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과학연구 현장의 민낯을 보여주다

과학연구 현장의 민낯을 보여주다

과학명저 읽기 9



과학명저 읽기   2012년 5월 10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의 표지를 한 장의 깔끔한 사진이 장식했다. 이 사진은 같은 호에 실린 ‘균열 제어를 통한 형상화(Patterning by Controlling Cracking)’라는 제목의 논문에 관련된 사진이었고, 그 논문에 실린 세 명의 저자는 모두 한국인, 그것도 한국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국내 연구자들이었다.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국내 연구진의 연구가 실렸다는 자부심도 잠시, 깔끔해 보였던 이 일은 논문의 저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얼룩졌다. 발단은 그 며칠 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대학원생은 노예인가? 교수가 연구 결과 독식’이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올린 사람은 논문의 제 1저자가 속한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논문에 실린 실험을 주도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저자에 올라가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논문의 아이디어부터 실험 설계까지 모두 자기가 했으며 박사과정 학생은 실험을 지시대로 수행했을 뿐이라는 제 1저자의 반론이 다시 언론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누가 연구 부정을 저지른 것일까?
누가 진정한 발견자인가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같은 질문을 던지게 했던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 떠오른다. 이 책은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기까지의 연구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지만,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왓슨의 지나치게 솔직하고 사적인 평가를 담고 있어 출간 전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DNA 이중나선 구조의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여성 X선 결정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왓슨은 프랭클린이 찍은 DNA 회절 사진을 그녀의 허락도 없이 몰래 봤을 뿐만 아니라 노벨상을 안겨 준 1953년 ‘네이처’ 논문에서는 그녀의 공헌에 대해 충분한 인정도 하지 않았다. 아니, 사진을 본 경로가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언급을 할 수 없었다.

‘이중나선’에서 프랭클린은 결정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데이터의 진가를 알아채지 못했던, 완고하지만 영민하지는 못했던 과학자로 그려졌다. 이 책이 프랭클린의 사후에 출판되어 그녀에게는 자기변호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남성과학자들이 여성과학자의 연구 업적을 가로챈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이런 논란을 접할 때마다 머릿속에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왓슨은 왜 무덤 속까지 안고 가야 할 얘기를 ‘이중나선’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이 책을 저술한 왓슨의 중요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일반 대중이 과학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과정도, 반대를 위한 반대와 정정당당한 경쟁, 그리고 개인적 야심이 뒤얽힌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일반적 현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과학 연구의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날 것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첫 번째 발견자의 명예를 얻기 위해 때로는 동료의 데이터마저 은밀히 훔쳐보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이뤄지기도 하는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 이것이 바로 왓슨이 보여주고자 했던 과학 연구 현장의 날 것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왓슨이 이런 경쟁적이고 개인적 명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연구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세대의 연구 스타일이 어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중나선’이 과학적 발견의 우선권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그리고 그것이 왓슨이 이 책을 쓴 주된 목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이 책은 과학적 연구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공동연구자였던 프랜시스 크릭과 왓슨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왓슨이 DNA 이중나선 발견의 경쟁자라고 밝혔던 모리스 윌킨스, 프랭클린, 라이너스 폴링도 직접적인 코멘트와 신랄한 비평, 때로는 잘못된 연구 결과 발표로 서로가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면서 DNA 이중나선 발견을 위한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수다스러운 왓슨과 크릭의 연구 얘기를 들어주며, 한두 마디 코멘트를 던졌던 많은 동료 연구자들이 자신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DNA 모형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한 셈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중나선’은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와 통찰이 쌓여 이루어지는지, 과학적 발견의 누적적이고 협력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과학적 발견의 이런 특성을 인지하고 나면, 왜 과학계에서 논문 저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연구 공헌도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종종 불거져 나오는 지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저자권의 문제, 공헌도의 문제는 과학 연구가 큰 명예를 누리게 될 때 날카롭게 불거져 나오기 쉽다. 아마도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타지 않았다면 그 연구에서 프랭클린이 한 공헌에 대한 논란도 지금처럼 소란스럽게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머리에서 본 한국 연구자 사이의 갈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2012년 7월, 연구자들이 속한 해당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논문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인정하고 ‘네이처’에 공동 저자로 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네이처’는 논문저자들과 당사자 간의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지금도 그 논문의 저자는 처음 발표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중나선’이 보여준 과학연구의 성격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한국 공동 연구자 사이에 불거진 저자권을 둘러싼 갈등은 개인들 간의 도덕성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중나선’이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란 것이 발견을 위해 매진하고 경쟁하는 연구자들 모두가 함께 쌓아가는 협력적이고 누적적인 작업인데 비해, 그 발견의 명예는 소수의 몇 명에게만 주어지는 현재의 연구 시스템에서라면 도덕적으로 올바른 연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곳에서조차 발견의 공헌을 둘러싼 잡음은 언제라도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40년도 더 전에 나온 ‘이중나선’을 다시 들춰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개 도서 : 제임스 왓슨, 최돈찬 역, ‘이중나선’, 궁리, 2006


박민아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저작권자 2013.05.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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