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2일 일요일

‘주차장 고고학’의 전성시대

‘주차장 고고학’의 전성시대

리처드3세 이어 로마시대 묘지 발굴

 
도심의 주차장이 보물창고로 대접받고 있다. 로마시대의 선박, 비잔틴 제국의 유물, 기사의 무덤 등 고대와 중세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최근 잇따라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주차장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생길 지도 모른다.

▲ 주차장 아래 묻혀 있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굴된 영국 레스터 시의 또 다른 주차장에서 이번에는 로마시대 공동묘지가 발견되었다. ⓒUniversity of Leicester
지난해 9월 영국 중남부 도시 레스터의 주차장에서는 폭군으로 알려진 꼽추왕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먼 후손의 DNA와 비교 작업을 거친 후 지난 2월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발굴을 주도했던 영국 레스터대학교 연구진이 이번에는 인근 주차장에서 고대 로마시대의 공동묘지를 발굴해 화제다. 발굴지는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된 주차장으로부터 3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묘지의 주인은 성별과 연령이 다양했으며 종교에 따른 매장방식도 서로 달랐다. 부장품으로 초기 기독교의 표식이 새겨진 반지가 출토되기도 했으며 머리를 잘라 발 아래에 두는 이교도식 무덤도 함께 발굴되었다.

도심 주차장에서 꼽추왕 리처드 3세의 유골 발굴돼

1536년 영국의 왕 헨리 8세(1491~1547)는 수도원의 건물과 재산을 몰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잦은 전쟁으로 바닥이 난 국가 재정을 충당하고 자신에게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던 카톨릭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5년 동안 집행된 ‘수도원 해산법’으로 인해 영국 곳곳에 위치해 있던 수도원은 약탈과 파괴에 시달렸다. 일부는 철거와 화재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리처드 3세(1452~1485)가 묻힌 그레이프라이어스(Greyfriars) 수도원도 이때 파괴되었다.
▲ '꼽추왕'으로 알려진 영국 최악의 폭군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도심 주차장 아래에서 발굴되었다. ⓒWikipedia
그로부터 470년도 더 흐른 2011년 3월, 영국 레스터대 고고학 연구진은 도심의 뉴스트리트에 위치한 시의회 사회복지국 뒷편의 주차장을 발굴하기 시작한다. 1255년에 세워진 그레이프라이어스 수도원을 복원하기로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레스터 대성당의 바로 맞은편이다.

발굴이 한창 진행되던 2012년 8월 25일, 특이한 모양의 척추를 가진 유해가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도 별다른 묘비가 표식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에서 ‘꼽추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리처드 3세의 유해일 가능성이 높았다.

신원 확인을 위해 연구진은 리처드 3세의 손위 누이 ‘요크의 앤(Anne of York)’의 17대 직계 자손인 마이클 입센(Michael Ibsen)을 찾아내 DNA를 채취했다. 비교 결과 혈통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지난 2월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영국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왕이 제대로 된 관도 없이 도심 주차장 아래에서 500년 만에 발굴된 것이다. 전 세계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발굴”이라며 떠들썩한 관심을 보였다.

다른 주차장에서는 로마시대 공동묘지 나타나

레스터대 고고학 연구진이 이번에는 또 다른 도심 주차장에서 고대 로마시대 유적을 발굴했다.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된 지역에서 3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뉴어크 스트리트의 교차로 인근에 위치한 이 주차장에서는 서기 300년 경의 무덤이 13기나 발굴되었다.

성벽으로 둘러 싸였던 로마시대 레스터 시의 남문에서 13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로마시대의 법률은 도시 내에 묘지를 두지 못하게 했으므로 성벽 외곽의 도로변에 공동묘지를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 묘지에서는 초기 기독교 상징으로 쓰인 이오타-카이(IX) 문양이 새겨진 반지도 출토되었다. ⓒUniversity of Leicester
무덤의 형태와 주인도 제각각 달라 공동묘지라는 추측을 뒷받침했다. 반지, 머리핀, 허리띠 버클, 징 박은 구두 등 개인물품도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다.

일부 묘지에서는 초기 기독교 문양이 발견되기도 했다. 왼손에 폭이 넓은 반지를 낀 유해가 머리를 동쪽으로 둔 채 반듯하게 누운 모습으로 발굴되었다.

반지에는 이오타-카이(IX) 알파벳이 겹쳐진 채 새겨져 있었다. 그리스어로 ‘예수 그리스도(Ιησουζ Χριστοζ)’의 머리글자다. 고대의 무덤 중에서 개인의 신앙을 나타낸 예는 드물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주변 무덤은 기독교식 무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태아처럼 웅크린 채 옆으로 누운 유해가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머리는 잘린 채 발 아래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두 개의 토기 단지도 발견되었다. 사후세계로 가는 여정에 필요하다고 여겨진 부장품을 담는 그릇이다.

주차장에서 유물 발굴하는 ‘주차장 고고학’의 시대

주차장에서 옛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1월에는 이스라엘 구시가지의 성벽 외곽 주차장에서 비잔틴 시대의 십자가가 새겨진 상자가 발견된 바 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성화가 그려져 있어 관심을 모았다.

2012년 8월에는 프랑스 남부의 지중해 도시 앙티브의 주차장에서 건물 신축공사 도중 로마시대의 선박 잔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1천700년 전 것으로 보이는 선박은 20미터 길이에 120톤의 짐을 실을 수 있는 규모였다.

지난 3월에는 영국 북부의 에든버러 구시가지 주차장에서 중세시대 기사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에든버러대학교가 저탄소혁신센터(ECCI)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도중 드러난 것이다. 바로 옆에서 출토된 묘비에는 3개의 기단 위에 십자 모양이 놓인 갈보리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주차장 부지는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깊게 팔 일이 없으므로 고대나 중세의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주차장 고고학’의 전성시대가 열릴 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주차장으로 쓰인 공터가 있다면 건물을 지을 때 조심해서 공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3.05.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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