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6일 일요일

하늘과 세종대왕

하늘과 세종대왕

박석재의 하늘 이야기 5

 
과학에세이 세종대왕은 중국에서 입수된 천문학을 가지고 우리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무척이나 가슴아파하셨다. 이는 중국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기술한 천문학이 조선 하늘에서 맞을 리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도 일국의 제왕일진대 어떻게 내 나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측하지 못하나’ — 어느 임금도 하지 않은 고민을 세종대왕은 하셨던 것이다.

동지 때마다 사신이 새해 관련 ‘천기누설’을 중국으로부터 받아오는 것이 끝내 못마땅했던 세종대왕은 마침내 이순지 등을 시켜 칠정산을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책력 체제가 확보된 것인데 이는 한글 창제 못지않은 대왕의 치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 복원된 세종대왕시대 천체관측기구 간의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본원 앞마당에는 세종대왕시대 천체관측기구 간의대가 실물 크기로 복원돼 있다. 원래 간의대는 경복궁 북서쪽 구석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 간의대에 올라가 세종대왕이 어디에 서 계셨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중국 사신의 방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사신 일행이 경복궁 안에 설치된 천문관측 기구를 보고, 감히 중국 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어올까 귀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신이 오면 그러한 기구들을 모두 분해해서 숨겼다고 전해진다. TV 연속극 ‘대왕 세종’을 보면 우리 황후의 가마 속에 이 기구를 숨겨 가지고 가다 중국 사신의 검문을 받는 굴욕적인 장면이 나온다.
▲ 경복궁 내 관상감과 간의대의 위치 ⓒ한국천문연구원

경복궁 건물 배치도를 보면 임금님에게 하늘의 뜻을 직소한 관상감 역시 근정전 바로 옆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상감의 역할은 TV 연속극 ‘해를 품은 달’에 일부 소개된 바 있다. 조선시대 영의정이 관상감장을 9번이나 겸직했다는 사실은 조선 역사에서 차지하는 하늘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글에서 만 원 지폐의 뒷면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세종대왕이 나오시는 앞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만 원 지폐 앞면에는 근정전 옥좌 뒤의 병풍 그림 ‘일월오봉도’가 있다. 우리는 천손의 후예답게 해와 달이 나오는 지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월오봉도란 해와 달과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일월화수목금토’를 의미한다. 즉 태음(달)과 태양(해)과 오행성을 통해 음양오행의 우주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 옥좌에 앉는 분이 바로 천손의 통치자였던 것이다!
▲ 만 원 지폐 앞면 ⓒ한국은행

‘칠정산’이 완성되기 전 세종대왕이 뙤약볕 아래 앉아 의관정제하고 일식을 기다린 일이 있었다. 왕조시대 달이 왕의 상징인 해를 가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고됐던 일식이 15분가량 늦게 일어나자 인자하기로 소문난 대왕이 천문관에게 태형을 내렸다. 곤장을 맞은 천문관의 고통보다 대왕의 심적 고통이 더 컸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 경복궁 근정전 옥좌와 일월오봉도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장 시절 나는 일식예보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하늘을 보면 일식이 안 일어날까봐 굉장히 불안했었다. 일식이 안 일어나면 볼기맞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돼 정확하게 일어나는 일식을 지켜보면서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는 일이 얼마나 경건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2013.05.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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