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생존경쟁을 정당화하는가?
과학명저 읽기 5
과학명저 읽기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사이의 관계를 두고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모두 ‘적자’가 생존한다는 점에 있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단지 다윈은 자연계에 대해, 스펜서는 인간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점이 차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일부 학생은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진화론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올바르게’ 알고 있었지만, 이들조차 스펜서가 다윈 진화론을 곡해하여 불평등한 당시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했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에 대한 생각은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출간하기 ‘전에’ 발표되어 당대에 이미 식자층 사이에는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스펜서가 다윈의 생각을 오용하여 자신의 사회진화론을 정립했다는 생각은 그럴듯한 ‘오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해가 그럴듯한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점차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면서 덩달아 이와 ‘유사해’ 보이는 내용을 담은 스펜서의 생각의 인기도 함께 올라간 것이다. 스펜서 자신이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창안하여 다윈 진화론과 자신의 생각의 유사점을 강조한 것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영국은 한창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처럼 ‘적자’가 미개한 야만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은 자연의 순리상 당연하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거나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므로 이를 사회적으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돕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는 자유방임주의적 생각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다윈은 이깉은 사회진화론적 생각에 대해 내심 비판적이었지만 평소 대외적으로 이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결국 다윈의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 당시의 사회적, 국제적 조건에 사회진화론이 이미 잘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다윈 진화론은 이들 생각에 일종의 탄탄한 생물학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세간의 ‘오해’가 다윈 진화론의 높은 인기에 한 몫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힘센 사자가 아프리카 초원의 왕으로 군림하듯이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남극 대륙의 사자를 생각해보자. 아프리카의 초원을 달리기에 잘 ‘적응’된 사자의 탄력적인 발바닥은 남극의 얼어붙은 땅 위에서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당연히 펭귄을 사냥하기는커녕 웃음거리만 되다가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하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이처럼 ‘잘 적응한’ 개체나 종은 고려되는 생태학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게 되므로 ‘절대적인’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데 있다. 생태학적 환경이 정해지면 그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 혹은 종일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거의 자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점에 대해 다윈은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자연선택’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는 인위적인 육종 과정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선택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실제로 ‘자연’이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태학적 환경과 개체의 상호작용을 지칭하는 은유일 뿐이다.
그에 비해 스펜서는 생태학적 환경에 앞서서 개체가 가진 속성만으로 ‘적자’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영국사회에서는 급상승하고 있던 부르조아 계급이 그 ‘적자’이고 국제정치 상황에서는 한창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유럽국가들이 ‘적자’이다. 이처럼 누가 적자인지 자체가 자명하기에 이 적자가 뒤쳐진 사람이나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결코 따라 나오지 않는 결론이다. 남극에서는 사자가 적자일 수 없듯이 사회제도가 바뀌면 어떤 계층이 ‘적자’인지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된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 진화에 대한 생각은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출간하기 ‘전에’ 발표되어 당대에 이미 식자층 사이에는 알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스펜서가 다윈의 생각을 오용하여 자신의 사회진화론을 정립했다는 생각은 그럴듯한 ‘오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해가 그럴듯한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 점차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면서 덩달아 이와 ‘유사해’ 보이는 내용을 담은 스펜서의 생각의 인기도 함께 올라간 것이다. 스펜서 자신이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창안하여 다윈 진화론과 자신의 생각의 유사점을 강조한 것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영국은 한창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영국처럼 ‘적자’가 미개한 야만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은 자연의 순리상 당연하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거나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므로 이를 사회적으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돕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는 자유방임주의적 생각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다윈은 이깉은 사회진화론적 생각에 대해 내심 비판적이었지만 평소 대외적으로 이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결국 다윈의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 당시의 사회적, 국제적 조건에 사회진화론이 이미 잘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다윈 진화론은 이들 생각에 일종의 탄탄한 생물학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세간의 ‘오해’가 다윈 진화론의 높은 인기에 한 몫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힘센 사자가 아프리카 초원의 왕으로 군림하듯이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남극 대륙의 사자를 생각해보자. 아프리카의 초원을 달리기에 잘 ‘적응’된 사자의 탄력적인 발바닥은 남극의 얼어붙은 땅 위에서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당연히 펭귄을 사냥하기는커녕 웃음거리만 되다가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하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이처럼 ‘잘 적응한’ 개체나 종은 고려되는 생태학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게 되므로 ‘절대적인’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데 있다. 생태학적 환경이 정해지면 그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 혹은 종일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거의 자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점에 대해 다윈은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자연선택’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는 인위적인 육종 과정에서 사람이 수행하는 선택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실제로 ‘자연’이 의식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태학적 환경과 개체의 상호작용을 지칭하는 은유일 뿐이다.
그에 비해 스펜서는 생태학적 환경에 앞서서 개체가 가진 속성만으로 ‘적자’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영국사회에서는 급상승하고 있던 부르조아 계급이 그 ‘적자’이고 국제정치 상황에서는 한창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유럽국가들이 ‘적자’이다. 이처럼 누가 적자인지 자체가 자명하기에 이 적자가 뒤쳐진 사람이나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결코 따라 나오지 않는 결론이다. 남극에서는 사자가 적자일 수 없듯이 사회제도가 바뀌면 어떤 계층이 ‘적자’인지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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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게도 ‘다윈의 불독’으로까지 불리면서 다윈 진화론을 열렬하게 옹호했던 토마스 헉슬리조차 인간사회에 대한 다윈 진화론의 함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열렬한 제국주의자로서 헉슬리는 영국의 식민통치가 식민지의 미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발전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 보다 진보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국과 같이 보다 문명화된 나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이런 생각을 정당화하려면 모든 국가가 일정한 발전 경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선형발전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라마르크주의적인 이런 생각에 스펜서만이 아니라 헉슬리조차 공감했다는 점이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헉슬리가 인간사회에 다윈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를 꺼린 데는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다윈 진화론을 개체간의 경쟁을 통해 진화, 즉 생물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이런 개체간 경쟁은 사회적 수준에서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를 가려올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개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태도를 준수하지 않고 아귀다툼을 한다면 그 결과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로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유럽 각국이 식민지 쟁탈을 위해 국가 단위로 극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영국 제국의 개인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국 ‘내에서’ 생존경쟁은 억제될 필요가 있었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헉슬리는 제국주의 시기 국가 간 경쟁 상황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는 ‘윤리’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내재화될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헉슬리가 보기에 다윈의 진화론은 이런 점에서 인간 사회에 적용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헉슬리는 ‘진화와 윤리’(1894)에서 “사회의 윤리적 진보는 우주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주 과정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윤리적 진보란 우주 과정과 싸워가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인간이 동물과 여러 면에서 연속성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물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엄연히 작동하는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도덕으로 무장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헉슬리에게 윤리 의식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징표이자 국가 간 경쟁에서 영국제국의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었다. 윤리의 형이상학과 실천 윤리학이 진화론적 맥락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노동자 계층의 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헉슬리는 그들을 위해 평소 수많은 강연과 교육 활동을 했다. ‘진화와 윤리’도 노동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그가 말년에 했던 로마니스 강연 원고를 가다듬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기존 사회질서가 충분히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스펜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슬리는 당시 노동자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 행동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진화와 윤리’는 이런 맥락에서 영국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을 도덕적으로 훈육하여 국가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헉슬리의 마지막 노력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헉슬리가 이 책에서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했다고 평가한다. 그 평가가 얼마나 정확한 지와 무관하게 이 얇은 책은 흥미로운 비유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여럿 제시하는 과학고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헉슬리가 인간사회에 다윈의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를 꺼린 데는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다윈 진화론을 개체간의 경쟁을 통해 진화, 즉 생물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이런 개체간 경쟁은 사회적 수준에서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를 가려올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개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태도를 준수하지 않고 아귀다툼을 한다면 그 결과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로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유럽 각국이 식민지 쟁탈을 위해 국가 단위로 극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영국 제국의 개인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국 ‘내에서’ 생존경쟁은 억제될 필요가 있었다.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헉슬리는 제국주의 시기 국가 간 경쟁 상황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는 ‘윤리’가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내재화될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헉슬리가 보기에 다윈의 진화론은 이런 점에서 인간 사회에 적용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헉슬리는 ‘진화와 윤리’(1894)에서 “사회의 윤리적 진보는 우주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주 과정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윤리적 진보란 우주 과정과 싸워가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인간이 동물과 여러 면에서 연속성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물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엄연히 작동하는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도덕으로 무장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헉슬리에게 윤리 의식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징표이자 국가 간 경쟁에서 영국제국의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었다. 윤리의 형이상학과 실천 윤리학이 진화론적 맥락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노동자 계층의 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헉슬리는 그들을 위해 평소 수많은 강연과 교육 활동을 했다. ‘진화와 윤리’도 노동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그가 말년에 했던 로마니스 강연 원고를 가다듬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기존 사회질서가 충분히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스펜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슬리는 당시 노동자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 행동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진화와 윤리’는 이런 맥락에서 영국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을 도덕적으로 훈육하여 국가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헉슬리의 마지막 노력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헉슬리가 이 책에서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했다고 평가한다. 그 평가가 얼마나 정확한 지와 무관하게 이 얇은 책은 흥미로운 비유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여럿 제시하는 과학고전임이 분명하다.
| 소개 도서 : 토마스 헉슬리 지음, 김기윤 옮김, ‘진화와 윤리’, 2009, 지만지 |
저작권자 2013.05.03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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