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공감각(synesthesia)이란 시각이나 청각 같은 별개의 감각이 서로 섞여 지각되는 현상으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연결돼 있거나 겹쳐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칸딘스키 같은 사람은 선명한 노란색을 볼 때 경쾌한 고음이 ‘진짜’ 들린다는 말이다.
▲ 칸딘스키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편성하듯 ‘구성’ 연작을 제작했다고 한다. ⓒ강석기

공감각의 소유자는 매우 드물지만 예술가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높다고 한다. 화가로는 칸딘스키와 같은 시기 활약한 폴 클레가 공감각 소유자였고 작곡가로는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 공감각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작품을 만들 때 공감각을 적극 활용했는데 칸딘스키의 '구성' 연작, '즉흥' 연작 등이 그런 작품이다.

곡조와 색의 매치 보편성 보여
▲ 피험자 48명이 고른 바흐의 6곡에 대해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곡별로 한 데 모았다. 템포가 빠를수록 밝고 따뜻하고 선명한 색조를 이룬다. 같은 템포일 때는 단조보다 장조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Stephen Palmer


그렇다면 오감이 따로 작동하는 우리 보통사람들은 은유로서의 공감각 이상은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스티븐 팔머 교수팀은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12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한 논문에서 보통 사람들도 서로 다른 두 감각 사이에 일관성 있는 상호 연관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을 실었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건 음악과 색의 관계다. 글 맨 앞에 인용한 칸딘스키의 말처럼 곡의 분위기에 맞는 색조가 있다는 건 사실 누구나 공감하는 현상이다. 팔머 교수팀은 그 관계를 좀 더 정밀하게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바흐와 모차르트, 브람스 세 사람의 작품에서 작곡가별로 각각 6편 총 18편을 골라 실험에 이용했다. 곡은 템포(느림/중간/빠름)와 조성(장조/단조)의 조합인 6가지가 나올 수 있게 골랐다.

여기에 밝기와 채도를 달리한 37가지 색이 있는 도판을 준비했다. 피험자들은 곡을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순서대로 도판에서 5색을 고르고 어울리지 않는 순서대로 5색을 고른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자 95%의 정확성으로 곡과 색의 관계가 맺어졌다. 즉 템포가 빠르고 장조인 곡은 밝고 선명한 노란색 계열과 묶였고 느린 단조일 경우 어두운 회색, 청색 계열과 매치됐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곡 가운데 경쾌한 ‘플루트협주곡 1번 G장조’에는 밝은 노란색이나 주황색이 어울린다고 뽑혔고 장중한 ‘레퀴엠 D단조’에는 어두운 청회색이 많이 선택됐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정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인 48명, 멕시코인 49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패턴이 비슷했다. 즉 이런 선택에는 문화의 영향을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음악을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색을 떠올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직접 연결 가설(direct connection hypothesis)’이다. 즉 공감각 소유자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뇌에서도 색과 음악의 소리를 처리하는 영역이 겹쳐져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정서-매개 가설(emotional mediation hypothesis)’로 음악과 색이 공유하는 정서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뇌의 활동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첫 번째 가설은 힘을 잃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두 번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정서를 매개로 해서 연결되는 듯
▲ 색-얼굴 실험에 사용된 얼굴 사진들. 남녀 각각 7가지 표정이 있는데 담담한 표정(0%)과 행복한 표정 2가지(50%, 100%), 슬픈 표정 2가지, 화난 표정 2가지로 나타냈다. ⓒ‘PNAS’
먼저 색과 얼굴 실험으로 피험자들은 사진 속의 얼굴 표정을 보고 어울리는 색 5가지를 순서대로 고르고 어울리지 않는 색 5가지를 순서대로 고른다. 얼굴은 담담한 표정(중성)과 행복한 표정 2가지(50%, 100%), 슬픈 표정 2가지, 화난 표정 2가지다. 남녀 각각에 대해 7가지 표정의 사진이 있어 피험자는 총 14개 사진에 대해 색을 골랐다. 데이터를 통계처리하자 담담한 표정은 채도가 낮고 중간 밝기의 약간 차가운 색(예를 들어 저채도 파랑과 녹색)과 매치됐고 슬픈 표정은 어둡고 저채도인 차가운 색(예를 들어 어두운 청회색이나 어두운 녹회색)이 연결됐다. 행복한 얼굴에는 밝고 채도가 높은 따뜻한 색(예를 들어 노랑, 주황, 빨강)이 선호됐고 화난 얼굴에는 어둡고 채도가 높은 붉은 계열의 색이 매치됐다.

세 번째로 음악과 얼굴 실험으로 피험자는 곡을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표정 둘을 순서대로 고르고 어울리지 않는 표정 둘도 순서대로 골랐다. 이때 제시된 사진은 여성 얼굴로 담담한 표정과 행복한 표정 4가지(25%, 50%, 75%, 100%), 슬픈 표정 4가지, 화난 표정 4가지해서 전부 13가지다. 데이터를 분석하자 빠르고 장조인 곡은 행복한 표정과 느리고 단조인 곡은 슬픈 표정과 매치가 됐다.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실험에서 특정 표정에 어울리는 색과 음악을 매치시키면 첫 번째 실험의 결과와 비슷하게 나온다. 즉 색과 음악의 연결은 정서를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감각 양식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음악과 색을 연결시킬 때 진짜 정서를 경험하는 건지 단순히 인지적으로 그렇다고 느끼는 건지도 아직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둘 사이의 관계가 문화 차이나 개인의 선호를 뛰어넘어 상당히 높은 정확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음악과 색을 잘 선택하면 정서를 조절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마케팅에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적한 마음을 털어내고 싶을 때는 오렌지의 진노랑 껍질을 벗겨 먹으며 모차르트의 플루트협주곡 1번을 듣는다면 한결 도움이 될 거란 말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05.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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