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불치병 치매, 정복은 요원한가?

불치병 치매, 정복은 요원한가?

게놈연구 통한 치료 가능성 열려

 
“지난 수 년간 우리는 치매연구보다 가슴확대 수술에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때문에 20년 후인 2030년이 되면 커다란 가슴을 드러내고 길거리를 방황하는 치매환자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앤디 루니, 미국 저널리스트-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던 1945년 2월4일부터 8일간 얄타회담이 열렸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1874~1965), 그리고 소련 국가원수 스탈린(1879~1953)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나이로 볼 때는 초로에 접어든 이들 노인 세 사람은 소련 크리미아 지방의 소도시로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얄타에 모여 종전 후 세계질서를 개편하는데 있어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이 회담으로 인해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분단됐고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도 영토가 줄어드는 등 많은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분단으로까지 이어져 매우 안타까운 회담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 정상회담을 벌였던 노인 세 정치인 모두 매우 심한 뇌혈관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런 병의 결과가 얄타에서의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 회담에서 그들이 평소 능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란 상황은 짐작할 수 있다.

뇌혈관장애, 치매 등과 같이 노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환이 세계의 정치와 역사에 생각지도 못했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질환은 행동과 인격의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며, 정서적 기능 상실과 지적 기능의 황폐화가 계속 진행돼 사회적 혹은 직업적 기능의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치매극복의 날”, 각국 인식전환 캠페인 추진
“행동을 취해야 할 때입니다” 매년 9월 21일은 세계 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지정한 ‘치매극복의 날(World Alzheimer’s Day)’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50만 명에 육박하는 치매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치매환자는 계속 늘어 2020년에는 80만 명, 2050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치매는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치매를 바라보는 잘못된 편견 때문에 아직까지 치매환자들과 가족들이 갖는 사회적, 심리적 고통과 부담은 크다.

치매환자는 더럽고 불결하며 공격적이란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치매환자와 가족은 사회활동을 꺼리는 경우가 많고, 병을 숨기려는 성향이 강하다. 국민 5명 중 1명이 직·간접적으로 치매환자를 안고 있다.

치매는 비단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현재 최소 1천200만여 명이 고통 받고 있는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50년경 치매로 고통 받을 사람의 숫자가 지금보다 무려 3배에 가까운 3천6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정상 노인의 뇌(왼쪽)와 치매환자의 뇌(오른쪽)의 단면도. 오른 쪽 뇌는 중요한 부위의 신경세포가 소실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쪼그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 사망원인 9위 기록
세부적 발병률을 살펴보면 65세 이상 노인 중의 11.3퍼센트가 치매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성비를 보면 남자는 7.2퍼센트, 여자는 15.4퍼센트로 여자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치매는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 사망원인 9위를 기록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됐다.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알츠하이머병은 그 진행과정에서 인지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성격변화, 초조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장애 등 정신행동 증상이 흔히 동반되며, 말기에 이르면 경직, 보행 이상 등의 신경학적 장애, 또는 대소변 실금, 감염, 욕창 등 신체적인 합병증까지 나타나게 된다. 결국에는 모든 일상 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현미경으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조직을 검사해보면, 특징적인 병변(病變)인 신경반(neuritic plaque)과 신경섬유다발(neurofibrillary tangle) 등이 관찰된다. 육안으로도 신경세포 소실로 인해 전반적으로 뇌가 위축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뇌 수축은 질병 초기에는 주로 기억력을 담당하는 주요 뇌 부위인 해마와 내후각뇌피질 부위에 국한돼 나타나지만 점차 두정엽, 전두엽 등을 거쳐 뇌 전체로 퍼져나가 뇌가 쪼그라들게 된다.

게놈연구로 치료 가능성 서서히 열어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현재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작은 단백질이 과도하게 만들어져 뇌에 침착 되면서 뇌 세포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것이 발병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노인성 치매 뇌 구조를 처음으로 보고한 알로이스 알츠하미머.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뇌 세포의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의 인산화, 염증반응, 산화적 손상 등도 한몫을 하고 있다.

향후 20~30년 후에도 인류를 계속 괴롭힐 것으로 예측되는 치매에 대해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인가? 아니다. 최근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치매 원인 규명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게놈연구는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서서히 열어 놓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경우 전체 예산의 73.8퍼센트를 치매 증상 연구에 투입하고 있는데 기초의학, 임상연구,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과 역학연구가 시작된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NIH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막기 위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생성을 차단하는 억제물질을 개발했다.

기존 치료제가 병의 원인을 고치지 못하고 단순히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었던 데 비해 이 물질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근본 물질을 억제한다. 그러나 이 치료법은 시험관에서 배양한 뇌세포에 실험한 단계로 상용화되려면, 5년에서 10년 가까이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난관이 있다.

또 최근 노인성 치매와 녹내장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동일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 대학(UCL)의 한 연구팀은 치매 환자의 뇌 조직을 손상시키는 단백질 베타‒아밀로이드가 녹내장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망막신경세포 손상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연구팀은 시험관에서 망막신경세포를 베타‒아밀로이드에 노출시킨 결과 신경세포가 죽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 결과가 치매와 녹내장의 새로운 치료법과 치매 진단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09.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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