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SF에 차용된 창조신화

SF에 차용된 창조신화

SF관광가이드/ 과학소설에서의 종교 (4)



SF 관광가이드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들은 자연과학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조만간 하느님이 태초에 하신 일을 자신들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게 되었다. 즉 인간이 생명, 그것도 되도록이면 최대한 지적인 생명의 창조에 관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이상은 유전공학의 부단한 발전에서 보듯 더 이상 관념에 그치지 않고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과학소설은 과학의 비전을 남보다 앞서 읽어내는 안목을 지녔다보니 일찍이 19세기 초부터 재생인간과 복제인간 그리고 부분적인 신체변형 같은, 당대 통념으로는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인간의 하느님 흉내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시체부위들을 이어 붙인 뒤 전기충격을 가해 살려낸 괴물은 그러한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이 괴물은 이름이 없었으나, 훗날 독자들은 이것에다 그 창조주인 과학자 이름을 갖다 쓰기 시작했다.)
▲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인간의 임의적인 생명창조 행위가 야기하는 윤리도덕적 문제를 진지하게 담아낸 초기 고전이다. 소모용 노동에 투입하기 위해 수명을 제한한 복제인간들이 다량 생산되지만 마음은 인간과 다를 바 없기에 이들은 창조주의 사악한 기대를 배신하고 살길을 찾으려 한다. 위 표지는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책의 표지.  ⓒBoom! Galleries

이처럼 과학소설에서 묘사되는 지적 생명의 창조행위는 1970년대 유전공학이 획기적인 발돋움을 하기 전부터 복제인간처럼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한 개념을 받아들였다. 필립 K. 딕의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1968>가 좋은 예다. 심지어 제임스 블리시(James Blish)의 <표면장력 Surface Tension>과 오경문의 <오래된 이야기, 2007> 같은 중단편에서는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한두 개체의 복제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종(種)의 창조로까지 나아간다. 특히 <오래된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의 축소판 천지창조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의 모티브는 과학소설에서 빈번하게 활용되는 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었는데, 그중 가장 정형화된 패턴의 하나가 하느님 대신 외계인이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이다. 고도문명을 구가하는 외계인들은 지구에 생명의 씨앗을 뿌림으로서 궁극에 가서 지적 존재가 생겨나도록 하거나, 아니면 기존 종(種)이 적어도 고속진화 할 수 있도록 역동적인 자극을 준다. 예컨대 클리포드 D. 시맥(Clifford D. Simak)의 단편 <창조자 The Creator, 1935>에는 세상을 창조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며 이 유명한 고전은 당시에만 해도 과학소설 장르에서 찾아보기 드물었던 종교적 암시가 가득하다.

▲ 제임스 블리시의 <표면장력>은 외계행성의 바다에 불시착한 지구 탐사대가 전원 익사하기 전에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유전자은행에서 물 속에서 살 수 있는 인류의 아종을 만들어낸다. 후일 이 수중인류는 물 밖 미지의 세계를 탐구한다, 마치 구인류가 외계의 우주를 탐사하듯이.  ⓒStanley Pitt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표방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유명세를 치른 예를 꼽자면 아서 C. 클락의 <2001년 우주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3백만 년 전 호미니드 종의 진화에 개입하여 오늘날의 호모사피엔스 종이 급속히 출현하게 한 이 외계고등문명은 속편에서 목성 위성 유로파의 지각 속 바다에 사는 토착생물의 진화에도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한편 같은 작가의 장편 <유년기의 끝 Childhood's End, 1953>에서는 외계의 또 다른 고등문명이 지구상 현생인류가 종말을 고하고 우리의 후손이 전혀 이질적인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런 식의 창생 이야기들은 특히 칠팔십 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사이비 저술가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aniken) 덕분에 더 탄력을 받았다는 평가다.1)

누가 세웠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치 까마득히 오래전에 버려진 외계문명의 유적과 신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권능으로 우주 곳곳의 지적 생물의 진화에 임의로 관여했으나 이제는 우주에서 종적을 감춰버린 고대 종족의 전설을 아우라처럼 감싼 과학소설들을 양산했다. 인기 비디오 게임 <헤일로 Halo>에 등장하는 외계 고등문명 종족의 명칭인 선조(先祖; Forerunners)도 앞서 나온 과학소설들에서 영향 받은 결과라 볼 수 있다.

▲ 아서 C. 클락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는 300만년 전 외계에서 온 고등문명이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깊숙히 관여했다는 가정 아래 전개된다. 사진 속에 나오는 달에서 발견된 모놀리스는 외계문명이 인류가 달에 와 자신들이 만든 인공구조물을 찾아낼 때까지의 경과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일종의 계량기이자 그 내용을 송신하기 위한 안테나였다.  ⓒMGM

신에 못지않은 준(準) 창조행위2)를 그리는 과학소설들은 그 규모가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러한 행위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 작가의 관점에 따라 크게 상반된다. 수적으로는 섣부른 창조행위가 신의 뜻을 거슬러 오히려 재앙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불안해하는 정서를 담은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학소설들이 인간이 개입하는 생명의 창조 작업을 이단시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의 전형적인 예로 H. G. 웰즈(Wells)의 <모로 박사의 섬 The Island of Dr. Moreau, 1896>을 꼽는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알렉산더 벨랴에프(Alexander Beliaev)의 <물고기인간 The Amphibian, 1928>을 언급할만하다.

<모로 박사의 섬>의 괴짜 과학자 모로와 <물고기인간>의 외과의사 카디스 박사는 둘 다 외과수술을 통해 한 생물의 조직을 다른 생물의 몸에 이식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한다. 그러나 같은 연구 활동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시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웰즈는 모로 박사를 미치광이로 치부하지만 벨랴에프는 카디스 박사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생명공학이 궁극에 가서는 인류문명 전반에 득이 되리라는 투철한 신념의 선구자로 그린다.

카디스 박사는 인간의 양쪽 어깨에 상아의 아가미를 이식하여 뭍은 물론이고 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양서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기소된다. 신이 준 형상을 인간이 멋대로 변형했다는 데에 사안의 중대성이 있다고 본 종교계는 검사에게 중죄를 내리도록 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석에 선 카디스 박사는 자신의 비전을 공공연히 토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의 사건에서 최대의 피해자이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의 피해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겁니다. 검사는 내가 하나님의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들어놓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돌연 한 의사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잘못됐다. 새로 고쳐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만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오! 그 말을 빠짐없이 정확히 기록해 둘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검사는 자기가 모욕이나 당한 것처럼 외쳤다.
                                                                --- <양서인간>3), 아이디어 회관, 1970년 번역판, 164쪽

벨랴에프는 카디스 박사의 입을 빌어 인간의 형상은 생각과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어야 인류문명이 정체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피력한다. 예컨대 양서인간의 존재는 단순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고 진주조개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는 선을 넘어 해양자원의 본격적인 개발로 인류가 육지라는 좁은 땅 덩어리를 넘어 잠재력이 무한한 신천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 러시아 작가 벨랴에프의 <물고기 인간, 1928>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생명공학이 궁극에 가서 인류의 인위적 가속진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자칫 인간의 교만함에 바탕을 둔 과학기술이 인류를 오히려 불행하게 만든다는 훈계조의 천편일률적 플롯과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왼쪽 일러스트는 1961년 영화판 포스터고 오른쪽 일러스트는 2012년 완역되어 재출간된 국내 번역판 표지다.  ⓒLENFILM & 마마미소

드물기는 하지만 신이 우주 창조에 관여하는 이야기를 신의 1인칭 시점에서 그린 준(準) 과학소설도 있다. (준 과학소설이라 지칭한 것은 여기에는 비록 신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신화소설이나 환상소설 형식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과정과 거기에 개입하는 신의 마음을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사변적으로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2012년 발표된 앨런 라잇맨(Alan Lightman)의 장편 <미스터 지 Mr. G, 2012>는 빅뱅 이전의 우주에서부터 빅뱅 이후 팽창을 거듭하여 결국 쇠멸하기까지의 우주를 그린다.

놀랍게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조물주 자신이다. 조물주는 자신과 숙모, 숙부가 함께 사는 시공간이 따로 없는 보이드(Void)에서 무수히 많은 우주들을 만들어내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인류가 태어나는 우주다. 조물주는 우리가 사는 우주의 창조와 진화 그리고 죽음의 과정을 돌아봄으로서 신격적(神格的)으로 더욱 성숙해진다. 다만 우주만물의 부침을 관조하며 선악을 양비론 시각에서 윤리학적으로 접근한 결말은 독특한 관점에서 출발한 이 장편의 클라이맥스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어 아쉬움을 남긴다.

☞ 주요 추천작품(국내 소개작은 밑줄 표시):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818> / Mary Shelley
▶<<모로 박사의 섬 The Island of Dr. Moreau, 1896> / H. G. Wells
▶<<물고기인간 The Amphibian, 1928> / Alexander Beliaev
▶<창조자 The Creator, 1935>(단편) / Clifford D. Simak
▶<<유년기의 끝 Childhood's End, 1953> / Arthur C. Clark
▶<씨 뿌리는 별들 The Seedling Stars, 1957>(단편집)4) / James Blish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5) / Philip K. Dick
▶<<오래된 이야기, 2007>6)(단편) / 오경문
▶<<미스터 지 Mr.G, 2012> / Alan Lightman
1) 데니켄은 고대에 외계의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방문했었다고 주장한다.

2) 신처럼 완전히 무(無)에서 창조한 것은 아니기에 인간의 창조행위는 엄밀히 말해 준 창조행위라 볼 수 있다.

3) 이 장편소설은 2012년 어른 대상의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4) 이중 “표면 장력(Surface Tension)”편은 (웅진 오멜라스, 2011년)에 수록되어 국내 소개된 바 있다.

5)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생존할 수 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처리된 복제인간들이 창조주인 거대기업의 총수를 찾아와 수명을 늘려달라고 협박하는 이야기

6)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SF적 시각에서 재구성한 이 단편은 2007년 황금가지에서 펴낸 작가선집 <얼터너티브 드림>에 수록되었다.



고장원 | sfko@naver.com

저작권자 2013.05.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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