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6일 일요일

지구온난화 논쟁의 실체를 밝히다

지구온난화 논쟁의 실체를 밝히다

과학명저 읽기 8

 
과학명저 읽기 2000년대 초에 환경 보호론과 에너지 및 자원 보존론에 의문을 던지며 풍요로운 미래를 장담하는 두툼한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펴냈던 비외른 롬보르가 2007년에는 지구온난화 논쟁을 다루는 책을 썼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이 책이 지구온난화가 그렇게 시끌벅적한 담론의 주제일 이유가 없다는 요지의 내용을 담은 ‘쿨잇’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 되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억지스런 내용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쿨잇’ 역시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분석해야 할 지 판단이 어려웠다. 롬보르는 지구온난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 듯싶었다. 다만, 현대인이 겪고 있는 지구 온난화가 기후학의 역사 속에서 매우 하찮은 사건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누구에게나 다 재앙일 수밖에 없는 사건은 아니라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번역본의 본문이 200여 쪽이었는데, 그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100쪽 가까이 되는 전거 문헌들이 미주로 달려 있었다. 더구나 그 문헌들이 대부분 과학적인 연구내용인 듯 보였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두고 과학계 내부에서 심각하고 폭 넓은 이견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싶었으며, 그 이견을 중재하거나 평가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2010년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의 Merchants of Doubt: How a Handful of Scientists Obscured Truth on Issues from Tobacco Smoke to Global Warming이 출판되면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 논쟁의 실체를 분명히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레스케스와 콘웨이는 우선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과학적 연구 내용에 의문을 던지는 큰 목소리들이 대부분 소수 저명한 과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확산되어 왔으며,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소수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다가, 이어서 설사 온난화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기술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니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다가, 이어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기후학자들이 제시하는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 섣부른 대응책을 논하기보다는 기다려 보는 게 올바른 판단이라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2012년 ‘의혹을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이 책은 이렇게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부정하거나 그 심각성을 부인하는 많은 출판물들이, 사실은 과학적 연구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을 적시한다. 예를 들어 롬보르 같은,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문제가 진정 ‘문제’인지에 의문을 던지는 회의론자들이 ‘쿨잇’ 같은 책에서 제시한 엄청난 전거들 중에 과학적인 환경연구를 목표로 쓴 연구논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또는 전문가로 포장된 몇 사람의 저명한 과학자들의, 특정 정당의 정책이나 기업의 입지를 강화해 주는 글들이 반복적으로 재인용 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이들의 글은 과학의 실천이 아니라 과학을 공격하는 행위, 또는 과학 연구의 결과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 그 연구 내용을 무력하게 만드는 행위였던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의문을 던지는 글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는 이들 과학자들은 대부분 기후과학자가 아니라 냉전시대에 무기개발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통해 학문적 입지를 굳힌 물리학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저명한 과학자들이 왜 연구논문이 아닌 글을 때로는 연구논문의 모양새로 발표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려 애썼던 것일까?

오레스케스와 콘웨이는 이들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 논쟁 이전에도 이미 산성비 논쟁이나 오존홀 논쟁에서 일역을 담당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들 과학자들은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해 유발되는 산성비의 존재나 폐해를 부정하는 데에서, 또는 산업 활동의 생산물 또는 부산물인 화학물질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오존홀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서도 일관되게 산업 활동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나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심지어 간접흡연으로 인한 발암 가능성 논쟁에서도 이들이 산업계의 자문역으로 개입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저명한 과학자들이 담배업계나 석유업계로부터 연구비나 생계비를 원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 소수 과학자들의 일차적인 목표가 산업계로부터의 연구비나 돈을 받는 게 아니었다 할지라도, 우선, 산업계로부터의 지원이 환경문제 일반 특이 지구온난화 논쟁에 미치는 힘은 주의 깊게 가늠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미국기업연구소, 경쟁기업연구소, 하트랜드연구소, 케이토 연구소, 헤리티지재단, 사이먼재단, 과학환경정책프로젝트, 건전과학진흥연맹 등 수많은 조직들의 이름을 가끔 듣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 조직들일까? 이름만으로는 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세워져서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예를 들어, 건전과학진흥연맹은 필립모리스 담배회사의 판촉을 위한 홍보조직이며, 지구온난화 논쟁의 두 주역 프레드 싱어와 프레드 사이츠는 이 조직의 과학고문이었다.

수많은 조직들이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담론을 만들고 정책을 유도하기 위한 ‘보수 씽크탱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싱어나 사이츠 등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글을 써 온 저명 과학자들의 활동을 추동하는 궁극적인 힘 역시 자유 시장을 위협할 수 있는 정부의 규제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 개인의 ‘보수적’ 정치 이념이었다. 재계에서조차 ‘자유시장 근본주의자들’로 여겨지는 이들은 냉전시대에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개발 과정을 통해 학문적 명망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정부의 규제를 요구하는 환경담론을 자유로운 사회를 위협하는 적으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많은 과학기술학자들이 과학이 특정 전문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대중에게도 또는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에게로 확산되어 가는 전통적인 과학의 형성과 전파 모델이 지나치게 단순해서 실제 과학의 모습을 그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과학기술학자들은 과학의 행로가 전문 학자들 뿐 아니라 이를 보는 대중의 열망이나 의문 그리고 판단의 영향을 받게 되며, 과학지식은 경제, 문화, 정치적 제도 등과 ‘함께 생산’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의혹을 팝니다’에서는 동료심사라는 엄정한 절차를 거쳐 발표되는 신중하고 신뢰할 만한 과학과 정치적 이념적 의제를 가진 잘못된 과학이 지나치게 극명하게 대조되어 있는 듯싶었다. 정교한 플롯 속에 역사적 문서를 철저히 파헤치며 쓴 무게와 설득력을 지닌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과학 자체를 지나치게 반듯하고 문제가 없는 활동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료 과학기술학자들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행위와 정치행위를 극명하게 구분하는 서술의 문제점을 저자들이 생각지 않았을 리는 없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과학사학자로 학문적 입지를 굳힌 주 저자 오레스케스는 대학에서 과학기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날카로운 정치적 현실감각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흡연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서, 화석연료와 미래에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또는 지구온난화 논쟁에 대해서 오레스케스는 과학기술학 ‘전문가’로서 정치적 판단을 포함하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그리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밝히려 했던 것이다.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한 학생은 책의 내용이 마치 몇몇 과학자들을 단죄하려는 검사의 기소장처럼 읽힌다며 불만스러워 했다. 이들 과학자들의 유죄를 입증하려면, 흡연의 유해성, 오존구멍, 산성비, 살충제 문제, 그리고 지구온난화 논쟁에 이르기까지 각 사안에 따라 별개의 증거들이 필요한데, 자유시장을 수호하겠다는 이념이라는 유일한 동기가 그 모든 혐의에 적용되고 있다는 게 수상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레스케스는 바로 그 점을, 즉 시장 자유주의 이념이 환경보호 담론을 적대시하는 갖가지 활동의 공통된 동기였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전술이 정당하지 못하며 이들의 이념이 잘못된 것임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정치가 함께 생산된다는 동료 과학기술학자들의 정교한 이론은 이 비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술은 과학기술학의 이론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기술학의 실천을 위한 시도였던 셈이다.
소개 도서 : 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 콘웨이, 유강은 옮김, ‘의혹을 팝니다: 담배 산업에서 지구온난화
까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 미지북스, 2012

김기윤 (한림대학교 사학과)

저작권자 2013.05.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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