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0일 월요일

손전등의 빛을 ‘타당미래’로 넓혀라

손전등의 빛을 ‘타당미래’로 넓혀라

영국 NESTA 미래학 보고서 (중)



미래에 대한 예측이 틀리면 가혹한 비난이 잇따른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경제전문가도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권위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측에 성공했어도 한두 번만 실수하면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다.

장차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미래 예측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장선을 긋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밀어닥치는 자연재해와 사건사고는 발생 직전에야 징조를 알 수 있어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논리가 아닌 직관이나 감정에 의해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을 지적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다고 미래 예측 자체를 그만두어야 할까. 영국 최고의 싱크탱크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 이하 네스타)은 최근 ‘미래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자(Don't stop thinking about tomorrow)’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해 미래학의 가치와 효용성을 옹호했다.
▲ 네스타의 미래학 보고서는 △가능미래 △타당미래 △유력미래 △선호미래 등 네 가지의 미래 구분법을 사용한다.  ⓒNESTA

보고서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쓸모가 있다”는 주장에 비판을 가한다. 정확한 예측은 특정 종목에 돈을 걸어 이익을 취하려는 금융가들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유발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며 미래학의 가치를 높이는 3가지 준칙을 소개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은 가까운 미래에 쓸모가 있을 만한 요소를 찾아준다 △타당미래에 기반한 시나리오는 정부나 기업이 취약성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래에 대한 욕구와 우려를 이야기할 때부터 이미 혁신이 시작된다 등이다.

미래 예측을 어둠 속의 손전등에 비유했을 때 가장 밝은 가운데 부분의 유력미래(probable futures)에만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그보다 넓은 타당미래(plausible futures)까지 미래 예측에 포함시킨다면 적중률은 낮아지겠지만 급격한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점이다.

현재의 온라인 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빅데이터 분석’

일반적인 미래 예측은 과거의 데이터와 현재의 트렌드를 기반으로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는 행동에 비유하면, 과거 기반의 미래 예측은 초점이 맺히는 중앙 부분의 밝고 좁은 빛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과거의 규모를 뛰어넘는 거대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고성능 슈퍼컴퓨터조차도 기존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사건을 계산해낼 수는 없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좋은 예다.

유사한 과거 데이터가 거의 없어도 놀라운 적중률을 보이는 미래 예측 방법이 있다.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이다. 트위터나 블로그 등 온라인 상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분석해 현재의 트렌드와 앞으로의 발생 규모를 예측한다.

실제로 미국의 데이터 전문가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50개 주에서 벌어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오차가 거의 없이 정확히 예측한 바 있다. 기존의 선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학적 모델을 만들어 온라인 상에 돌아다니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빅데이터의 예측 능력은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구글이 수집한 실시간 온라인 데이터를 분석하면 언제 독감이 유행할지 또는 일본에서 이번 달에 어떠한 디자인의 신발이 유행할지도 예측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 분야뿐만 아니라 판매량까지 적중시킬 수 있다.

▲ 구글이 2008년 시작한 독감 예측 시스템은 실제 결과와 유사한 적중률을 보여 관심을 모은다.  ⓒNESTA

실제로 구글은 2008년부터 독감 예측 서비스를 선보였다. 검색엔진에 걸려드는 독감 관련 단어들을 모아서 동향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독감 관련 설문조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적중을 시킬 뿐만 아니라 며칠 더 일찍 경보를 발령할 수 있게 해준다.

온라인 상에 떠돌아다니는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때로는 과도한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실제 결과의 두 배에 가까운 예측치를 내놓아 관계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아프지 않은 사람도 검색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보기 때문이다.

미래예측 범위를 ‘유력미래’에서 ‘타당미래’로 넓혀라

한편으로는 특정 키워드만을 수집해서는 빅데이터 분석으로도 예상 외의 사건까지 미리 알아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탄소물질을 예로 들어보자. 1990년대까지만 해도 풀러린(fullerene)이나 탄소나노튜브와 관련된 논문만을 검색해서 전체 시장을 예측했다. 풀러린은 199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고 탄소나노튜브는 매년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핀(graphene)이라는 새로운 탄소물질이 이미 존재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래핀 연구자가 2010년 노벨상을 거머쥐면서 전문가들은 부랴부랴 새로운 미래 예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기존 데이터에만 매달려 새로운 검색어를 추가하지 못하는 바람에 시장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손전등의 빛이 도달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손전등의 범위를 좁은 유력미래에서 더 넓은 타당미래로 확장시킨다면 대안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데 유리해진다.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서 새로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의 온라인 대화를 모니터링하는 것만으로도 미래기술의 등장 신호를 알아낼 수 있다. 논문 검색·관리 프로그램인 멘들리(Mendeley)는 연구자 간의 소통을 증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여기에 등록된 논문이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 해당 논문을 즐겨찾기에 추가한 사람은 몇 명인지, 그 중에서 학생들이나 개도국 연구자들은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면 향후 연구 동향을 알아낼 수 있다.

▲ 퀴드(Quid)사는 3만5천 개 회사에 근무 중인 연구자들의 논문과 발표문에서 특정 단어와 문장을 집계해 ‘기술 유전자’를 선정해 네트워크 지도를 그렸다.  ⓒNESTA
퀴드(Quid)는 3만5천 개 회사에 근무중인 연구자들의 온라인 데이터를 분석해 장기적인 기술 트렌드를 예측한다. 논문과 발표문에서 특정 단어와 문장을 집계해 ‘기술 유전자(technology genome)’를 선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연결점은 기술 유전자 주변에 분포해 있지만 하얀색 빈칸에 홀로 진출한 회사도 눈에 띈다.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고 혁신을 이끌어갈 튼실한 씨앗일 수도 있다.

보고서는 확실한 유력미래에만 집중하지 말고 더 넓은 범위의 타당미래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3.05.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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